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그빌'을 볼 때 처음에는 굉장히 당황스러웠다. 마치 연극무대 같은 비현실적인 배경, 그리고 챕터 별로 나누어진 구성이 영화보다는 연극을 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연극무대 같은 도그빌의 배경을 봤을 때는 현실적이지 않아서 이질감이 있었지만 놀랍게도 점점 그 배경이 익숙해지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보이던 도그빌의 무대가 현실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게다가 마치 마을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늘에서 바라본 카메라의 시선이나 거리를 기준으로 뻥뚤린 집 안의 사람들의 행동이 드러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마치 관객인 나 자신이 모형을 입체적으로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도그빌의 연극무대의 촬영도 인상적이지만 이 영화에서 보여지는 조명은 인간의 심성을 표현하는데 효과를 더해주었다. 예를 들어 어두운 배경에서 달이 뜬 것처럼 은색 빛의 조명이 비출 때 평범하게 보이는 마을 사람들이 사실은 숨겨진 탐욕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든다. 이러한 조명의 효과가 도그빌 마을의 현실성이 더욱 높여주며 마을 사람들의 숨겨진 심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연극무대를 현실적으로 느끼게 만드는 것은 영화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추악한 모습이었다. 도그빌로 들어온 그레이스라는 여성이 도그빌에서 수용될 때만해도 한 인간이 마을을 아름답게 바꾸는 모습을 그리는 것 같이 보인다. 하지만 영화의 챕터가 하나씩 넘어가면서 도그빌 마을 사람들의 내면 속에 숨어 있는 추악한 욕망이 드러나면서 도그빌의 실체가 드러난다. 마을 주민들이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을 그레이스가 도맡아 일하면서 점점 마을 사람들은 편리함을 느끼게 되고 그녀가 일하는 일을 당연스럽게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그녀의 호의를 거북하게 여기던 사람들은 그녀가 갱단에게 쫓기고 있다는 약점을 이용해 그녀를 하녀 부리듯 대한다. 게다가 마을의 남자들은 그녀에게서 육체적인 탐욕을 꿈꾸게 된다. 자기에게 존경을 요구하던 농부는 그녀를 강제로 존경하게 만든다면서 그녀의 육체를 탐하게 되고 그녀의 이야기를 친절하게 들어주던 장님은 그녀의 다리를 함부러 만져댄다.
결국 그녀는 톰의 도움으로 트럭을 타고 도그빌을 탈출하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희망이 아닌 절망 뿐이다. 탈출하려는 그레이스를 잡은 마을 사람들은 이제 그녀를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그녀의 목에 쇠사슬을 달아놓고 노예 부리듯이 그녀를 혹사시키고 마을의 남자들은 그레이스의 방에서 그녀를 강간한다. 그나마 그레이스의 유일한 편인 것 같았던 톰 역시 위선으로 가득찬 인물이었음이 드러난다. 톰은 그레이스에게서 육체적 쾌락을 얻으려 했지만 그레이스의 허를 찌르는 설득에 감복하기는 커녕 자신의 작가 경력에 방해된다고 여기고 그녀를 갱단에게 팔아넘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갱단에게 쫓기고 있던 그녀는 사실 갱단의 두목의 딸이었던 것이다. 비열한 도그빌 사람들은 그레이스의 약점을 이용해 그녀를 마음껏 유린하고 부려먹었지만 그레이스의 약점은 마을 사람들이 생각한 약점이 아니었다. 도그빌에서 정착할 때까지만 해도 사랑과 용서를 스스로 실천하고자 했던 그녀는 도그빌의 실체를 깨닫고 나서 그녀 스스로 도그빌을 정화하고자 한다. 약점이 있었던 그녀를 혹독하게 대한 도그빌의 실체를 본 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이 또 다른 그레이스를 만날 경우 어떻게 행할지 잘알고 있었다.
권력이란 것은 결국 쓰는 사람이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권력을 가진 주체가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면 결국 그 입장이 반대가 될 때 자신들이 행한 방법 그대로 당하게 된다. 도그빌의 마지막 모습은 바로 이런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반대의 입장이 된 그레이스는 결국 도그빌 사람들을 없애 버린다. 그레이스가 아끼는 인형을 깨뜨리며 그레이스를 괴롭힌 여자는 그 고통을 그녀의 아이들이 죽는 과정으로 고스란히 되돌려 받는다. 그리고 자신을 지옥의 마을로 인도한 톰을 스스로 처단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레이스가 유일하게 아량을 베푼 대상은 모세라는 개 한 마리 였다. 어쩌면 그녀가 모세를 살린 것은 그 개가 도그빌에서 그나마 양심적인 대상이라고 생각해서 일지도 모른다. 비록 그레이스가 도그빌에 처음 와서 개의 먹이를 훔친 것을 보고 소리를 질러 그녀를 곤경에 빠뜨리기는 했지만 모세라는 개는 자신의 본능에 누구보다도 충실했던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 관용을 베풀었다고 착각하고 추악한 본성을 표출한 인간보다는 솔직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