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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우린 액션배우다] 꿈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눈부신 청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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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액션배우다
정병길 감독, 2008년

당신을 웃다가 울게 만들 다큐멘터리     

“아파도 웃을 수밖에 없어요. 아프다고 저까지 인상 쓰면 현장 분위기가 더 안 좋아지니까요.” 액션연기를 하다 종아리에 상처를 입은 어느 스턴트맨이 화장실에서 웃으며 말한다. 얼굴은 웃고 있어도 그 표정 속에는 힘든 액션연기의 고통이 묻어난다. 그런데도 웃어야 한다는 얘기는 듣기만 해도 가슴이 아플 정도다.

몸을 던져 액션연기를 해야 하는 스턴트는 3D 업종의 하나다. 위험(danger)을 무릅쓰고 온몸을 던진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difficult), 항상 주연배우의 그늘에 가려 아무런 주목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dirty). 그래서 사람들은 스턴트맨이 힘든 삶을 살고 있을 거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아마도 ‘인간극장’ 같은 다큐멘터리였다면 이들의 이야기를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신파로 만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병길 감독은 <우린 액션배우다>에서 이들의 이야기를 정반대로 가장 유쾌하게 그려낸다. 왜냐면 이들의 삶이 우리의 생각만큼 고달픈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스턴트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생각한대로 스턴트 연기가 나오지 않아 실망스러울 때도 있고, 차를 뒤집다 얘기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럼에도 영화의 주인공들은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들에게 스턴트는 더럽고 어려우며 힘든 일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재밌고 즐거운 일이기 때문이다. “스턴트를 하다 죽는 게 무서우면 이 일을 해서도 안 되고, 할 수도 없어.” 여전히 스턴트맨으로 일하고 있는 권귀덕의 이 한 마디는 스턴트라는 일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이미 스턴트가 어렵고 힘든 일이라는 고정관념을 뛰어넘은 것이다. 정병길 감독은 스턴트맨의 삶을 외부에서 관찰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그들의 삶에 파고들어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영화가 시종일관 유쾌함과 재미를 잃지 않는 것은 그래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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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린 액션배우다>가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초점도 ‘스턴트맨’이 아닌 ‘서울액션스쿨 8기 수료생’에 맞춰있다. 처음 오디션에 통과한 사람은 36명이었지만, 힘든 훈련을 마치고 수료를 한 것은 15명이었고, 그중에서도 스턴트맨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이들은 고작 3명에 불과하다. <우린 액션배우다>는 스턴트맨을 그만둔 수료생은 물론,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의 이야기까지 담아내며 바로 지금을 살아가는 20대의 삶을 조망한다. 표정이 가식적(?)이라는 이유로 오디션에 통과하지 못한 한 젊은이는 오디션에 떨어진 게 아쉽긴 하지만 지금은 에어로빅 강사를 하며 선생님 소리 들으며 지낸다고 후회는 없다 말한다. 그 희망찬 모습에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젊음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제대로 하는 일 하나 없이 언제나 사고만치는 전세진의 에피소드가 마냥 우스꽝스럽게 보이지 않는 것은, 영화가 그의 엉뚱한 행동들마저도 청춘일 때에만 가능한 열정의 표현으로 바라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린 액션배우다>의 다섯 주인공들에게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미래’가 아닌 ‘현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에 그들은 실패 역시 두렵지 않다. 실패의 두려움이란 미래에 일어날 수많은 가능성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온몸을 내던져 스턴트를 한다. 뼈가 부러지고 인대가 늘어나도 액션연기에 매달리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가장 혈기왕성한 20대만이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보다 미래를 생각하며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는 지금, 현재에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청춘이란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되묻게 한다.

결과적으로 영화의 주인공들은 ‘우린 액션배우다’라는 제목과 달리 대부분 스턴트를 그만두게 된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의 촬영 도중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중현 무술감독의 사망소식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그들 스스로가 또 다른 하고 싶은 일을 찾았기 때문이다. 그동안 모은 돈으로 근사한 바를 차리고, 아무런 계획도 없이 배낭 하나 메고 여행을 떠나는 그들은 여전히 꿈을 잃지 않은 청춘들이다. 영화가 말하는 ‘액션배우’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라기보다 현재에 충실하며 끊임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꿈을 찾아가는 청춘들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린 액션배우다’라는 제목은 남들의 시선을 받는 화려한 주인공과 같은 삶보다는, 남들이 보지 않아도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하며 살아가는 액션배우의 삶을 살겠다는 다짐과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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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과 눈물, 그리고 감동이 공존하는 다큐멘터리 <우린 액션배우다>는 젊은 감독이기에 가능한 작품인 동시에 독립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신선함이 한껏 녹아있는 작품이다. 꿈을 위해 온몸을 내던지는 눈부신 청춘들의 이야기를 이토록 진솔하게 담아낸 영화는 흔치 않다. 젊은 감독이 동시대의 젊은이들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래 기억하고 싶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