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영화의 흥미로운 점은 3인칭의 관점에서 남녀의 모습을 담아내지 않고 두 남녀의 내면의 관점에서 영화를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화는 수시로 오토와 아나의 관점을 교차하면서 그들의 사랑 이야기를 진행시켜 나간다. 따라서 같은 이야기를 두 번 반복하더라도 전에 보았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서 그 사건 속에서 숨겨졌던 인물의 심리나 감정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어린 오토가 어린 아나를 만나기 위해 사랑고백을 담은 종이 비행기들을 접어 날려 보내는 장면이 있는데, 오토가 종이비행기를 날려보내는 장면을 통해 아나의 이름을 절실하게 알고 싶어하는 소년의 사랑의 감정을 전달한다. 이후 아나의 관점에서 바라본 장면을 이어 보여주면서 아나는 그를 사랑의 대상이 아닌 돌아가신 아버지의 환영으로 바라보았음을 드러낸다.
두 남녀가 바라보는 미묘한 심리의 차이는 두 남녀의 운명을 뒤바꿔 놓는다. 예를 들어 오토는 아나를 만난 순간부터 그녀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아나는 청소년 시절 오토가 자신의 이름의 유래를 말하기 전까지 그를 연인이 아닌 아버지의 환생으로 보았다. 이런 심리의 차이는 그들의 선택을 다르게 하고 그 결과 두 사람의 인생의 방향이 전환된다. 아나가 오토와 만나기 위해 선택한 방법으로 인해 아나의 어머니와 오토의 아버지는 서로 사랑하게 되고 졸지에 그들은 남매가 되어 버린다. 이후 그들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지만 아버지를 잃은 아나와 달리 살아있는 친어머니를 가진 오토는 그녀의 죽음 이후 새로운 가정에 정착하지 못한 체 방황하게 된다.
오토가 친어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두 남녀는 서로 엇갈린 삶을 살아가게 된다. 영화는 이들의 엇갈린 운명을 각각의 시선이 아닌 두 남녀의 내면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는데 간발의 차이로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체 각자의 길을 가는 모습은 마치 파티 아킨 감독의 '천국의 가장자리'를 연상시킨다. 이처럼 서로를 가까이서 마주하면서도 인식하지 못한체 엇갈리는 두 연인은 아이러니하게도 서로의 빈자리를 확인하면서 점점 서로를 갈구하게 된다. 흥미롭게도 영화는 후반부에서 오토라는 이름을 갖게된 사연의 주인공을 등장시킴으로써 아나와 오토의 만남을 미시적인 운명론이 아닌 거시적인 역사의 흐름으로 착각하게 만들만큼 거대한 운명의 존재임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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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운명이란 존재는 위대하면서 한편으로 잔혹한 것임을 후반부 장면의 비극을 통해 보여준다. 그들이 어린 시절 보아왔던 이상향인 핀란드의 마을에서 오토를 기다리는 아나의 초조한 모습과 그녀를 만나기 위해 비행기에서 탈출해 아나를 애타게 찾는 오토는 또 한 번의 운명의 장난을 겪는다. 마치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 속의 주인공들이 겪은 비극처럼 두 연인도 끔찍한 파국을 피해갈 수 없었다. 운명으로 맺어진 그들은 결국 서로의 사랑을 파멸시킬 죽음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초반부의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의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 화면으로 보여지는 아나의 커다란 눈과 그 눈 사이로 비쳐진 오토의 안타까운 표정이 확대되는 모습은 가장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영상미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