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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젤리피쉬 (Meduzot,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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깐느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즉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는 또 한 편의 이스라엘 영화입니다. <젤리피쉬>를 공동 연출한 에트가 케렛과 쉬라 게펜 부부는 두 사람 모두 이스라엘에서 꽤 유명한 작가이자 배우라고 하는군요. 아내인 쉬라 게펜이 각본을 쓰고 이를 토대로 함께 두 사람이 함께 장편 데뷔작을 연출한 작품입니다. 남편인 에트가 케렛은 1996년에 단편 <스킨 딥>을 연출한 바 있습니다.

서로를 모르는 많은 인물들이 등장해 각자의 에피소드를 진행시키면서 서로의 관계가 밝혀지거나 하나의 결말로 수렴되는 등의 내러티브 구성은 그 자체로서는 그리 드문 것은 아닙니다. <젤리피쉬>에서는 3개의 이야기가 번갈아 가면서 배치되는데, 등장 인물들은 중간에 거의 옷깃을 스치는 수준으로만 잠시 지나칠 뿐이고 이야기의 진행에 있어 서로 간에 직접적인 연관성을 맺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마치 세 편의 단편을 하나의 작품으로 교차 편집해놓은 정도라고 할까요. 동거남과 헤어진 후 이상한 꼬마를 만나게 되는 결혼식장의 종업원 바티야(사라 애들러), 결혼식날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하고 신혼여행을 포기한 채 호텔에 묵게 되는 신부 케렌(노아 크놀러), 그리고 노인 병간호로 돈을 벌며 필리핀에 있는 아들을 그리워 하는 조이(마네니타 드 라토레)가 그 주인공들인데요, 거의 균등하게 러닝 타임을 채우고 있는 세 인물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인물을 꼽으라고 한다면 역시 영화의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을 모두 장식하게 되는 바티야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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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야의 이야기가 특별한 것은 케렌이나 조이의 이야기와 달리 자기 자신의 어린 시절 모습과 대면하게 된다는 다분히 초현실적인 전개 때문입니다. 동거남이 이사를 가버린 후 망연자실하게 바닷가에 앉아 있는 바티야에게 다가온 꼬마 아이는 결국 바티야가 간직하고 있던 아주 어린 시절의 기억입니다. 말하자면 이별의 상처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냄으로써 정신적인 방황과 치유의 과정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죠. 떠나버린 애인을 시작으로 아파트 주인, 결혼식장의 매니저 등이 모두 냉정하고 위선적인 세상을 구체적인 경험으로 전달하고 있는데 사실은 그런 경험의 시작은 어린 시절 부모에게서 이미 맛보았던 것입니다. 이혼한 아버지의 집에서 꼬마 아이가 찾아온 사진 속 인물은 사진사의 8미리 영화를 통해 보여지는 바티야의 기억 속 장면의 예고편입니다. 이 때문에 바다 속에서 자기 치유의 과정을 거친 후 해변에서 다시 마주치게 되는 마지막 장면은 뭉클한 감동을 안겨주게 됩니다. 영화의 중간 장면이 아니라 맨 마지막 컷 하나가 이렇게까지 감동적으로 느껴졌던 영화는 개인적으로 <젤리피쉬>가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바티야의 이야기와는 달리 신부의 다친 다리 때문에 결혼식 다음 날 여행을 가지 못하고 인근 호텔에 머물면서 시간을 보내는 신혼 부부의 이야기나 독거 노인을 병간호 하면서 고국에 있는 아들에게 줄 선물을 사고 싶어하는 필리민 여인의 이야기는 매우 사실적인 톤으로 그려지고 있으면서도 마지막에는 관객들을 위한 반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젤리리쉬>는 바티야의 방황과 치유의 과정을 그리는 동시에 내러티브 상에서 별다른 연관성을 갖지 않는 다른 이야기들을 추가로 배치하다가 한꺼번에 결말을 맺고 있습니다. 세 개의 이야기가 각기 어떤 점에서 서로 간에 연관성을 가질 수 있는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세 주인공이 모두 여성인데 하나는 애인과 헤어진 미혼 여성, 또 하나는 이제 막 결혼한 새 신부,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아이가 있는 어머니입니다. 모두가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지는 않지만 지독한 절망감을 느끼다가 마지막에 완전히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결국 삶의 신비에 관한 이야기인 것인가요? 어떤 부분은 작가의 자전적인 고백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이거 참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을 아리송한 질문을 또 하나 받은 느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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