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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컨트롤] 스물 셋에 생을 마감한 이언 커티스를 기리며


컨트롤 (Control)

안톤 코르빈 감독, 2007년

‘조이 디비전’의 음악을 고스란히 닮은 영화

단조로운 사운드, 그 위에 낮게 읊조리는 보컬, 거기에 염세적이고 절망적인 가사까지,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말 그대로 음울하다. 록 음악이 지닌 정서가 거칠고 파괴적인 것이라고 한다면, ‘조이 디비전’은 그것이 외부가 아닌 내부를 향하고 있는 음악이다. 그것이 그들의 음악이 지닌 격정적인 감정을 만들어낸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이 지닌 이 모든 정서는 온전히 보컬 이언 커티스의 것이다. ‘조이 디비전’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죽음의 이미지는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조이 디비전’의 전부나 다름없었던 이언 커티스는 스물 셋이란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이다.

<컨트롤>은 이언 커티스의 짧지만 격렬했던 삶을 그린 전기영화이며, 그가 속했던 록 밴드 ‘조이 디비전’의 짧은 활동을 그린 음악영화로, ‘디페쉬 모드’ 등 여러 록 밴드의 뮤직비디오 작업으로 록 음악 팬들에게는 익숙한 안톤 코르빈 감독의 첫 번째 장편영화다. 2007년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아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에도 여러 영화제를 통해 호평을 받았다.

영화는 이언 커티스의 부인인 데보라 커티스가 쓴 ‘먼 곳의 손길(Touching from a distance)’을 바탕으로 이언 커티스와 ‘조이 디비전’의 이야기를 최대한 사실적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전반부가 19살에 데보라 커티스를 만나 결혼을 한 뒤, ‘섹스 피스톨즈’의 공연에서 만난 버나드 섬너와 피터 후크와 함께 ‘조이 디비전’을 결성, 토니 윌슨의 도움으로 맨체스터 출신의 성공적인 포스트펑크(post-punk) 밴드가 되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면, 후반부에서는 밴드의 성공과 두 여인과의 사랑 사이에서 고뇌하는 이언 커티스의 내적갈등에 초점을 두며 끝내 죽음으로 삶을 마감하는 그의 이야기를 그려나가고 있다.


<컨트롤>에서 눈에 띄는 것은 전기영화임에도 주인공의 삶을 파고들지 않고 오히려 관조적인 태도로 바라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는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언 커티스가 고뇌하는 장면을 보여줄지언정, 그의 고뇌의 정체에 대해서는 끝내 말을 하지 않는다. 갑작스런 밴드의 성공과, 영원한 사랑의 불가능성 앞에서 그가 겪는 고민과 방황들이 잘 다가오지 않는 것이 그렇다. 또한, ‘조이 디비전’의 음악에 대해서도 영화는 친절한 설명을 거부한다. 그들의 음악이 왜 그런 인기를 얻을 수 있었는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인지 영화를 통해서는 좀처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컨트롤>은 쉽게 익숙해지기 어려운 낯설음을 지니고 있다. 단 하나, 그 낯설음만큼은 ‘조이 디비전’의 음악을 닮아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한번 들어서는 익숙해지기 어려운 ‘조이 디비전’의 음악만큼, <컨트롤>도 생경함 속의 숨겨진 매력을 지닌 영화다.

누군가가 죽고 난 뒤, 그가 죽기 전에 어떤 감정과 생각들을 지니고 있었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한 온갖 추측을 내세우기 마련이지만, 그 모든 것이 다 진실이 될 수는 없다. 커트 코베인의 죽음을 소재로 한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라스트 데이즈>가 결론적으로는 그의 삶과는 무관한(그러나 전혀 무관하지도 않은) 영화가 된 것은 그런 이유에서였다. <라스트 데이즈>는 불가능함을 알면서도 죽음의 진실에 접근하고자 하는 감독의 노력이 담긴 영화였다. 안톤 코르빈 감독은 <컨트롤>에서 조금은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는 죽음의 진실을 애써 밝혀내려고 하지 않는다.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가 이언 커티스의 내적인 고민의 본질에 접근하지 않는다. 이는 또한 한 뮤지션의 죽음을 신화로 포장하기를 거부하려는 태도이기도 하다. 안톤 코르빈 감독은 <컨트롤>을 통해 그저 한 순간을 살아갔던 한 젊은이의 이야기를 기록하기를 바라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컨트롤>을 인상적인 작품으로 만드는 것은 안톤 코르빈 감독 특유의 절제된 미장센과 스타일리시한 앵글 연출이다. 사진작가 출신답게 안톤 코르빈 감독은 매 숏들을 마치 흑백사진과 같은 이미지들로 채웠다. 또한 뮤직비디오 작업을 통해 보여준 정적이고 건조한 이미지들은 이언 커티스의 삶을 이미지화하는 데 한 몫하고 있다. 이언 커티스를 연기한 샘 라일리를 비롯해 밴드 멤버로 등장하는 배우들이 직접 연주하는 ‘조이 디비전’의 음악은 영화에 사실성을 더하며, 데이빗 보위와 이기 팝, ‘벨벳 언더그라운드’ 등 이언 커티스가 좋아했던 밴드들의 음악은 70년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재현한다. 국내에서는 생소한 ‘조이 디비전’과 이언 커티스와 마주하기에는 가장 적절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