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100자평

더 로드 (The Road / 존 힐코트 감독, 2009)


잿빛과도 같은 절망의 여정과 그 끝에 찾아오는 순간의 희망을 정적이면서도 사색적인 문채로 담아낸 코맥 매카시의 ‘로드’는 이미지보다는 행간에서 전해지는 인물들의 처연한 심리가 중요하다는 점에서 영화화하기 쉽지 않은 작품이다.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더 로드>는 섣불리 각색을 하지 않고 원작을 최대한 충실하게 영상으로 재현하는데 온힘을 쏟는다. 스크린 가득 채워진 잿빛 이미지에서 전해지는 뿌연 먼지 같은 질감은 폐허가 된 지구를 채우고 있는 절망을 관객 스스로 체감하게 만들며, 아들을 지키기 위한 아버지의 인간적인 고뇌는 비고 모텐슨의 연기로 인해 현실감 있게 다가온다. 문장이 영상으로 옮겨지는 과정 속에서 원작의 사색적인 분위기가 조금 반감된 측면도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더 로드>는 원작의 주제와 정서를 최대한 스크린에 반영하고자 하는 노력이 엿보이는 작품이다.

GOOD: 인생은 이렇게 험난하지만 끝까지 걸어갈 수밖에 없다는 진실.

BAD: 시종일관 펼쳐지는 회색빛 화면이 답답한 것도 사실.

* 조이씨네에 올린 글입니다.

- 알려진 대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의 원작자이자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소설가 코맥 매카시가 2006년에 발표해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드’를 영화화한 작품.

- 영화의 대부분은 펜실베이니아에서 촬영됐는데, 존 힐코트 감독은 펜실베이니아에 대해 “가을에는 색의 변화 때문에 아름다운 곳이지만 겨울이 되면 굉장히 황폐한 느낌이 나는 곳이다. CG가 필요 없을 정도의 화면을 담을 수 있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 또한 최소한의 CG를 사용해 작품의 리얼리티를 살리고자 한 제작진은 흐린 날씨에 주로 촬영을 진행해 회색 재로 뒤덮여 태양빛이 부족한 지구의 모습을 그려냈는데, 이에 현장 스탭들이 “태양은 공공의 적이다” “<더 로드>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는 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