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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 (Cafe De Los Maestro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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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 소문도 없이 개봉한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를 장률 감독의 새 영화 <중경> 보다도 먼저 보기로 한 건 탱고에 대한 평소의 관심도 있었지만 구스타보 산타올라야(Gustavo Santaolalla, 1951 ~)의 이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작품들을 통해 본격적으로 시작된 영화 음악가로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경력은 최근 이 안 감독의 <브로크백 마운틴>(2006)과 이냐리투 감독의 <바벨>(2007)로 아카데미 영화음악상을 2년 연속 수상하면서 그 절정에 오르게 되었죠. 영화 음악에 참여하는 일 외에는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서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 음악가들의 프로젝트 밴드인 Bajofondo Tango Club(올해부터 Bajofondo로 이름 변경)의 리더로 활약하는 등 이른바 월드 뮤직의 최전선에서 활약하고 있고 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 구스타보 산타올라야는 음악 감독이나 연주자가 아닌 제작자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면서 영화의 실제 주인공들인 아르헨티나 탱고의 거장들과 시종일관 함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영화를 알리기 위한 떡밥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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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에서 50년대까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캬바레와 카페를 중심으로 풍미했던 음악이 탱고였고, 그 때 당시에 활동했던 실제 거장들을 50 여 년 만에 불러모아 세계 3대 극장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콜론 극장에서 "Cafe De Los Maestros"라는 이름의 연주회를 열게 되는데 이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입니다. 칠순 또는 팔순의 나이가 된 노인들이 스튜디오에 모여 연습을 하고 각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모습을 소박한(?) 화질의 디지털 카메라 담아 편집해서 만든 작품입니다. 마지막 콜론 극장에서의 연주회 장면을 정점으로 삼은 일종의 메이킹 필름이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면에서는 세련된 맛이라곤 없는 평범한 다큐멘터리 영화에 불과하지만 요점은 줄거리나 화법이 아니라 이 영화가 담고 있는 음악과 살아있는 기록으로서의 의미입니다. 한 편의 영화로서 보여지는 소박한 외양에도 불구하고 탱고 음악에 약간의 관심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러니까 반도네온이 어떤 악기인지 정도만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는 탱고의 깊은 매력을 발견하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특별히 줄거리랄 것도 없는 작품이다 보니 아무리 설명을 해도 특별히 스포일러가 될만한 일도 없는 작품입니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탱고 음악의 연주자들, 그리고 간간히 비춰지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풍경들, 탱고를 춤추는 사람들, 다른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 끊임없이 들려오는 살아있는 탱고라는 음악 자체의 감흥이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의 전부이고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간단히 표현해낼 수 있는 영역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한 마디로 탱고가 좋으면 영화도 좋고, 탱고가 싫으면 엄청 지루할 수 밖에 없는 영화란 얘깁니다. 제 경우 탱고에 대한 배경 지식이 그다지 해박한 편은 아니기 때문에 영화 자체가 큰 감동의 쓰나미를 몰고 오는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잘 몰랐던 부분을 알게 된 것도 있고, 오랜만에 탱고의 선율에 온 몸을 푹 담갔다가 나온 기분이 아주 좋은 편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를 보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탱고라는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남김 없이 다 드러내는 편이라고 할까요. 출연자 가운데 한 사람이 "3분 안에 모든 것을 다 보여준다"고 했던 말이 유독 기억에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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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외적으로 다른 얘기를 조금 하자면, 재즈 이후에 세계적인 지배력을 갖는 또 하나의 독립된 음악 장르로서 탱고를 재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이 아르헨티나와 남미 사람들의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카페>에서도 엿보인다는 겁니다. 다양한 월드 뮤직들 가운데 하나로 끝날 수도 있었던 탱고를 오늘날과 같이 널리 각광받는 음악 장르로 만들어준 데에는 아스터 피아졸라(Aster Piazzolla, 1921 ~ 1992)의 공로를 빼놓을 수 없겠죠. 그리고 피아졸라의 누에보 탱고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은 기돈 크레머나 요요마와 같은 클래식 음악가들이 음반과 연주회를 통해 탱고의 아름다운 선율을 전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출신인 구스타보 산타올라야의 경우 Bajofondo Tango Club을 통해 탱고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감각의 음악으로 음악팬들을 파고 드는 경우라고 할 수 있겠죠.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프랑스의 Gotan Project도 새로운 세대들에게 탱고 음악을 알리는 데에 큰 공헌을 하고 있는 중이고요.

재즈가 한 세대를 풍미한 음악 장르로 발돋움 할 수 있었던 건 음악 내부에서의 형식적 완성과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력 상승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현상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아르헨티나를 중심으로 한 탱고 음악이 20세기 중반의 재즈와 같은 확고한 지지 기반을 얻게 되리라 장담하기는 좀 어려울 듯 싶습니다. 혹시 축구가 도움이 줄 수 있다면 모르겠지만요. 그러나 음악 자체가 갖고 있는 보편성과 이를 뒷받침하는 형식적인 완성도 면에서는 탱고도 재즈에 못지 않은 단계에 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 지역 내에 국한된 통속적인 대중 음악에서 시작해 형식적 완성도를 갖추는 단계를 거치고(춤 추기 위한 음악에서 감상용 음악으로 발전) 이제는 다른 장르의 음악들과 크로스오버를 하는 단계에까지 이른 독립된 장르로는 재즈와 탱고 외에 그리 많지가 않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 탱고 클럽>라는 영화와 그 배경이 된 "Cafe De Los Maestros" 연주회는 자신들의 음악적 유산을 더 늦기 전에 현재의 것으로 되살려놓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으로도 보인다는 거죠. 탱고를 실컷 들을 수 있어서 무척 좋기도 했지만 우리에겐 과연 어떤 문화적 자산들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이켜 보게 됩니다. 김치와 태권도 말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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