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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와일드 차일드 (L'enfant sauvage, 1970)

1798년 프랑스의 아베롱이란 마을의 숲에서 한 소년이 발견된다. 숲 속에서 발견된 아이는 마치 짐승처럼 네 발로 기어다니고 나무를 올라가는 기이한 행동을 보인다. 마을 주민들은 아이를 발견한 후 마치 동물을 사냥하듯이 개를 풀어 아이를 붙잡는다. 한편 아베롱에서 발견된 야생 소년에 관한 기사를 읽던 이타르 박사는 자신의 연구를 위해 아이를 파리로 데려오도록 한다. 소년은 파리의 농아학교로 이송되는 과정 속에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된다. 사람들은 아이를 그저 신기한 눈길로 바라볼 뿐 그에게 따뜻한 애정을 베풀지는 않는다. 농아학교에 수용된 아이는 그 곳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리지 못한 체 병원 관계자에 의해 사람들의 구경거리로 이용된다. 야생에서 자란 아이를 보기 위해 병실을 들른 후 관람료를 지불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비인간적인 느낌이 든다.

이타르 박사와 그의 동료는 아이의 신체를 조사하면서 목에 난 커다란 상처가 아물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소년은 태어났을 때부터 비정한 부모에 의해 버림받은 존재였던 것이다. 소년의 동물같은 행동을 지켜본 학자들은 아이가 선천적으로 지능이 모자란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정신병원으로 보내려 한다. 하지만 아이가 동물처럼 된 것은 인간의 환경과 오랫동안 고립된 것이라고 생각한 이타르는 스스로 아이를 교육시키기로 결심한다. 프랑스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은 이타르는 아이를 자신의 집에 데려온 뒤, 그의 가정부인 게렝 부인과 함께 소년에게 인간의 언어와 사고를 가르치기 시작한다.

이타르에게 빅토르란 이름을 부여받은 소년은 그의 교육을 받으면서 조금씩 변화되기 시작한다. 네 발로 걷던 빅토르는 이제 두 발로 걸을 수 있게 되었으며, 보상과 벌을 이용한 학습을 통해 단어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인간과 떨어진 환경 속에서 살아오던 빅토르는 야생에서 배운 삶의 방식을 잊지 못한다. 수업 중에도 창문 밖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는 모습과 비 내리는 날 밖에 나와 네 발로 뛰어다니며 비를 맞는 빅토르의 기뻐하는 모습은 그가 아직도 자연을 그리워함을 보여준다. 한편 빅토르에게 언어를 가르치던 이타르는 자신이 의도한만큼 성과가 나지 않자 빅토르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는 실수를 저지른다. 자연환경에서 오랫동안 자란 턱에 학습능력이 떨어짐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학습량을 아이에게 요구하게 되자 빅토르는 코피를 흘리며 경련을 일으키게 된다. 이타르는 빅토르의 처지를 고려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를 자책하면서 한편으론 아이를 자연에서 벗어나도록 한 인간의 무책임한 호기심을 비판한다.

하지만 이타르의 교육을 받으면서 빅트로는 동물로서 가지지 못했던 인간의 사고를 깨닫기 시작한다. 비록 빅토르는 보통의 사람들처럼 언어를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단어를 보고 물건을 집어오고 혼자서 분필집게를 만들어내는 모습을 통해 그가 동물 이상의 사고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또한 빅토르는 인간의 감정을 스스로 표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상대방의 손을 자신의 얼굴을 갖다대는 행동을 통해 상대방에게 친근감을 표현한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이타르가 빅토르에게 비합리적인 벌을 내림으로써 부당함을 깨닫게 해주는 모습이다. 빅토르가 단어에 맞게 물건을 가져왔음에도 불구하고 이타르는 화를 내며 아이를 골방에 집어넣으려 한다. 이타르의 부당한 행동에 아이는 그의 손을 물어 저항하며 골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빅토르를 진정시킨 이타르는 나레이션을 통해 아이가 정의와 불의를 깨달았을 때의 기쁨을 표현한다. 이타르가 단어와 물건을 연상시키는 능력보다 부당함에 저항하는 능력을 더 가치있게 생각한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능력보다 잘못된 것에 저항할 줄 아는 행동에 있음을 감독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닐까.

이타르는 실험을 통해 아이에게 부당함을 깨닫게 해주었지만 결국 아이에 대한 이해를 깨닫지 못하는 실수를 저지른다. 그가 류머티즘으로 산책을 하지 못하자 아이는 평소대로 산책을 할 것을 행동으로 요구하지만 이타르는 화를 내며 아이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이타르가 집을 비운 사이 빅토르는 그 곳을 벗어나 자신이 살던 숲으로 떠난다. 하지만 빅토르는 방랑을 통해 자신을 향한 인간의 적대감을 깨닫는다. 집에 들어온 아이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은 체 사람들은 그를 칩임자로 규정하고 아이를 메몰차게 쫓아낸다. 빅토르는 놀랍게도 인간의 마차를 보고 자신이 있던 이타르의 집으로 돌아온다. 빅토르가 사라졌음을 뒤늦게 깨달은 이타르는 다시 그를 볼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빅토르가 스스로 이타르의 집에 돌아온 것을 보고 기쁨을 감추지 않는다. 영화는 계단을 올라가는 빅토르의 모습을 클로즈업하며 마무리된다. 빅토르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장면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점은 야생 소년에 대한 감독의 긍정적인 감정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즉 아이가 비록 보통의 인간보다 저능하고 뒤떨어졌지만 애정어린 인간의 보살핌이 있다면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음을 아이가 집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