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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군단: 레지스탕스의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

그림자 군단
감독 장-피에르 멜빌 (1969 / 프랑스, 이탈리아)
출연 리노 벤추라, 폴 무리세, 장-피에르 카셀, 시모네 시그노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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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개선문의 정면을 고정된 쇼트로 담아낸 다음 정면을 향해 전진하는 한 부대의 모습을 롱테이크로 보여주고 있다. 처음에는 단순한 군대의 행진처럼 보이던 병사들이 카메라를 향해 다가오면서 그들이 독일군임을 강렬하게 보여준다. 초반 인트로 장면에서 보여지듯이 '그림자 군단'은 바로 독일군에 의해 프랑스가 점령된 40년대의 우울한 풍경을 담아낸 영화이다. 영화의 암울한 성격을 반영하듯 비내리는 어두운 날 교도소로 한 남자를 호송하는 차가 등장한다. 교도소장의 나레이션을 통해 영화는 필립 제르비에라는 남자가 겉보기에는 침착하고 냉정한 엘리트처럼 보이지만 비밀 조직인 레지스탕스의 일원일 수도 있음을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수용소에 갇히게 된 필립 제르비에의 내면을 나레이션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그의 심정을 관객들에게 전달한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붙잡힌 수용소의 풍경과 그들을 바라보는 필립 제르비에의 냉정하고 침착한 표정은 영화의 삭막한 분위기를 인상적으로 표현한다.

초반 수용소 장면에서 필립 제르비에라는 인물의 성격과 내면을 전달한 후 영화는 수옹소를 극적으로 탈출한 필립을 통해 새로운 국면을 전개한다. 잠시 경계가 느슨한 틈을 타 독일군 기지에서 간신히 탈출한 필립이 독일군의 추격을 피하는 장면은 생각치 못한 긴박감을 조성한다. 숨이 차도록 뛰어다닌 후 필립은 독일군을 피하기 위해 이발소에 들어간다. 이발소에 들어간 핑계로 이발사에게 면도를 부탁한 필립은 자리에 앉아 이발 준비를 한다. 이발사가 면도를 하는 사이 필립은 벽면에 붙인 페텡 원수의 말이 적힌 찌라시를 보고 이발사가 페텡 지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하지만 무뚝뚝한 이발사는 끝까지 잔돈을 챙겨주겠다면서 그를 잡아둔다. 이발사가 잔돈을 가지러 간 사이 필립이 코트를 챙기고 나가려는 순간 이발사가 소리없이 나타나 그에게 잔돈과 그가 입을 다른 코트를 쥐어준다. 묵묵한 표정으로 코트를 넘기는 이발사와 그의 진심을 파악한 필립이 서둘러 그가 준 코트로 갈아입고 그에게 감사의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체 문을 나서는 장면은 따뜻한 인간애의 감정이 느껴진다.

독일군에게서 벗어난 필립 제르비에는 자신의 레지스탕스 조직을 이용해 그를 밀고한 배신자를 잡아들인다. 밀고자를 처벌하기 위해 필립을 비롯한 펠릭스와 마스크가 허름한 집에 들어가 처형 준비를 하지만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민간인들이 그곳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밀고자를 총으로 처형할 경우 민간인들에게 발각될 위험이 있음을 알게 된 필립은 밀고자를 총으로 죽이는 대신 목을 졸라 죽이기로 결심한다. 레지스탕스 조직에 갓 들어온 마스크는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애절한 눈빛으로 삶을 갈구하는 배신자의 표정과 사람을 죽여야 한다는 것에 대해 죄책감과 두려움을 느끼는 펠릭스와 마스크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쇼트들은 인물들의 심리를 인상적으로 보여준다. 배신자를 처단한 후 어두운 조명 속에서 서 있는 필립 제르비에의 모습은 복수를 갚은 통쾌함이 아닌 사람을 죽여야 했다는 비정함과 냉정함이 담겨져 있다.

필립 제르비에는 자유 프랑스 망명 정부가 있는 영국에 밀항할 인사들을 호송할 준비를 한다. 중요 인사들을 밀항시키는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펠릭스는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장 프랑수아를 만나 그에게 작전을 맡긴다. 엄중한 독일군의 경계 속에서도 대담하게 무전기를 반입한 후  레지스탕스 일원들에게 갖다준 임무를 마친 장 프랑수아는 자신이 사랑하는 유일한 사람인 형 뤽 자르디를 만난다. 형과 오랫만에 해후한 장 프랑수아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자신이 맡고 있는 비밀 작전을 누설하지 않기 위해 말을 돌린다. '안지 몇 일 안된 마틸드가 이럴 땐 형보다 가깝게 느껴진다. 이제 형에게는 서로 공통된 부분 없이 추억만 남았다.' 라고 고백하는 장 프랑수아의 내면은 형에게 비밀을 숨겨야 하는 그의 신중함과 냉정함을 잘 드러낸다. 형을 만난 후 장 프랑수아는 필립 제르비에로부터 레지스탕스 조직의 대장을 호송하라는 중대한 임무를 맡는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대장으로 보이는 남자를 배에 태운 후 그를 바라본 장 프랑수아는 그가 보통의 일반인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배에는 피라미드의 꼭대기와 바닥이 함께 놓여져 있다. 전쟁이 끝나면 기이한 수학법칙을 형에게 말해주어야 겠다.'라고 말하는 그의 내면은 보잘것 없는 자신이 레지스탕스의 대장과 함께 있는 모습을 인상적으로 전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