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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너를 보내는 숲 /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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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보내는 숲>의 아름다움은 어떤 사건이나 인물처럼 외적인 것에서 발생하는 게 아니라 연둣빛 논을 잔잔하게 흔드는 바람, 짙푸른 숲 안으로 들어오는 햇빛처럼 잡을 수 없는 것들을 통해 나타난다. 영화의 시작부터 힘을 발휘하는 나라현의 숲의 풍경은 아들을 잃은 마치코와, 아내를 잃은 시게키의 깊은 슬픔을 자연스럽게 치유한다. 숲은 소중한 이의 죽음을 애도하는 시간이나 장소를 뜻한다는 모가리(殯)로 이상적이다.

마치 자연이 비밀을 숨기고 있는 것처럼 마치코와 시게키의 이야기에서도 많은 것은 말해지지 않는다. 마치코의 아이가 죽게 된 정확한 이유나 시게키가 아내를 잃고 33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대해 관객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상실로 인한 아픔을 곧 나누게 되리란 건 알아차릴 수 있다. 시게키는 스님에게 자신이 살아 있냐고 묻는다. 스님은 살아 있다는 건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밥과 반찬을 먹을 수 있을 때이고, 두 번째는 텅 빈 마음을 채우는 다정한 말과 따뜻한 체온을 느낄 때이다. 마치코와 시게키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첫 번째 살아 있는 상태에서 두 번째 살아 있는 상태로 나아간다. 그러한 점진적인 변화는 마치코가 어느 날 시게키를 숲 속에 있는 아내의 무덤에 데려다주면서 완성된다. 핸드헬드 카메라는 무덤을 향한 그들의 걸음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담담하게 따라간다. 그들은 길을 잃고 헤매는 동안 무의식적으로 상대방의 죽은 아내와 죽은 아이의 빈 자리를 점유하면서 살아 있음을 느끼게 된다. 특히 마치코가 물살이 불어난 계곡을 건너려는 시게키를 향해, 망자의 죽음을 다시 한번 막으려는 듯이 울부짖는 장면은 격하게 가슴을 친다.

추운 밤이 지나가자 당연하게도 다시 아침이 온다. 목표했던 곳에 도착하며 여정은 끝나고, 그들은 하늘과 땅으로 소중한 사람을 보내며 눈물을 흘리고 웃음을 짓는다. <너를 보내는 숲>에서는 인간도 자연처럼 소멸 후에 다시 생성된다는 동양적인 사유가 나타난다. 이 영화가 칸영화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것도 그러한 사유에 덧붙여지는 오리엔탈리즘적인 시선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심도 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이 물아일체의 경지에 다다르는 순간은 날아가는 나비처럼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획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