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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허트 로커 (The Hurt Locker, 2008)

'전투의 격렬함은 마약과 같아서 종종 빠져나올 수 없을 정도로 중독된다'는 문구로 시작하는 '허트 로커'는 전쟁이란 광기 속에서 심신적으로 붕괴 되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을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영화는 초반부의 강렬한 폭발씬을 통해 폭탄 처리반의 작업이 목숨을 거는 위험한 직업임을 관객에게 설득력있게 전달한다. 불의의 사고로 폭발물에 직접 접근을 시도하려는 군인의 모습을 슬로우하게 묘사한 장면은 극한적인 긴장감을 느끼게 한다. 초반의 폭발물 사고로 죽은 팀리더의 후임으로 온 제임스 중사는 초반부의 신중한 선임와 대비되는 행동을 보인다. 영화는 제임스의 폭탄 처리 과정을 통해 위험천만한 스릴감을 전달한다. 고요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폭탄 처리의 과정은 조그마한 소리나 예상치 못한 돌발 사건들의 등장을 통해 긴박감을 안겨준다.

정해진 안전수칙을 무시해대며 폭발물을 처리하는 제임스의 행동은 그의 부하인 샌본과 앨드리지를 혼란스럽게 한다. 샌본과 앨드리지가 제임스의 행동에 분노하는 것은 그가 굳이 위험을 감수하면서 폭탄을 처리할 필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폭탄을 향해 나아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폭발물 신고를 받은 폭탄처리반 일원들은 사람들이 모두 대피하면 안전하게 로봇 원격조종을 통해 다른 방향으로 폭발을 유도하는 식으로 폭발물을 처리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제임스는 샌본의 충고를 무시하고 직접 손으로 폭발물을 해체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간다. 제임스의 행동을 지켜본 지휘관은 그의 행동을 치하하지만 30여 일동안 무사히 복무를 마치면 고국으로 돌아갈 두 병사들에게 제임스의 폭탄 처리 방식은 자살같은 행동과 다름없게 느껴질 뿐이다.

하지만 영화는 그를 단순히 폭발물 처리의 스릴감에 빠진 사이코 변태로 묘사하기 보다는 그 역시 보통 병사처럼 전쟁 속에서 심적인 아픔을 겪는 인간적인 면이 있음을 여러 에피소드들을 통해 보여준다. 예를 들어 DVD를 팔던 베컴이란 소년이 인간 폭탄의 형태로 죽어있는 것을 목격한 뒤 맞폭탄으로 폭탄을 처리하지 않고 폭탄을 직접 꺼내는 위험을 감수하고 소년의 시체를 보호하려는 제임스의 모습은 그가 생명경시적인 전쟁광이 아니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베컴을 죽게 한 폭탄 테러범을 찾기 위해 제임스는 군대를 탈영해 민간인 지역을 수색하기도 하고 야간에 일어난 폭탄 테러가 원격 조종이란 점을 알아낸 뒤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추격한다. 하지만 제임스의 부하인 샌본과 앨드리지는 그런 제임스의 모습을 만용에 빠진 인간으로 느낄 뿐이다. 임무가 끝난 뒤 샤워장에서 물을 받아들이는 제임스의 모습을 보면 인간적인 연민이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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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2. 영화 속에서 카메오로 등장하는 몇몇 배우들의 모습이 반갑게 느껴지는데, 그들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유독 '허트 로커'에서 인상적인 부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예를 들면 가이 피어스가 등장하는 초반부에서 보여지는 폭발씬이 정말 인상적이었으며, 랄프 파인즈가 등장하는 사막 전투씬은 고요하면서도 광활한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저격전이어서 유독 기억이 남는다. 특히 현상금을 받아야 한다는 이유로 적의 기습에도 불구하고 포로들을 쫓아가는 랄프 파인즈의 모습은 비이성적인 광기를 잘 드러내는 연기가 아니었나 싶다. 이 밖에도 미드 덱스터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준 크리스천 카마고가 군의관으로 등장하는 폭발씬도 엄청난 충격이어서 기억이 남는다.

ps3. '허트 로커'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배경음악을 유튜브에서 찾아봤더니, 인더스트리얼 메탈 밴드인 미니스트리(Ministry)의 'Khyber Pass (카이버 고개)'라는 곡이라고 한다. 이국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여성 보컬의 바이브레이션과 날카로운 기타 연주가 인상적인 곡인데, 3분 이후부터 영화에 사용된 부분이 등장하면서 곡의 유일한 가사가 들리는 점이 특징이다. 짧은 가사이지만 이라크 전쟁의 목적 중 하나였던 빈 라덴이 어디 있는가 물으며 부시를 조롱하는 점이 눈길을 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