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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컨트롤 (Control, 2007)



10 여 년 전에 처음 알게된 디페쉬 모드(Depeche Mode)를 오랫동안 좋아하다 보니 이들의 앨범 뿐만 아니라 공연 실황이 담긴 DVD들도 구입해서 감상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알게 된 이름이 안톤 코르빈(Anton Corbijn)이었는데 디페쉬 모드의 뮤직비디오와 공연 실황, 앨범 자켓까지 도맡아서 연출하는 사진작가 출신의 아트 디렉터라고 할 수 있는 인물이었죠. 혹자는 안톤 코르빈을 디페쉬 모드의 또 한 명의 멤버라고도 하고요. 그렇게 이름 정도만 기억하던 이가 장편 데뷔 영화를 찍었다는데 아니나 다를까, 조이 디비전(Joy Division)이라는 70년대 밴드의 전기 영화라고 하더군요. 젊은 날의 맷 딜런을 연상시키는 주인공의 모습이 담긴 포스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영화를 볼 날이 있을까 하고 있던 차에 지난 부산 국제영화제에 갔을 때 길가에 붙은 포스터를 발견했어요. 아, 이 영화가 곧 개봉을 하는 모양이구나 싶었죠.

<컨트롤>의 개봉일자는 10월 30일로 잡혀 있더군요. 저는 이 영화를 비행기 안에서 먼저 봤습니다. 쪼만한 개인용 모니터에 우리말 더빙이 된 버전이었죠.(그나저나 비행기에선 왜 한글 자막은 서비스를 안하나요? 모니터가 너무 작아 눈이 아플까봐?) 극중에 연주 장면이 나오면 성우가 가사를 읊어주더군요. 그러다 기내 안내 방송이 나오면 영화의 사운드는 아예 중단이 됩니다. 이렇게 참으로 열악한 환경에서 감상을 했습니다만 언제나 그렇듯이 "좋은 영화는 AV를 탓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컨트롤>이라는 영화에 대한 소식을 알고 나서 예전에는 몰랐던 조이 디비전의 노래를 조금 들어봤었는데 솔직히 계속 듣고 있기가 힘들 정도였어요. 조악한 사운드에 억지로 짜내는 듯한 굵은 음성의 보컬이 영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통해 연주 장면을 보니 꽤 멋지더군요. <컨트롤>은 정확히 말해 조이 디비전의 보컬이었던 이안 커티스의 전기 영화인데, 이안 커티스의 연주하는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는 샘 라일리의 몸 동작과 옷차림에서 펄프(Pulp)의 자비스 코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자비스 코커의 연주가 이안 커티스에게 영향을 받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테지만요.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컨트롤>은 조이 디비전의 음악 보다는 이안 커티스의 짧은 생애에 좀 더 집중하고 있는 영화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음악 전기 영화들이 그렇듯이, 음악가의 생애를 이해함으로써 그들의 음악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있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또는 영화를 통해 그간 잘 몰랐던 음악가들과 그들의 음악 세계를 새로이 알게 해주거나요. 한 편의 드라마로 친다면 이안 커티스의 생애란 너무 단순했습니다. 19살의 나이에 결혼을 하고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장에서 밴드 멤버들을 만나 작사가인 동시에 보컬리스트로 합류하여 약간의 성공을 거두지만 가난 때문에 생활고를 겪어야 했고 그런 와중에 만난 다른 벨기에 여성(알렉산드리아 마리아 라라)과 또 다른 사랑을 나눕니다. 너무 이른 나이에 자살로 생을 마치기까지, 이안 커티스는 부인(사만다 모튼)과 또 다른 여성 사이에서 갈등과 혼란을 겪는데, 그의 삶을 괴롭힌 또 한 가지는 간질병이라는 병마였더군요.  결국 조이 디비전은 이안 커티스의 죽음과 함께 해체되고 남은 멤버들은 뉴 오더(New Order)라는 이름으로 다시 활동하게 된 거죠.

별로 대단할 구석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만큼 단순한 내용이지만 <컨트롤>은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흑백 영상과 함께 조이 디비전이라는 그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밴드의 음악을 감상해볼 수 있는 드문 기회를 제공해주는 작품입니다. 어찌보면 네덜란드 출신으로서 일찌감치 영국 포스트 펑크 음악에 매혹되어 지금까지 그 주변부에서 살아온 안톤 코르빈 감독의 지극히 개인적인 오마쥬 영화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용상 다소 심심할 수도 있는 작품임에도 저는 이 영화가 무척 좋더군요. 조이 디비전의 끔직한 사운드의 곡들이 조금 놀랍기는 했지만 이제 영화를 보고 나서야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고 할까요. 역시 음악을 귀로만 듣는 건 한계가 있다니까요. 극장 개봉을 하면 아마도 다시 보러가게되지 싶습니다. 성우의 우리말 나레이션이 없는 자막 버전으로 제대로 곡들을 들어봐야지요. <컨트롤>은 이안 커티스의 부인 데보라 커티스가 쓴 자서전 <Touching From A Distance : Ian Curtis and Joy Division>을 토대로 매트 그린할이 각색해 만든 작품입니다. 2007년 깐느 영화제에서 감독 주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는군요. 지극히 주관적인 이유로 저 역시 큰 상 하나 안겨주고 싶은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