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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스키피오의 꿈 (The Dream of Scip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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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거포스트,1663'의 저자인 이언 피어스의 저서인 '스키피오의 꿈'은 전혀 다른 시대이지만 프랑스의 프로방스 지역이라는 같은 지역에 있었던 세 사람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허울뿐인 로마가 멸망 직전이었던 5세기의 만리우스 히포마네스, 교황이 아비뇽에 있을 때 흑사병이 유럽을 휩슬고 있었던 14세기의 올리비에 드 노엔, 그리고 독일에게 점령당한 2차 대전 시기의 쥘리엥 바뇌브가 바로 이들인데 서로 다른 시대이지만 사건의 기승전결에 맞추어 진행되기 때문에 마치 동시대에 세 사람이 행동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세 명은 서로 다른 시대의 사람들이지만 똑같이 선택의 갈림길에서 고민한다. 만리우스는 원래 기독교인이 아니지만 자기 지역의 평화를 얻기 위해 권력을 얻을 수 있는 베종의 주교가 되고 로마의 평화를 지키는 방법을 둘러싸고 절친한 친구인 펠릭스와 대립하게 된다. 올리비에는 만리우스가 작성한 '스키피오의 꿈'을 해석하기 위해 랍비를 만나다 거기에 있던 유태인 여성 레베카를 사랑하게 된다. 흑사병이 돌자 올리비에의 후원자인 세카니 추기경은 교황이 되겠다는 야심을 실현하기 위해 흑사병의 책임을 유태인으로 돌리려고 한다. 올리비에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할 것인지 아니면 자기의 후원자를 위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쥘리엥의 경우는 앞의 두 인물의 고민을 혼합한 형태인데 올리비에처럼 유태인 여성인 줄리아를 사랑하지만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힘쓰는 한편 나치에게 점령당한 프랑스의 미래를 위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행동하는 두 친구인 마르셀과 베르나르 사이에서 갈등하게 된다.

결국 세 명의 고민은 스키피오의 꿈이라는 소재처럼 '진정한 덕의 실현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우선 '스키피오의 꿈'에 대해 간략히 설명하자면 키케로가 쓴 국가론에 실재로 나오는 신화인데 소 스키피오(3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이 꿈에서 아버지인 대 스키피오(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2차 포에니 전쟁의 영웅)을 만나 진정한 덕의 실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내용이라고 한다. 세 주인공은 앞서 말한 스키피오의 꿈의 내용처럼 진정한 인생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고 결국은 서로 다른 방식을 취한다. 세 사람의 선택은 다른 결과를 가져오는데 이 결과는 독자들의 생각에 따라서 성공일수도 있고 실패일수도 있다. 전작의 핑거포스트에서 우즈의 증언을 통해 소설의 이정표를 정리했다면 '스키피오의 꿈'은 세 사람의 선택의 결과를 객관적으로 서술할 뿐 작가의 주관은 배제되어 있다. 결국 누가 옳은 선택을 했고 진정한 실천은 무엇인지는 독자의 몫이다.

'스키피오의 꿈'을 읽고 한편으로는 진정한 종교의 실천이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해 볼 수 있다. 세카니 추기경처럼 교회와 자신의 이득을 위해서 유태인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는 것이 올바른 기독교적 사랑일까?  올리비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자신과 종교가 다른 이교도인 유태인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는 아가페적인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며 종교가 아닐까 생각된다.

처음 '스키피오의 꿈'을 접했을 때는 핑거포스트와 같은 추리소설을 기대하고 읽어서 그런지 실망감이 컸었다. 하지만 점점 책을 읽으면서 세 주인공의 고뇌에 공감을 하게 되었고  진정한 삶의 실천과 종교의 올바른 이상 등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할 수 있었다. 한 편의 역사철학서를 읽은 느낌이 들 정도로 이언 피어스의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을 한 단계 끌어올린 느낌이다. 개인적으로는 소장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