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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볼루셔너리 로드 (Revolutionary Road, 2008)



<타이타닉>(1997)이 벌써 12년 전 영화가 되었더군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20세기 최고의 로맨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었다는 건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지 않던가요. 두 배우가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다시 만나게 된 건 단순히 연기력도 좋고 티켓 파워도 있는 최고 전성기의 주연급 배우들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생각됩니다. 영화의 제작자들은 분명 <타이타닉>으로 영원한 사랑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두 배우를 통해 사랑과 인생이라는 주제를 다시 한번 다뤄보는 것이 훨씬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첫 장면에서 두 사람은 마치 잭과 로즈의 환생처럼 보일 만큼 잘 어울립니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첫 만남과 연애의 순간은 극히 짧을 뿐이고, 영화는 곧장 1950년대 미국의 중산층 부부가 영위하고 있는 삶 속으로 뛰어들어갑니다. 타이타닉호를 타고 무사히 신대륙으로 건너온 왕자님과 공주님은 정말로 행복하게 잘 살기만 했을런지 한번 지켜보자는 얘기가 되는 거죠.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엔딩 크리딧을 보니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원작 소설이 있었더군요. 1961년에 출간된 리차드 예이츠라는 작가의 장편 데뷔작이었습니다. 영미 소설계에서는 꽤 유명한 작품이었던 모양이예요. 극중에 프랭크(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아버지가 같은 회사의 용커 지점(?)에서 근무했었다는 얘기가 자주 나오는데, 바로 리차드 예이츠가 태어난 곳이 뉴욕주 용커였더군요. 2차 대전에 참전하기도 했었고 작가의 첫번째 결혼 기간이 1948년에서 60년까지였더군요.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아무래도 작가의 자전적인 이야기였나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포스터를 처음 본 건 작년 10월 리들리 스콧 감독의 <바디 오브 라이즈>(2008) 를 보고나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차기작을 찾아보던 때였습니다. 최근 몇 년 간 덥수룩한 수염을 기른 모습만 보여주었던 것 같은데 다음 작품에서는 간만에 말끔하게 면도를 하고 나오는 모양이라고만 생각했었죠. 하지만 그 상대역이 케이트 윈슬렛인줄은 몰랐습니다. 포스터에서 두 사람이 함께 얼굴을 마주 하고 있었는데도 말이죠. 그리고 이런 내용의 영화일 거라는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마치 타이타닉호가 그랬듯이 바다 한 가운데에서 두 동강이가 나며 침몰하고야 마는 30대 중산층 부부의 이야기라니요. 현실과 적당히 타협하는 법을 익히지 못한 주인공이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되는 결말도 저로서는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이런 이야기에는 꼭 빠지지 않는 캐릭터, 진실을 말하는 광인도 어김없이 등장해주시더군요. 물론 그보다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공허하고, 희망 없는 삶을 견디는 것 외에는 선택의 여지를 알지 못하는 직장 동료들과 이웃들이었죠.




샘 멘데스 감독이 <아메리칸 뷰티>(1999)의 연장선 상에 놓일 만한 좋은 작품을 다시 한번 내놓았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케이트 윈슬렛과 샘 멘데스 감독은 어찌 소리소문도 없이 결혼까지 하셨던 건가요?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 가운데 하나는 다름 아닌 케이트 윈슬렛의 원숙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인터내셔널>(2009)에서 나오미 왓츠가 너무 푸석한 모습으로 등장했던 것과는 달리 <레볼루셔너리 로드>의 케이트 윈슬렛은 그야말로 반짝반짝 빛나고 있더군요. 두 배우가 나이 차이가 좀 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비교하기는 좀 그렇습니다만 기본적으로 여배우를 비춰주는 카메라에 큰 차이가 느껴졌었다고 할까요. 아무튼 <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의 케이트 윈슬렛을 보니 감히 동시대 최고의 여배우라 불리우는 데에 부족함이 없겠더군요. 그녀에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안겨준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도 빨리 보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배우에 대한 팬심'으로 영화를 기다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