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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인 디 에어] 당신의 배낭 속엔 무엇이 들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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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 [네이트 영화] <인 디 에어>

* 스포일러라고 느끼실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Who the fuck are you?”
이 얼마나 ‘품위 있는’ 질문인가.
해고 통보를 대행하는 라이언(조지 클루니)에게 벼락처럼 날아든 질문,
우리는 이와 비슷한 질문을 <마이클 클레이튼>에서도 들은 적이 있다.
각기 스릴러와 코미디라는 전혀 다른 장르의 탈을 느슨하게 뒤집어쓰고 있긴 해도 두 영화는 놀랍도록 닮았다. <인 디 에어>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는 질문 또한, 아니나 다를까, “당신 대체 누구야?”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영화가 인간 라이언 빙햄, 혹은 자체로 배우 조지 클루니의 정체성을 탐험하는 여정이 될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라이언의 말을 그대로 받아, 그래서 “Who the fuck am I?"
그는 톰슨가젤을 사냥하는 한 마리 흑표범처럼 민첩하고 능숙하게 짐을 꾸리고,
심해를 유영하는 한 마리 돌고래처럼 우아하고 ‘품위 있게’(그가 좋아하는 말처럼)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는 남자다.(날렵한 편집의 묘!)
알랭 드 보통이 최근작 <공항에서 일주일을>에서 “혼돈과 불규칙성이 가득한 세계에서 터미널은 우아함과 논리가 지배하는 훌륭하고 흥미로운 피난처로 보인다.”라고 표현했던 것과 정확히 같은 감수성을 공유하는, 1년 365일 중 집에서 보내는 40여 일마저 끔찍하다 할 만큼 공항과 무색무취한 프랜차이즈 공항호텔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21세기 신유목민이자,
아메리칸 에어라인, 허츠, 힐튼의 컨시어지, 넘버원 골드, 플래티넘, 뭐라 부르든 어쨌거나 최고 등급의 멤버십 카드를 소유한 소비자본주의의 총아이다.

라이언은 아메리칸 에어라인의 셀프체크인 데스크에 카드를 긁을 때 비로소 안도감이 든다고 말한다.
그 ‘안도감’은 카드를 긁는 것이 곧 자본주의 질서로부터 시장경제 활동에 참가해도 좋다고 ‘승인’받는 행위, 다른 말로 생산과 소비의 주체로서 ‘호명’에 응답하는 행위임을 암시한다.
영화의 도입부에 등장하는 일련의 해고 통보 장면, 라이언이 ‘새로운 커리어를 안내’하는, 곧 직업-자격을 박탈하고 시장경제에서 ‘나가줄(out)’ 것을 종용하는 의미에서 해고된 사람에게 요구한 것은 다름 아닌 ‘카드 키’ 반납이었다.

그러나 분노, 협박, 읍소, 눈물…… 해고를 통보받은 사람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지만, 그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인 것은 일견 당연하면서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왜냐하면 이 지점에서 바로 ‘체제’ 안에 있는 인간 라이언과 이제 막 그 체제로부터 밀려난 사람들의 위치가 역전되기 때문이다.
라이언의 강연에 따르면 그들은 평생 짊어지고 갈 배낭에 짐을 하나 가득 채운 미련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들이 이 크나큰 시련 앞에 다시 한 번 힘을 낼 수 있는 이유도 그 짐-가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가정이라는) ‘체제’ 안에 존재하며, 땅에 발 딛지 못하고 정처 없이 떠돌며 ‘하늘’(up in the air)을 고향이라 말하는 라이언이야말로 체제 바깥의 사람이 된다.
비행기 창 혹은 호텔 창문의 이중 프레임에 홀로 갇힌 라이언의 모습은 지독히 쓸쓸해 보인다.(인생의 부조리한 질문 앞에 내던져져 지난 삶을 반추하며 자조하는 중년 남자의 고뇌를 조지 클루니만큼 탁월하게 그려내는 배우가 있을까!)
비행 마일리지 1000만 마일을 달성하는 게 ‘목표’라고 했지만, 정작 그 순간이 닥쳤을 때 그는 그토록 하고 싶었다던 말은 떠올리지 못한다.
그의 소망이 그가 진짜 원한 것은 아니었다.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사람들과 텅 빈 배낭을 멘 사람들,
그러나 영화는 섣불리 한쪽 손을 들어주진 않는다.
일련의 사건을 통해 조금씩 타인과 관계 맺는 법을 깨쳐가던 라이언, 강연장을 박차고 나간 그가 알렉스에게 달려가 키스를 하고 진정한 사랑의 힘을 깨달았다는 식의 뻔한 해피엔딩이었다면, 이 영화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시시해지고 말았을 것이다.
그 대신 <인 디 에어>는 생에는 그저 두 가지 선택지가 있을 뿐, 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라이언의 누나처럼 가정을 이루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
알렉스처럼 두 얼굴로 살아갈 수도 있다.
어떤 길을 택하든 결과와 그에 따른 책임은 온전히 혼자만의 몫이다.  
그 담담한 시선이 오히려 우리를 위로한다.
그런 점에서 덜 자란 어른처럼 보이는 라이언은 사실 매우 성숙한 인간이다.
왜냐하면 그는 적어도 그의 선택에 대해 투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의 배낭에는 소유물이나 인간관계가 없는 대신 바닥을 가늠할 수조차 없는 ‘고독’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리하여 다른 이들보다 결코 가볍지 않은 어른 남자가 견뎌야 할 생의 무게를, 혼자이기 때문에 더욱 사무치는 무게를 양 어깨에 지고 라이언은 오늘도 비행 안내판 아래 선다.

그리고 우리에게 이렇게 묻는다.
당신의 배낭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보라고.
그게 무엇이든, 짊어지고 갈 준비가 되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