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밑바닥', '생존의 기록' 그리고 '천국과 지옥'같은 작품을 보면 특정 장소에서 벌어지는 일을 통해 이야기의 중심 인물들을 동시에 등장시키고 관객들이 사건의 개요를 이해하도록 전개하는 점이 특징인데,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 역시 앞에서 언급한 특징을 잘 살리고 있다. 영화는 결혼식장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사건을 통해 기업과 공사 간의 입찰 비리를 긴박감있게 드러낸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관객들을 안내하는 장면이 진행된 후 엘리베이터를 향해 뛰쳐나오는 기자들의 행렬은 결혼식에 대단한 사건이 벌어질 것임을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결혼식을 지켜보는 기자들의 대화를 통해 영화의 중심인물들을 소개하고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후루야의 자살 사건을 언급한다. 결혼식이 진행되는 과정 속에서 건물 모양의 케이크의 등장을 통해 비리 사건의 핵심 인물 세 명의 심리 변화를 묘사한다. 흥미로운 점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라는 제목처럼 케이크를 본 비리 사건의 관계자 세 명이 점점 고위층으로 갈수록 동요의 정도가 다르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시라이 과장의 경우 케이크를 본 순간 큰 충격을 받은 듯 칼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보이고 모리야마 부장은 동요어린 표정을 짓지만 최고위층인 이와부치 총재는 꿋꿋한 태도로 케이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한 대상을 바라보는 세 사람의 충격의 차이는 제목의 의미처럼 추악한 인간 일수록 뻔뻔한 기질을 가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결혼식 도중 벌어지는 잇다른 사건을 바라본 기자가 단막극이 아닌 이제 서막이라는 말처럼 영화는 토지공사의 입찰 비리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신문 기사를 펼치는 형식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검찰의 수사는 입을 굳게 다문 사건 관계자들의 행동 때문에 난항에 처한다. 결국 검찰은 이들을 일시적으로 풀어주고 다른 혐의로 그들을 붙잡을 궁리를 한다. 하지만 거대한 암흑 세력은 사건 관계자들에게 거부할 수 없는 명령을 내린다. 잘 부탁한다는 상관의 명을 변호사를 통해 전달받은 직원이 차에 몸을 던지고 부장의 부하 직원인 와다가 유서를 남기고 자살을 시도하려는 모습은 경제조직의 어두운 힘을 느끼게 한다. 와다가 몸을 던지려는 순간 영화는 한 남자를 등장시키면서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된다. 이와부치의 비서이자 그의 사위인 니시가 나타나 와다의 행동을 비판한 것이다. 머뭇거리는 와다를 쓰려뜨리고 밀어버리려는 니시의 행동이 보여진 뒤 영화는 와다의 죽음에 대한 소감을 밝히는 이와부치의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
와다의 장례식이 진행되는 동안 영화는 이와부치의 핵심 세력일 것 같았던 니시의 이중적인 행동을 통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죽은 줄 알았던 와다는 니시의 보호 하에 목숨을 건졌고, 그는 니시와 함께 장례식을 지켜본다. 니시는 비리 사건의 실체를 알고 있는 와다를 통해 핵심 인물인 시라이와 모리야마, 이와부치를 파멸시키려 한다. 왜 그는 자신의 장인인 이와부치를 파멸시키려는 이중적인 행동을 하는 것일까. 속내를 알 수 없는 니시의 휘파람은 그에 대한 호기심을 증폭시킨다.
이후 영화는 니시의 복수극의 과정을 흥미롭게 묘사한다. 니시가 세 인물 중 가장 하위 계층의 인물인 시라이를 심판하는 과정은 빛과 어둠을 통해 공포감을 준다는 점이 특징이다. 처음 시라이가 차를 타고 등장하는 장면은 밝은 빛으로 그의 침착한 모습을 드러낸다. 하지만 자신만이 알고 있던 비밀 금고에 돈이 싸그리 사라지고 몇 년전에 벌어진 후루야의 자살 사건의 장소인 건물 사진이 남아있는 것을 목격한 시라이는 충격과 공포로 돌변한다. 이후 영화는 밤의 거리에 홀로 남겨진 시라이의 행동을 통해 그의 죄의식이 공포로 돌변하는 과정을 묘사한다. 귀신에 홀린듯이 사무실을 나온 시라이는 넋이 나간 체 택시에 내려 길을 걷는다. 어두운 거리를 걷는 순간 빛이 드러나면서 등장하는 와다의 실체를 본 시라이는 공포로 입을 다물지 못한다. 마치 귀신처럼 사라지는 와다의 혼령에 혼비백산하는 시라이의 행동이 통쾌한 느낌을 준다.
편집증에 걸린 시라이를 진정시키기 위해 모리야마와 이와부치는 그를 요정에 불러내지만 시라이는 자신이 과거에 있었던 후루야와 같은 운명에 처할 것같은 공포감에 사로잡힌다. 이후 시라이는 다시 와다의 혼령을 목격하고 공포에 사로잡히는데, 이 때 니시가 그를 차에 태워 후루야가 자살한 공간으로 인도한다. 영문을 알지 못하던 시라이는 와다의 실체를 목격한 후 충격에 말을 잇지 못한다. 영화는 니시의 정체를 드러내어 그가 그토록 세 사람을 파멸시키려 하는지 동기를 밝힌다. 사실 그는 세 사람의 음모에 희생된 후루야의 사생아였던 것이다. 커다란 충격을 받은 시라이는 충격에 홀린 듯 니시에게 죽음을 위협받는다. 후루야의 죽음이 담긴 사진을 간직하며 복수의 날만을 기다린 니시는 시라이에게 빌딩에 뛰어내리거나 독약을 마실 건지 선택을 요구한다. 독약을 먹이려는 니시의 협박에 얼이 나가버린 시라이의 행동이 웃음을 준다.
흥미로운 점은 복수에 이를 갈면서 사람을 파멸시키려는 니시 역시 자신의 복수로 인해 다른 사람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는 죄책감으로 고뇌한다는 점이다. 이와부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딸인 요시코와 결혼하여 이와부치의 최측근이 되는데 성공했지만 자신의 행동으로 요시코가 행복하지 못한 체 살아가는 데 대해 미안한 감정을 가진다. 그의 고뇌는 자신의 계획을 도와주는 친구이자 자신의 또 다른 분신인 이타쿠라와 와다의 지적을 통해 두드러진다. 결국 니시는 자신의 복수심을 누그러뜨리는 결심을 아버지의 사진을 찢는 행동으로 보여준다. 와다는 니시의 고뇌를 지켜보며 그의 고민을 덜어주기 위해 요시코와의 만남을 주선하려고 한다.
하지만 시라이의 파멸을 통해 니시의 존재를 파악한 모리야마와 이와부치 때문에 니시는 도망자 신세가 된다. 니시와 이타쿠라는 자신의 은거지를 찾아온 모리야마를 감금한 뒤 그로부터 비자금의 위치를 파악하려 한다. 앞선 시라이의 사례처럼 영화는 복수의 과정을 코믹하게 표현함으로써 니시의 복수에 대해 찜찜함을 느끼기보다 오히려 악인이 골탕먹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모리야마를 쫄쫄 굶기자 당당한 태도로 여유있는 모습을 보이던 그가 음식을 얻기 위해 술술 불어대고 밥을 허겁지겁 먹는 모습을 보여주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악인의 수난에 폭소를 터트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시무라 다카시의 연기가 이런 코믹함을 잘 살려준다.)
영화의 후반부에 이르면 이와부치가 의문의 대상을 향해 전화를 거는 모습을 통해 암흑 권력의 핵심은 사실 그가 아닌 전화를 하는 대상임을 암시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화를 받는 이와부치의 대사와 그가 전화를 한 대상이 보내준 약을 바라보는 장면이다.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이와부치를 위해 수면제를 보내준 의문의 인물의 행동은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라는 제목 그대로 악인일수록 수면이라는 외면을 통해 죄책감이나 고뇌를 느끼지 못함을 잘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니시와 이타쿠라의 관계이다. 그들은 전쟁 후부터 함께 생존한 친구같은 존재인데, 사실 복수를 위해 서로의 이름을 바꿔 생활하게 된 상태이다. 즉 미후네 도시로가 연기한 니시는 본래 이타쿠라라는 본명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친구의 복수를 돕기 위해 니시는 아무도 알지 못했던 사생아 이타쿠라의 이름을 교환한 것이다. 니시는 겉으로 드러나는 존재임을 상징하듯 하얀 코트를 입은데 반해, 이타쿠라는 검은 코트를 입음으로써 그의 계획을 돕는 암흑 속의 존재임을 상징한다.
아버지의 계략에 빠져 니시의 위치를 알려준 요시코는 타츠요와 함께 니시의 숨겨진 거처를 찾아간다. 이 때 영화는 그들의 자동차 옆 철길에 놓인 한 자동차의 몰골을 통해 비극을 암시한다. 비밀 기지에 도착한 순간 그들은 상심에 젖어 있는 이타쿠라가 하얀 색 코트를 붙잡으며 울부짖는 대사를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체 듣는다. 이타쿠라의 대사를 통해 영화는 비리를 드러냄으로써 이와부치를 파멸시키려던 계획이 실패하고 음모에 의해 니시와 와다가 살해당했음을 드러낸다. 니시의 죽음을 슬퍼하며 이제 다시 니시로 돌아갈 수 없다고 울부짖는 이타쿠라의 대사는 실체가 사라지고 그림자같은 존재가 되어버린 남자의 비극을 전달한다. 실체를 잃어버린 체 그림자로 살아야 하는 이타쿠라의 모습은 마치 '카게무샤'의 비극을 연상시키며, 하늘을 향하듯 비극에 대한 슬픔을 원망하는 그의 행동은 '란'의 비극이 떠오른다.
영화의 엔딩은 이와부치가 전화를 거는 모습을 통해 그 역시 거대한 세력의 하위층에 불과했음을 암울하게 드러낸다. 마치 직접적으로 상관을 대면하듯 전화를 향해 90도의 인사를 하고, 그의 조치에 감사하며 잘 주무시라고 인사하는 그의 당황스런 행동은 결코 해결될 수 없는 권력의 힘을 간접적으로 느끼게 한다. 한편 영상자료원의 책자에 쓰여진 것처럼 두 자식에게 외면당하는 이와부치의 모습은 '대부'의 마이클을 연상시킨다.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면 할 수록 가족의 외면을 받는 한 남자의 초라한 모습은 권력이란게 그런 희생을 치르고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나쁜 놈일수록 잘 잔다'는 출생의 비밀이 담긴 복수극의 형식이지만 무리한 전개를 이끌어가면서 계속된 반전을 노리는 아침 드라마식 복수극에 비해 훨씬 디테일하고 유쾌한 전개가 마음에 드는 영화였다. 또한 복수의 당위성이 있는 선인이 오히려 자신의 행동으로 피해를 입을 사람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는 내면적 갈등, 선한 인간을 희생시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는 악인들의 뻔뻔함을 보여주는 대조적인 캐릭터가 신선한 느낌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