본문 바로가기

100자평

[레이첼 결혼하다] 그래도 결혼식은 계속된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코폴라 감독의 <페기 수 결혼하다>를 연상시키는 제목의 영화 <레이첼 결혼하다>는 그야말로 주인공 킴(앤 해서웨이)의 언니 레이첼(로즈마리 드윗)의 결혼 준비와 리허설, 그리고 결혼식과 그 다음날을 담아낸, 소박한 가족 드라마이다. 개봉 전부터 조나단 드미의 연출이라는 점과 각종 연기상 후보에 오르고 몇몇 상은 수상까지도 한 앤 해서웨이의 열연이 화제가 되었던 작품이다. 시드니 루멧의 딸인 제니 루멧의 각본은 평단의 호평을 얻었고, 오랜만에 스크린에서 보는 데브라 윙거는 예전의 모습이 곱게 남아있는 얼굴로 신부의 어머니 역할을 연기했다.

타 인종간의 결혼이 너무도 자연스러우며, 각각 재혼한 부모끼리도 편안한 관계를 유지하는 리버럴한 레이첼의 집안은 결혼식을 앞두고 정신없이 분주하지만 화기애애함이 넘쳐난다. 레이첼의 결혼에 참석하기 위해 약물 중독 재활원을 잠시 떠나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킴은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반가움과 어색함이 뒤섞인, 그리고 미묘한 긴장감이 흐르는 환영 인사를 받는다. 지나치리만큼 자상한 아버지와 왠지 모르게 소원해진 친엄마와의 관계, 그리고 솔직한 감정을 조금씩 숨기고 있는 자매간의 관계는 과거의 아픈 가족사가 드러나면서 고통스러운 상처의 깊이를 함께 드러낸다. 영화에서 인물들에게 들이대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생동감과 끊임없이 연주되는 라이브 음악의 현장감은 이 가족의 이야기를 바로 옆에서 관찰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어 주고 있다.

떠들썩하고 유쾌한 리허설 디너와 피로연 뒤편에 숨겨진 가족들간의 애증을 통해, 이 영화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장 편하면서도 가장 힘든 인간관계인 "가족"의 모습을 남의 일 같지 않게 그려낸다. 끊임없이 서로 상처를 주면서도 영원히 갈등과 화해를 반복해 나갈 수밖에 없는 "감정 공동체"인 가족은 결혼식을 통해 더 큰 공동체를 만들고 성장해 나간다. <레이첼 결혼하다>도 그렇고, <레볼루셔너리 로드>도 그렇고, 영화에 대한 별다른 정보없이 제목이나 캐스팅만 보고 영화를 보러간 관객들은 어쩌면 생각보다 몹시 암울한 내용을 담은, 어쩌면 기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스토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두 영화 모두, 기대와는 거리가 멀지 몰라도,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가까이 있는, 그래서 마음 속 깊은 곳에 담아두게 되는 영화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