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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누들 (Noodle,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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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들어 갑자기 몰려 들어오고 계신 이스라엘 영화들 가운데 한 편입니다.1) 몬트리얼 영화제에서 관객상을 받았다더군요.2) 스튜어디스로 보이는 미모의 누님이 한 분, 그 아래 동양인 꼬마가 있는 포스터를 처음 봤을 때부터 길 잃은 아이를 스튜어디스 누님이 돌봐준다는 얘기구나 싶었습니다. 둘 사이에 생길 만한 일이 그런 거 밖에 더 있겠어요? 상당히 작위적라는 것이 포스터를 통해 받은 첫 인상이었습니다. 여기에 하필이면 '누들'이라는 제목까지 붙이는 바람에 오리엔탈리즘과 동심 착취를 버무린 영화가 아닐까 하는 의심이 가게 만들더군요. 그러나 실제로 본 <누들>은 포스터에서부터 뻔히 예상되는 줄거리에 이스라엘 사람들의 시각에서 보는 아시아, 특히 중국에 대한 선입견도 약간 엿보이는 영화이긴 했습니다만 특별히 거부감을 주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드라마 장르의 공식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전반적인 호흡이 간결하고 군더더기가 없이 무척 잘 만들어진 영화였습니다. 그리고 막연한 휴머니즘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아이를 계기로 한번 더 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중점을 두고 있는 작품이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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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지 세련된 화면은 아닌 대신 지극히 사실적인 느낌을 일관되게 전달하는 <누들>은 중국인 불법 이민자의 어린 아들(바오치 첸)을 갑자기 떠맡게 된 미리(밀리 아비탈)가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마침내 중국인 모자의 상봉을 돕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습니다. 줄거리는 간단하지만 그 안을 채우고 있는 것은 미리와 누들이라 불리우는 중국인 꼬마 간의 소통 문제 보다는 미리의 언니 길라(아낫 왁스만), 항공사 선배이면서 언니와 별거 중인 형부(아론 압불), 그리고 미리 자매와 오랜 친구이면서 길라와의 과거가 있는 마티(이프타크 클레인)가 서로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와 갈등의 해소 과정에 큰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누들>은 겉으로만 보기에는 문화적 충돌과 휴머니즘을 소재로 한 아동극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아이가 아닌 어른들의 성장기인 셈입니다. 특히 군인이었던 두 남편을 모두 잃고 자식도 없이 언니 집에 얹혀 살던 미리는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떠맡겨진 엄마 잃은 아이를 돕는 과정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회복하게 됩니다.

자칫 지루하거나 지나치게 심각할 수도 있었던 내러티브에 활력을 불어넣어 주는 것은 미리의 언니 길라입니다. 냉소적인 직설 화법으로 무장한 길라는 동생인 미리와 시종일관 말싸움을 벌이면서 관객들에게는 유머의 제공자가 됩니다. 그러나 전형적인 사이드킥으로만 머물지 않고 나중에 밝혀지는 마티와의 관계를 통해 그 역시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주연급 조연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미리와 달리 얼굴에 불평불만이 가득한 아줌마의 인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남편과의 별거가 당연한 일처럼 생각되지만 의외의 로맨스로 나름의 반전을 선사한다고 할까요. 중국 세관에서의 긴장감 넘치는 순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는 사람도 다름 아닌 미리의 언니 길라입니다. 그러나 영화의 중심은 역시 주인공 미리가 누들을 중국인 엄마에게 데려다 주는 과정을 통해 얻게 되는 삶의 깨달음과 용기입니다. 어린 아이들의 존재라는 것이 우리가 막연하게 외워서 박제화시킨 미래의 희망인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어른들의 삶을 새롭게 해주는 실질적인 원동력이라는 사실을 <누들>이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자기가 낳은 자식에 대한 무한 애정이야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때로는 그것을 핑계로 가족 이기주의를 발휘하며 타인을 배척하기도 하지 않던가요. <누들>은 국경과 언어를 뛰어넘어 삶의 중심으로 삼아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3)를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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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스라엘이라고 하면 예전에 다니던 직장의 엘리베이터 안에서 들었던 이상한 언어, 그때의 생경함이 먼저 떠오릅니다. 그저 미국인들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전혀 못알아 듣겠더군요. 영어는 당연히 아니고 이건 프랑스어도 독일어도 아니요, 그렇다고 중동어도 아닌 것이 정말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언어였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이스라엘에서 온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였지요. 그게 바로 히브리어였던 겁니다.

2) 선댄스도 그렇지만 관객상 수상작이라고 하면 이제는 어느 정도 분위기가 감이 잡히는 것 같네요. 뛰어난 미학적 성취 보다는 다수 관객들에게 환영을 받을 수 있는 평이한 형식에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작품들이 관객상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될 듯 합니다. 물론 영화제마다 각기 다른 특색이 조금씩 반영되기는 하겠지만요.

3) 다른 건 다 버려도, 그리고 각자의 취향과 입장 탓이라 외면을 하더라도 이것 하나 만큼은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할 가치란 생명과 그 성장의 과정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거 하나 만큼은 정말 국경과 문화, 언어의 차이에 상관 없는 불변의 가치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