깐느 영화제 60주년 기념작. 영화관이라는 공통 소재에서 출발한, 무려 서른 다섯 명의 거장들이 만든 그들 각자의 단편들. 과연 깐느가 아니면 어디서 이런 프로젝트를 할 수 있었겠나 싶으면서도 그래 참 잘 나셨네요, 하게 되는 얄궃은 심정이었달까. 왠지 제대로 만든 영화 같지가 않고 다른 DVD 타이틀에 번들로나 들어가야 어울릴 법한 이상한 조합품은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야만 조금이나마 공평한 세상을 살고 있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봐, 괜한 문화 사대주의 같은 건 가질 필요가 없다고. 깐느라는 브랜드에, 그리고 유명한 감독들의 이름값 때문에 헬렐레 하면서 달려드는 건 역시 쪽팔리는 일이잖아. 그러나 제 집안 잔치를 위해 만들었다는 이 짤막짤막한 필름 쪼가리 모음집은 문화적 왜소감에 시달리는 어느 관객의 질투심을 가볍게 넘어서며 그 명성에 충분한 이유가 있음을 증명한다. 깐느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고 그 많은 감독들의 명성도 결코 헛된 것이 아니다. 영화관을 드나들며 2시간짜리 여흥 이상의 그 무엇인가를 열심히 찾아왔던 관객들이라면 <그들 각자의 영화관>에 가득 담긴 수많은 쉼표들을 함께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쉼표는 지구 반대편에서 보내온 깐느에 대한 따뜻한 존경과 축하의 메시지이기도 하고 또 어떤 쉼표는 미래의 영화가 좀 더 관심 가져줘야 할 또 다른 반대편의 모습을 비춰주기도 한다.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과연 그들 각자의 이해와 관심, 스타일과 연출 역량을 반영하는 개별적인 작품들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한데 모여 상영되는 동안은 결국 같은 결론으로 수렴된다. 우린 오랫동안 영화를 사랑해왔고 영화와 더불어 사랑했으며 앞으로도 오랫동안 사랑하게 될 사람들이라는 거다. 아무런 강요나 원칙도 필요하지 않다. 한결같은 그 마음 하나로 충분한 세상이다.
영화제에서 상영된 버전과 달리 국내 상영판에는 코엔 형제와 마이클 치미노의 작품이 제외되었고 그 대신 데이빗 린치의 작품이
추가되었다. 두 작품이 제외된 무척 아쉬운 일이지만 작품을 만든 감독들이 상업적인 상영을 원치 않아서 였다고 하니 수긍이 가긴
한다. 그러니까 <그들 각자의 영화관>은 애초에 35명(다르덴 형제와 코엔 형제는 2명씩)의 33편의 모음집인데
2편이 빠져서 31편이었다가 데이빗 린치의 작품이 추가되면서 총 32편이 상영되고 있는 셈이다.
1. 야외 상영관 (레이몽 드파르동) - 어느 건물 옥상에서 영화 상영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담았다. 계절이 좋을 때에는 낙원상가 4층의 그 넓은 공간에서 야외 상영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달려드는 벌레 때문에 괴로울라나.
2. 어느 좋은 날 (기타노 다케시) -
사고뭉치 영사기사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기타노 다케시가 너무 반갑다. <키즈 리턴>의 주제 음악을 참 좋아하는데
이렇게 잠깐씩 듣게 되니 영화가 다시 보고 싶어졌다. 동화속 풍경 같은 외딴 영화관과 왕창 짤라먹고 대충 보여줘도 군말 않고
가는 농부. 그런데 오실 때에는 자전거 타고 오셨잖아요?
3. 3분 (테오 앙겔로풀로스) - 꿈 속을 걷듯 인적없는 영화관에 들어온 잔느 모로가 젊은 시절의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대면하며 독백을 한다. 영화란 바로 그런 것.
4. 어둠 속의 그들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
펠리니의 <8 1/2>을 상영하는 상영관엔 매표 일을 하는 그녀와 젊은 연인 뿐이다. 영화가 끝나건 말건 누가 보건
말건 젊은 연인들은 자기들 일에 바쁘다. 그녀는 극장 매표소를 아예 닫아버리고 영화를 처음부터 다시 본다. 연인들은 극장 밖
자기들의 세계로 빠져나간다. 매번 느끼는 거지만 러시아 영화들은 화면빨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것 같다. 보기 좋다.
5.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일기 (난니 모레띠) -
자기가 본 이런저런 영화 이야기를 하는 영화 관객 난니 모레티. 워쇼스키 형제들과는 좀 다른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지만 아들과
함께 <매트릭스 리로디드>를 보러 오겠다고 약속한다. 영화 관람이란 바로 그런 것. 덮수룩한 수염이 꼭 로버트 드
니로 닮으셨어요.
6. 전희 영화관 (허우 샤오시엔) - <쓰리 타임즈>의 커플 장 첸과 서 기가
부부의 연을 맺고 아이들과 함께 극장 나들이를 한다. 그들이 극장 안으로 들어서면서 현재 시점으로 바뀔 때 탄성이 절로 나온다.
그때 그 시절을 함께 했던 영화관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7. 어둠 속에서 (쟝-삐에르 다르덴 & 뤽 다르덴) - 어두운 극장 안의 소매치기. 영화를 보며 감정이 북받쳐 오른 그녀는 눈물을 닦으려는 듯 소매치기의 손을 집어 자신의 얼굴로 가져간다. 다르덴 영화의 주제를 응축해놓은 듯한 작품.
8. 그들의 어리석음 (데이빗 린치) - 실제와 환상의 경계를 지워버리고 있는 최근작들의 경향을 반영한 듯한 작품. 스크린에서 튀어나와 객석에 걸쳐있는 거대한 가위, 그 한 컷만으로도 이미 완성작이다. 과연 데이빗 린치다.
9. 애나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
32편 가운데 베스트를 꼽으라면 나는 이 작품이다. 담배 한 개비를 만지작거리며 영화를 보고 있던 애나(루이사 윌리엄스)에게 옆
자리의 남자가 영화의 장면을 설명한다. 앞을 보지 못하는 애나는 등장 인물들의 대사는 들을 수 있지만 동작은 볼 수가 없다.
이내 눈물을 쏟고 마는 애나. 영화는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홀로 극장 밖으로 나와버린 애나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담배를
태운다. 뒤따라 나온 남자가 애나를 안아주고 극장 밖까지 따라나왔던 영화의 배경 음악은 그제서야 멈춘다. 눈으로 보지 못하는
영화 감상이란 어떤 것일까. 훨씬 더 큰 자기 투영이 과정이지 않을까. 워낙 클로즈업된 화면 탓이기도 하지만 감정적인 임펙트가
엄청난 작품이었다. 감독의 이름을 보고 아, 역시! 했다.
10. 영화 보는 날 (장예모) - 중국의 어느
산골 마을의 영화 상영일 풍경음 담았다. 대낮부터 기다린 사람들은 드디어 해가 지고 영사기사들이 참을 먹는 동안에도 자리를 뜰
줄을 모른다. 라이트 온. 한바탕의 그림자 놀이가 이뤄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피곤한 동네 아이는 그만 잠이 들고 젊은 시골 처녀와
영사기사는 미소를 주고 받는다. 장쯔이를 픽업했던 즈음의 장예모 영화 스타일.
11. 하이파의 (아모스 지타이) -
1936년 바르샤바에서 영화를 보는 유태인들의 모습. 그리고 하이파에서 영화 관람을 하는 현재 시점의 풍경. 공습 경보가 울리고
군인들이 극장 안에 들어와 대피할 것을 종용한다. 결국 극장은 폭격을 당하고 관객 일부가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극장 안으로
밀려들어오는 이스라엘의 현재.
12. 무당벌레 (제인 캠피온) - 남성 중심의 영화계에서 버텨온 제인 캠피온 자신의 처지를 상징한 것일까. 무당벌레는 누구에게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스스로 즐거워 춤을 춘 것 뿐인데 극장을 관리하는 그 남자는 무당벌레를 못잡아서 안달이다.
13. 동시 상영 세 편 (아톰 에고이앙) -
바야흐로 핸드폰만 있으면 내가 보고 있는 저 광경을 멀리 있는 누군가에게도 보여줄 수 있는 세상이다. 각자의 영화관에서 서로
다른 영화를 보던 그들은 문자를 주고 받다가 결국 자신이 보고 있는 영화의 장면을 실시간으로 전송한다. 새로운 세대의 영화
보기인가? 그나저나 영화관 안에서 핸드폰질은 제발 삼가해야 맞는 거다.
14. 주물 공장 (아키 카우리스마키) -
6시부터는 공장 내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한다. 작업 광경이 몇 장면 나올 때에는 알아채기 힘들지만 극장 앞 장면이 나오자 마자
이건 '아키 카우리스마키 영화'의 티가 팍 난다. 인공적인 세트와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사람들. 그들도 우리처럼.
15. 아이러니 (올리비에 아싸야스) - 그러니까 그 소매치기가 훔친 건 새 남자친구와 함께 영화를 보러 온 그녀의 핸드백이 아니라 그녀가 갖고 가버린 자신의 마음이었던 게지. 앞뒤 스토리는 관객들이 알아서 상상하라는 식의 단편.
16. 47년 후 (유세프 샤힌) -
이집트 출신 감독의 자전적인 추억담. 내가 영화 만드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을까 싶었던 데뷔 시절. 47년 후 마침내 깐느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47년 간 이 순간을 기다리셨다니. 상 안드렸으면 정말 큰 일 치렀을 뻔.
17. 꿈 (차이 밍량) - <안녕, 용문객잔>에서와 같은 상영관인 것 같다. 할아버지,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관람하는 어린 차이밍량. 아니, 차이밍량의 어린 시절과 현재와 미래의 모습인가?
18. 그 남자의 직업 (라스 폰 트리에) -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약간 어색한 듯한 이 사람은 바로 라스 폰 트리에 본인. 영화는 관심에도 없고 자기 자랑에만 열을 올리던 자에게 도끼 세례를. 너 같은 놈 죽이는 게 내 직업이야.
19. 선물 (라울 루이즈) -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도통 이해가 안되었던 작품.
20. 바로 앞의 극장 (끌로드 클로슈) -
<잉글리쉬 페이션트>에서 랄프 파인즈와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와 춤을 출 때 나오는 노래가 있다. 프레드 애쉬타이어의
Cheek To Cheek 오리지널 장면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 극장에서 처음 만나 사랑하게 되었던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회상.
21. 첫 키스 (구스 반 산트) - 어느 소년의 첫 사랑은 스크린 속의 그녀. 결국 스크린 속으로 들어간 소녀가 아름다운 해변가를 배경으로 첫 키스를 한다. 구스 반 산트의 미소년 취향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주는 작품.
22. 에로틱한 영화 보기 (로만 폴란스키) - 영화 감상을 훼방놓는 자에겐 라스 폰 트리에의 도끼질을 퍼부어주고 싶긴 하지만 로만 폴란스키의 생각은 좀 다른가 보다. 그들도 각자의 사정이란게 있는 법.
23. 최후의 극장에서 자살한 마지막 유태인 (데이빗 크로넨버그) -
아, 데이빗 크로넨버그도 유태인이었구나. 미래의 어느 시점, 영화는 멸종했고 마지막 남은 극장의 화장실에서 마지막 남은 유태인이
자신의 자살 광경을 실시간 중계한다. 이 광경을 중계하는 남녀 목소리의 주인공들은 대체 누구인가. 영화가 사라지고 유태인이 모두
박멸되는 그 순간까지 자기 정체성과 영화관을 지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현하는 크로넨버그식 고백인가. 하긴 세계 영화 자본을
유태인들이 쥐고 있기는 하다.
25. 내 로미오는 어디에 (압바스 키아로스타미) - 아마도 이란의 여배우들이신 듯. 특히 마지막 할머니는 굉장히 원로 배우이신 것 같고.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저렇게들 감동을 하시는군요.
26. 마지막 데이트 (빌 어거스트) - 영화관에서 벌어지는 유쾌한 꽁트. 그녀와 잘 해보려는 마음은 이해한다만 기왕이면 영화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게나, 친구.
27. 난감함 (엘리야 슐레이만) - 아마도 감독 본인이신 듯 한데, 우디 앨런 뺨치고 남을 코미디를 보여준다. 라스 폰 트리에는 슐레이만에게 연기 지도 좀 받으시고. <은하해방전선>을 연상케 하는 GV 장면.
28. 특별한 만남 (마누엘 데 올리베이라) - 무성영화 형식으로 재현한 후르시초프과 교황의 만남. 너와 나는 같은 종족이야, 그렇지?
29. 깐느에서 8,944km 떨어진 마을 (월터 살레스) - <400번의 구타>를 상영하는 어느 극장 앞. 두 남자가 깐느에 관한 만담을 리드미컬하게 들려준다. 월터 살레스가 브라질 어느 모퉁이에서 깐느 영화제에 보내는 편지랄까.
30. 평화 속 전쟁 (빔 벤더스) - 아프리카의 어느 마을 비디오 상영관에서 <블랙 호크 다운>이 상영되고 있다. 오랜 내전 끝에 마침내 평화를 되찾은 아프리카. 빔 벤더스 영화는 갈수록 사회 참여를 강조한다.
31. 자전거 모터 (첸 카이거) -
몰래 영사기를 돌려 자기들만의 야외 상영을 즐기던 꼬마들. 정전이 되자 자전거로 전기를 일으켜 영화를 본다. 정신없이 페달을
밟으면서도 영화 속에 푹 빠질 수 있는 건 어린 영혼들의 특권인가 보다. 이 작품에도 스크린을 눈으로 보지 못하는 아이가 하나
나온다.
32. 해피 엔딩 (켄 로치) - 오랜만에 아들과 극장 나들이에 나선 아빠. 무슨 영화를 볼까. 이것도 시시하고 저것도 별 볼 일 없고. 차라리 축구를 보고 싶어요? 저엉말? 그래 축구가 훨씬 낫지 뭐냐.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