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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브로큰 잉글리쉬 (Broken English,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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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잉글리쉬>가 보고 싶었던 첫번째 이유는 파커 포시(Parker Posey, 1968 ~)가 주연으로 출연한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파커 포시의 연기 경력은 주로 리차드 링클레이터, 할 하틀리, 그렉 아라키, 줄리앙 슈나벨과 같은 미국 인디 영화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필모그래피에는 <유브 갓 메일>(1998), <스크림 3>(2000), <푸쉬캣 클럽>(2001)과 같은 주류 영화들도 있긴 합니다만 대부분 존재감을 느끼기 어려운 단역 출연이 대부분이었죠. 그런 와중에 <블레이드 3>(2004)에서 한니발 킹(라이언 레이놀즈)를 고문하는 여성 벰파이어, 대니카 탈로스를 연기하면서 파커 포시의 개성있는 외모와 뛰어난 연기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블레이드> 시리즈는 케이블 TV에서 자주 틀어주는 프로인데 그 세번째 작품인 3편에서 삐쩍 마른 외모에 동정의 여지가 없는 사악한 벰파이어 캐릭터로 등장해 꽤나 강한 인상을 남겨줍니다. 그리고 제가 이 배우에 대해 처음 관심을 갖고 기억을 하게 만든 <수퍼맨 리턴즈>(2006)에도 출연했죠. 물론 파커 포시는 수퍼맨의 연인 로이스 레인이 아닌 조역으로 출연했습니다. 렉스 루터(케빈 스페이시) 일당들 가운데 한 명인 키티 코왈스키로 출연했습니다. <101 달마시안>(1996)의 크루엘라 드 빌을 연상케하는 모습이었지만 전형적인 악당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캐릭터였다고 할까요. 파커 포시의 키티 코왈스키라도 없었더라면 <수퍼맨 리턴즈>는 개인적으로 무척 지루했던 영화로만 기억되었을 겁니다.

<브로큰 잉글리쉬>는 할 하틀리 감독의 <페이 그림>(Fay Grim, 2006)과 함께 파커 포시가 최근 주연으로 출연했던 2편의 인디 영화들 가운데 하나입니다. 친구인 조 R. 카사베츠 감독의 작품인데, 조 R. 카사베츠 감독은 배우이자 감독인 존 카사베츠와 지나 롤랜즈의 딸이라고 합니다. 미들 네임의 이니셜 R.이 어머니 성인 롤랜드더군요. 지나 롤랜즈는 극중에서 노라 와일더(파커 포시)의 어머니로 출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파커 포시의 상대역으로 출연하는 벨빌 포푸는 프랑소와 오종 감독의 <타임 투 리브>(2005)에 출연했던 바로 그 프랑스 배우죠. 파커 포시의 주연 영화인데 오랜만에 벨빌 포푸까지 볼 수 있다니 이게 왠 떡이냐 싶은 영화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노라의 친구 오드리 역으로 출연하는 드리아 드 마테오는 어디서 뵈었던 배우인가 했더니 TV 시트콤 <프렌즈>의 방영이 종료된 이후에 매트 르블랑의 캐릭터 조이 트리비아니를 앞세운 시트콤 <조이>(Joey, 2004 ~ 2006)에서 조이의 누나 지나 트리비아니로 출연했던 그 배우더군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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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의 30대 독신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멜러물 <브로큰 잉글리쉬>는 줄거리만으로는 그다지 새로울 것이 없는 작품입니다. 부띠끄 호텔의 VIP 전담 매니저로서 일도 잘하고 남자도 끊이지 않는 노라의 이야기이긴 합니다만 정서 상으로 <섹스 앤 더 시티>의 누님들 이야기와는 정반대의 대척점에 놓인 작품이라 하겠습니다. <섹스 앤 더 시티>가 워너비들을 위한 판타지를 만족시켜주는 작품이라면 <브로큰 잉글리쉬>는 실제 그와 같은 입장에 놓인 이들의 현실적인 부분을 건드리면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쪽입니다. 그렇다고 섣부른 위로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지도 않습니다. 노라는 결국 직장을 그만두고 파리로 떠나지만 다시 만나려고 했던 줄리앙(멜빌 포푸)의 전화번호를 잃어버리면서 일시적인 기분 전환 그 이상의 의미는 찾기 힘든 여행이 되고 맙니다. 좌절과 두려움 밖에 남지 않은 노라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제공해주는 호텔에서 중년 남성과의 대화는 마치 소피아 코폴라 감독의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2003)의 압축판을 보는 듯 하더군요. 결국 중요한 것은 내 안의 행복을 스스로 찾는 길 밖에 없는 것이죠. 그걸 아는 것 만큼 잘 해내기가 쉽지 않은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요.

마지막 10분의 씨퀀스는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서게 될 관객들의 표정 관리를 위한 '마법' 같은 우연일 뿐입니다. 그와 같은 극적인 우연 앞에서 노라가 마법 같은 결말을 거부하고 과감히 자기의 길을 가는 것으로 끝났더라면 영화가 너무 계몽적으로 보였을까요? 아니면 판타지를 거부하는 또 하나의 판타지가 되었을까요? <브로큰 잉글리쉬>의 마지막 컷에서 노라의 표정은 행복감에 취한 것처럼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더이상 우울한 것만도 아닙니다. 당장의 기쁨을 손에 넣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미래의 내 인생을 완전히 책임져줄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자의 표정이라고 해야겠지요. 생각해보면 <브로큰 잉글리쉬>의 마지막 대사는 거의 의도적이라고 할 만큼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선셋>(2004) 에서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의 마지막 대사와 거의 똑같습니다. "너 비행기 놓친다." "알아." 똑같은 마무리임에도 <브로큰 잉글리쉬>가 <비포 선셋>의 30대 철부지들의 흥겨움을 모방하지 않고 있는 것은 현실적으로 결혼과 사랑을 따로 떼어서 생각하기 힘든 미혼 여성의 불안과 좌절감이 워낙 생생하게 다뤄진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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