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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페르세폴리스 (Persepolis,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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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에 비해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란 현대사의 질곡이 마르잔 사트라피 개인의 성장사 안에 갖힌 느낌이랄까요. 물론 한 개인의 성장사를 통해 시대의 아픔을 투영하는 것은 그리 낯설지 않은 서사 방법이긴 합니다만 <페르세폴리스>의 경우 주인공의 출신 배경 - 왕족 출신의 부유하고 민주적이며, 특히 일찌감치 서구화된 집안에서 경험한 바에 불과하다는 인식의 한계를 지적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들을 솔직 담백하게 회술하는 동시에 섣부른 낙관을 단정하고 있지 않다는 점에서는 작품의 진정성을 인정할만 합니다만 좀 더 거시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서술해주는, 차라리 픽션이었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여기선 못살겠다고 외국으로 나와 살고 있는 마르잔 사트라피 자신이 아니라 이란에 남아 계속 투쟁하며 살고 있는 친구의 이야기였더라면 어땠을까 싶습니다. 이란이 영국과 미국의 농간에 의해 오랜 독재 왕정과 전쟁을 겪어야 했고 지금은 미국의 패권주의에 날을 곤두세우는 동시에 내부적으로는 시대를 거꾸로 살고있는 듯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왜곡을 가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마르잔 사트라피 개인의 경험을 통해서만 전달하고 있다는 점이 <페르세폴리스>의 강점인 동시에 한계가 될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검은 차도르 안에 감추어졌던 우리와 다름 없는 모습들을 확인하는 일은 반갑기도 하지만 어떤 장면들에선 유학생들이 음주 마약 파티하는 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우리 사정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냐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주인공에게 가장 큰 영향을 주는 동시에 이란이 회복해야 할 가치를 상징하는 인물인 할머니의 정직을 강조하는 당연한 말씀들조차 왠지 나 홀로 곱게 살아오신 귀족 부인의 말씀으로 밖에 보이질 않기도 하고요. 프랑스나 우리나라와 같은 제 3자가 아닌 한번도 바깥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이란의 대중들이 이 작품을 보게 되면 과연 어떻게 받아들이고 무슨 말을 하게 될런지 조금 궁금하네요. 현재의 이란 지도층에선 물론 그리 반갑게 대할 리가 없는 작품일테죠. 그런 상황에서 빚어질 수 있는 논란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이 바로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한 그대로'라는 점을 강조하는 이런 자서전적 방식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페르세폴리스>가 그다지 만족스럽지 못한 작품이 된 것도 결국 마르잔 사트라피의 입장에 크게 감정 이입을 하기 힘들었던 제 탓이려니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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