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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레몬 트리 (Etz Limon,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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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트리"라고 하면 아직도 독일 밴드 Fool's Garden의 달짝지근한 노래 구절이 먼저 떠오릅니다만, 영화 <레몬 트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국경 지대에 놓인 어느 레몬 농장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50년 전부터 대를 물려 레몬 나무를 키워온 살마(히암 압바스)의 작은 농장 옆으로 이스라엘 국방 장관이 이사를 온 것이 이야기의 발단이 됩니다. 정보국은 경호 업무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레몬 나무를 전부 잘라내려 하고 이에 살마는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소송을 진행합니다. 말하자면 일본 식민 지배를 받던 시절에 우리나라 농민이 일본 총독을 상대로 소송을 거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죠. 승소할 가능성이 거의 없는 게임입니다만 그거라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는 좌절과 슬픔 때문에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살마의 레몬 농장 소송은 국제적인 스캔들이 되어가고 그 과정에서 살마와 국방 장관의 아내는 담장 너머로 같은 중년 여성으로서의 유대감을 키워갑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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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몬 트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직면하고 있는 현 상황에 대한 인식과 화해의 모색을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다룬 작품입니다. 같은 문제를 팔레스타인의 관점에서 다룬 <천국을 향하여>(2005)에 비하면 그 절실함이나 심각성에 있어서는 한참 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생각됩니다. 이스라엘 관객들의 눈높이에 맞추다 보니 마치 TV 연속극을 보고 있는 듯 했다고 할까요. 살마와 변호사의 멜러 라인이나 국방 장관과 그의 아내의 갈등을 다루는 비중이 꽤 높은 편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이라고 전부 무장 투쟁 세력이고 잠재적인 자살 폭탄 테러리스트인 것은 아닐테지만 살마와 국방 장관의 아내 사이에 형성되는 유대감을 설명하기 위해 다소 인위적인 진행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무리수를 두다보니 국방 장관은 전형적인 마초에 이중인격자로 그려질 수 밖에 없는 거죠. 배우들의 연기도 어딘지 모르게 '연기한다'는 느낌을 주곤 합니다.

너무 심각하기만 하고 무거운 톤을 고집하는 것 보다는 좀 더 대중적인 화법으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문제를 생각해보고 양측의 화해와 인간성 회복의 실마리를 제시하는 것이 <레몬 트리>의 미덕이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이는 이스라엘의 관점에서 다뤄진 영화다 보니 상황 인식 자체가 다소 나이브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동 영화라고 하면 팔다리가 잘려나간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나 결연한 표정으로 자살 폭탄 테러의 임무를 수행하는 팔레스타인 청년의 얼굴을 떠올리게 되는 제 입장에서 <레몬 트리>는 오히려 변화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외적으로 홍보하기 위한 작품이 아니냐는 의심마저 들게 합니다. 어쨌거나 <레몬 트리>는 지나친 낙관으로 흐르지 않으면서도 이스라엘 정부의 완고한 태도와 현 상황을 적절히 비판하면서 올해 베를린 영화제에서 파노라마 부문 관객상을 수상한 작품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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