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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중경 (重慶, 2008) & 이리 (2008)



한 주 뒤에 개봉할 <이리>와 함께 원래는 하나의 작품을 구성하는 이야기였지만 촬영을 마치고 나니 분량이 많아 2편의 영화로 나뉘게 되었다고 하더군요. 누구는 참 복도 많지요. 영화 한 편 만들려고 했는데 그게 두 편이 되어 개봉되는 일도 다 있군요. 어쨌든 <중경>에 대한 감상은 왠지 <이리>까지 다 봤을 때에야 마무리가 된다는 느낌이 듭니다. 두 편의 영화를 다 보고 애초에 만들고자 했던 두 영화의 결합된 이미지를 상상해봐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랄까요. 다른 한 편으론 <중경> 한 작품만 놓고 봤을 때에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망종>(2004)과 <경계>(2006)의 주인공들이 쓰촨성의 거대 도시 중경으로 공간을 이동했다는 것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는, 그러니까 장률 감독의 영화가 어느새 정체된 듯한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한 두어번 써먹은 트릭이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마당에 계속 같은 트릭을 고집하는 마술사의 공연 같다고나 할까요.

매번 비슷한 주제를 변주하고 있음에도 언제나 기분 좋게 볼 수 있는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들이 있는가 하면 장률 감독의 작품들의 경우에는 솔직히 그리 유쾌한 기분을 남겨주는 작품들은 아니지 않습니까. <경계>에서 여인과 어린 아들은 그나마 새로운 땅을 향해 어디론가 나아가갈 수나 있었지만 <중경>의 중국인 처녀는 다른 갈 곳도 없이 계단 위에 주저앉고 맙니다. 더군다나 <중경>은 같은 쓰촨성 지역을 배경으로 했던 지아 장커 감독 작품들의 기시감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까지 있더군요.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들려준다고 해도 <이리>에서는 아무래도 다른 느낌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싶네요. 여전히 원 컷, 원 씬의 방식으로 먹먹한 정서의 영화를 만들었을테지만 한국 배우들이 한국말로 연기하는 장률 감독의 영화라면 공간과 언어의 변화 때문에라도 그 변주의 폭이 좀 더 크게 느껴지리라 생각됩니다.




장률 감독의 영화는 몽골을 거쳐(<경계>) 중국으로 돌아갈 것이 아니라(<중경>) 바로 한국으로 이동(<이리>)을 하셨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섣부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애초의 의도대로 <중경>과 <이리>가 교차 편집되는 작품으로 공개되었다면 전작들과 동일한 정서와 화법을 유지하면서도 형식적인 면에서는 새로운 시도를 보여준 장률 감독의 작품으로 받아들여졌을 거란 생각도 드네요. 어쨌든 독립된 작품으로 완성된 <이리>에서는 <중경>이 또 어떤 방식으로 엮이게 될런지 궁금합니다.

2008. 11. 12




<중경>과 함께 하나의 작품으로 기획되었으나 두 편의 영화로 나뉘어지면서 일종의 연작 영화가 된 나머지 한 편, <이리>를 봤습니다. <중경>은 중국 쓰촨성의 인구 3천만의 도시 중경이고 <이리>는 95년에 익산군과 합쳐져 익산시로 '사라진' 장소 이리입니다. 장률 감독은 <중경>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도시라면 <이리>는 이미 터진 도시라고 설명하더군요. <이리>는 30년 전 이리 기차역 폭발 사건을 기억해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극장에서는 하춘화가 공연을 하고 있었고 그 자리에 있다 평생 불구가 된 남자가 <중경>에 등장을 하지요. 그런 일이 있었던 것을 몰랐던 저로서는 장률 감독의 영화를 통해 몰랐던 과거의 사실, 그러나 이제는 누군가에 의해 지워져버린 상흔을 새로 배우게 된 셈입니다. 이제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잘 모르거나 기억하지 않고 있는 사라진 도시 이리에 대해 장률 감독이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을까요.

<중경>과 달리 <이리>에는 한자 제목이 없어서 국어사전을 검색해봤더니 전북 이리를 裡里라고 쓰더군요. 그런데 이리는 동음이의어들이 무척 많았습니다. 그중에 인상적인 것이 異里로 써서 타향이라는 뜻이 되고 泥犁라고 쓰면 불교에서 말하는 지옥이 되더군요. <이리>라는 제목에 중의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했던 것이라면 전북 이리와 함께 영화의 내용과 이미지에 가장 가까운 또 다른 뜻은 아마도 지옥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제가 본 장률 감독의 영화들은 전부 여성들이 주인공이었는데 그 가운데 <망종>(2005) 과 <중경>(2008)이 탈출구가 없는 절망적인 삶을 묘사했던 것에서 <이리>는 한 발자욱 더 나간 느낌입니다. <이리>의 주인공 진서(윤진서)는 어머니의 뱃속에서 이리역 폭발 사고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불우한 삶을 살아가는 30세 여성입니다. 그 자신은 그다지 불행하다는 생각을 못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적어도 그녀의 오빠인 태웅(엄태웅)은 삶이 곧 지옥과 같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이들의 삶은 잿더미를 치울 수 없어 결국 덮어버릴 수 밖에 없는 지옥도처럼 보입니다.




장률 감독이 어떻게 이리라는 잊혀진 도시를 알게 되었는지, 그리고 왜 이토록 지옥 같은 삶에 관심이 많은 것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결말을 보여주다는 <경계>(2006) 도 사실 따지고 보면 희망이 저 멀리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는 얘기일 뿐,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살고 있는 그곳에서는 지독한 삶의 끝자락을 경험하고들 있지 않았던가요. 영화 한 편에 삼라만상과 인생의 모든 측면을 다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지만 이토록 절망의 밑바닥을 닥닥 긁어주는 영화를 계속 만들어내는 장률 감독의 속을 헤아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리>는 30년 전 기차역 폭발 사고와 함께 현재 시점에 진행되고 있는 2007년 대선(이명박 당선자의 연설과 지지자들의 인터뷰) 풍경이 TV를 통해 보여지고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이 이야기 전개의 한 축을 담당하는 등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영화 속 주인공들의 삶을 우리 나라와 시대의 풍경과 오버랩시키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는 장률 감독의 정치적 시선이 어느 한쪽을 반영하고 있다기 보다는 개인들이 경험하는 삶의 고통과 절망감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또 어떤 이유로 나아지기 어려운 것인지에 대한 좀 더 보편적인 관점을 드러내는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2007년 대선에서 누가 당선이 되었든지 장률 감독은 그 장면을 영화 속에 넣었을 것이라는 거죠.

<중경>도 장률 감독의 전작들에 비해 좀 쎈 편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리>는 그보다 더 쎄더군요. 하나의 씨퀀스를 하나의 컷에 담아 이어붙이는 '그림책' 화법은 여전하지만 <망종>이나 <경계>에 비해 <중경>과 <이리>는 관객에게 어떤 충격을 전달하기 위해 고심한 듯한 인상을 줍니다. <망종>이 다소 어색한 듯한 배우들의 연기 속에서도 디테일이 살아있는 생활 속의 에피소드들로 인해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내는 데에 성공하면서(조선족 모녀라는 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요) 결국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큰 정서적인 울림(심장에 멍이 든다는 표현을 하고 싶네요)을 던져주었던 반면 <중경>과 <이리>는 관객들의 몰입을 충분하게 이끌어내지 못한 상태에 상당한 시각적 자극들이 제시되다 보니 왠지 겉돌고 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이리>는 장률 감독의 일관된 작품 세계 속에서 시도되는 또 하나의 변주곡으로서는 성공적이라 할 수 있지만 그것이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 배우들이 연기하고 있다는 점을 제하고서도 유효한지에 대해서는 망설임 없이 그렇다 라고 하기는 어렵다고 생각됩니다. 다시 한번 관객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마침내 크게 흔들어 놓고야 마는 장률 감독의 차기작을 기대해봅니다.




2008. 1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