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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역동의 흔적들...

<한국 근대미술 걸작전 - 근대를 묻다  The Modern Korea Rediscovered> 역동의 흔적들...


장소: 덕수궁 미술관 (무료)
기간: 2008년 12월 23일~2009년 3월 22일
시간: 09:00~18:00(화~목), ~20:30(금~일)
 
해마다 연말이 되면 뭔가 모르게 참 중심을 잡기 힘들다. 늘상 있는 보통과 같은 날들인데도 세밑이 주는 느낌은 왠지 사람을 '부웅'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 올해도 그렇다. 그래서 별로 할 일이 없는데도 무작정 교통카드 한 장 들고 밖으로 쏘다니기 일쑤다. 친구도 만났다가, 극장도 갔다가, 도서관에도 갔다가 하지만 어디에서도 오래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지를 못한다. 적어도 새해가 한 달 정도 지나야 이 병이 고쳐질 것 같다.

지난 토요일에는 친구 결혼식, 블로거 영화제 상영회로 정신 없었다. 일요일은 무작정 쉬리라 다짐을 했건만 리모콘을 만지작 만지작 거리다 또 가방을 짊어지고 집을 나섰다. 역마살이 제대로 들었다. 오늘은 어디를 가볼까...  발걸음을 이리저리 튕기다 덕수궁 미술관으로 방향을 잡았다. 며칠 전에 한국 근대미술 작가들의 전시회를 한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는데 왜 그 때 그 생각이 났는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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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우리나라의 근대 작가들에게 관심이 많았던 것도 아니다. 알아야 박수근, 이응노, 이중섭, 천경자 등을 이런저런 책에서 이름만 들어 알고 있는 정도... 참 얼마 전 친일인명사전, 화폐 초상화 논란 등에서 꽤 유명세를 탄  김기창도 기억이 난다. 아마도 이 전시가 불현듯 생각이 났던 것 부제로 달고 있는 "근대를 묻다"라는 전시 이름 때문이었던 것 같다. 3년 전인가 인사동의 한 갤러리에서 아프리카 회화, 조각 등의 전시를 본 기억이 있는데, 그 때 전시 이름이 '인간을 묻다' 였다. '인간의 원형'이 그대로 지켜지고 있는 아프리카의 부족들의 작품들... 그 작품들은 철저하게 예술과 생활을 구분하는 우리와 달리 그 자체로 생활이었고, 종교였고, 예술이었다. 태고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원형에서 과연 인간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탐구해보자는 것이 그 전시의 기획의도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렇게 본다면 '근대를 묻다'는 대한민국의 근대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당시 제작됐던 미술작품들을 통해 알아보자는 기획이다. 이 전시가 '건국 60주년 기념' 행사 가운데 하나로 계획된 프로젝트는 점에서 의도는 더욱 확실해진다. 그럼에도 정치적이고, 수가 빤히 보이는 다른 숱한 '건국 60주년 행사'들 틈에서도 나름대로 괜찮은 기획처럼 보였다. 105명의 한국 근대 작가들의 230여 점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기회가 흔하랴. 몇 년 전부터 대형 전시는 해외 유명 작가들의 독차지였던 점을 상기한다면 이번 전시의 의미는 충분히 있을 것 같다. 리움, 한국은행, 국립현대미술관, 서울대미술관, 개인소장 등 여기저기 흩어진 작품들을 한데 모아 그것도 파격적으로 '무료'관람이다. (덕수궁 입장료는 내야 한다.) 미술관으로 쓰이는 덕수궁 석조전 서관을 포함해 그 동안 개방되지 않고 비워 있던 동관까지 전시를 하고 있으니 최근 한국미술작품을 대상으로 한 전시회 중에서 최대 규모가 아닐까 한다. (동관을 관람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것도 책에서만 보던 작가의 작품들을 실제로 볼 수 있는,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근대작가의 작품들까지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105명이 바라본 한국의 근대는 과연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 물음에 대한 답은 과연 무엇인지 궁금한 마음을 갖고 전시관을 찾았다.


전시가 시작되고 얼마되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일요일 밤 시간을 택해서 그런지 전시관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동안 유명 전시라고 찾아서 사람들 뒤꼭지만 보고 돌아온 게 한두 번이랴. 6시에 입장을 했는데 여유 있게 전시관을 천천히 다 둘러보고 나니 8시였다. 정말 마음 잡고 둘러본 기분이다. 전시는 크게 5개의 소전시관으로 나눠져 있었다. <근대인>, <근대인의 일상>, <근대의 풍경>, <근대인의 꿈>, 그리고 <특별전: 근대의 복권>까지 1910대년부터 1960년대까지 근대작가의 작품들을 테마별로 분류해 전시하고 있었다. 전시 타이틀에서도 대략 추측이 되겠지만 간략히 설명을 하면 <근대인>은 전근대에서 벗어나 근대적 문물을 받아들인 인물들의 자화상과 초상화가, <근대인의 일상>은 당시 인물들의 변화된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가, <근대의 풍경>은 서구의 회화양식의 도입으로 이전 산수화와 확연한 차이를 보이는 근대의 풍경화와 정물화가, <근대인의 꿈> 은 우울하고 암담한 당시의 분위기를 화폭에 담은 회화(주로 추상화)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근대의 복원>은 식민지와 전쟁을 거치면서 훼손된 근대미술작품을 원래 상태로 복원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회화가 절대다수지만 판화, 조소 작품도 간혹 눈에 띄었고 화첩과 연서가 이색적이었다.

한 마디로 느낌을 정리할 수는 없겠지만 '독특하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요즘 쉽게 접할 수 있었던 현대미술 전시나 외국의 거장들의 작품들에서 받은 느낌과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원래 미술에 문외한이어서 자세하게 전문용어를 들어가며 설명할 수는 없지만 '한국적인 것과 서구적인 것이 오묘하게 결합되어 있다'는 정도로 말을 할 수 있을까. 물론 전통적인 가치관과 사회가 급속히 해체되고 서구의 문물이 물밑듯이 밀려오는 시대적 분위기를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것이다. 실제로 회화의 소재부터 표현 방법까지 전통적인 양식과 새로운 기법을 접목시키려는 시도들을 여러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다. 인물화, 풍경화, 정물화 등에 인상파부터 시작해 입체파, 추상파, 표현주의 등 새로운 화법들의 흔적들이 보였지만 본토의 그림들에서 받았던 인상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당시의 근대작가들은 분명 서구에서 출발한 새로운 사조를 한국식으로 적용하려는 시도들을 했을 것이다. (특히 풍경화에서 이런 느낌이 두드러졌다.) 그러고보니 외국 한 번 나갔다 온 적 없는 내가 장욱진과 박수근의 그림은 실제로 본 적은 없어도 피카소와 고흐, 고갱의 작품은 여러 차례 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에 갑자기 실소가 나왔다. '가까이 있어서 이렇게 무심할 수도 있는 거구나...'라는 생각에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낯선 것들이 익숙하고 오히려 익숙해야 하는 것들이 새롭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물론, 당시에 유입된 서구의 양식과 관계 없이 자신의 화법을 발전시킨 화가들도 있었다. 분명 어느 흐름으로 읽히기 보다는 그 작가 자체로 이해될 수 있는 이들이었다.

이번 전시는 온라인 전시도 함께 진행된다. 전체는 아니지만 주요 작품을 볼 수 있다.


이번 전시가 줬던 또 하나의 수확은 예전에 미쳐 알지 못했던 거장들을 새롭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는 것이다. 박수근, 이중섭, 이응노, 구본웅, 장욱진 등의 작품들은 유명세 만큼이나 제목은 몰라도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텔레비전이든, 책이든 어디선가 한 번쯤을 본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이중섭의 <흰 소>, 최초 공개되는 박수근의 은지화 작품들, 이응노의 풍경화들, 구본웅의 표현주의 회화들, 장욱진의 과감한 그림들까지... 이들의 작품을 실제로 본다는 것 자체도 기쁨이었지만  동시에 낯선 이름(물론 내 기준에서...)의 작가들의 작품에서 받은 느낌 역시 인상적이었다. 상당히 많은 작품이 전시된 이쾌대의 작품들은 굉장히 서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색과 선에서 상당히 남성적인 기운이 느껴졌고, 반면에 장우성과 이상범의 작품들은 이전 전통적인 회화의 매력을 살리면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흔적이 시선을 끌었다. 기회가 된다면 이들의 개인전도 한 번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30여 점의 작품을 보고 마지막 전시관을 빠져 나오며 '생각했던 것보다 당시 화풍의 폭이 상당히 넓고 다양했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작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엘리자베스 키스>의 기획전을 본 기억이 있다. 전시 제목이 <푸른 눈에 비친 한국, Korean through Western Eyes>이었는데, 여류 서양화가가 1920년대 한국의 모습을 담은 그림을 전시한 기획전이었다. 그 때 그녀의 그림들을 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그림이 순수하다.'는 것이었다. 왠지 그녀의 그림에는 정치성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서양인의 입장에서 당시 우리가 처한 상황을 담담히 감정의 이입 없이 봤을 거라는 판단에서 였다. 이전에 내가 가졌던 1920년대에 대한 인상들은 식민지의 상황에서 우울함과 절망감이었기 때문에 그녀의 그림들은 순수하면서도 낯설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번 전시를 통해 그 때 감상이 어쩌면 내가 근대 한국의 미술에 대해 잘 몰랐기 때문에 가질 수 있었던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내 관심과 노력이 부족한 탓도 있겠지만 그 시대의 그림들을 그 동안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던 탓이 크다.) 105명의 화가들과 232점의 작품들은 그 시대의 미술이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물론 많은 그림들에서 시대의 우울함을 볼 수 있었지만, 그 만큼 그 고난을 극복하고자 하는 희망의 흔적도 역력했다. 주제도 다양했고 표현양식과 기법도 다채로웠다. 불운한 시대 속에서도 부지런히 미술계가 움직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는 전시가 아니었나 한다. 그리고 앞으로 105명의 개인전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가장 재미있었던 이응노 화백의 '거리 풍경-양색시' 1946년 작품이라는데 인물들의 표정이 인상깊다.


아마도 이런 점이 '근대를 묻다'라는 전시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근대가 가지고 있는 다양한 면모와 그 역동성을 확인하는 것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