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home

[팻 걸] 너무나도 악몽같았던 그녀들의 경험




 프랑스의 여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는 유난히 '여성들'을 등장시켜 '성'과 연관시키는 영화를 많이 만들어냈다. 이번에 다시 보게 된 <팻 걸> 또한 그랬고, 그녀의 전작들, 그리고 가장 최근작인 <푸른 수염>까지도. 그녀의 작품들은 매번 여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팻 걸>은 그저 자매들의 첫경험 이야기일줄 알았던 포스터와는 달리 후반부의 파격적인 결말로 인해 내게는 '약간 어려웠던 영화'로 남아있었고, 다시 보게 된 지금 또한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영화다. 포스터대로 마냥 그들의 경험을 다루고 있을 것만 같은 영화는, 영화가 진행될수록 언니를 질투하는 여동생과 여동생을 약간 깔보는듯한 언니의 모습을 보여주다가 곧 그들의 판타지가 깨져버리고 이윽고 영화는 후반부로 갈 수록 점점 관객에게 불친절해진다.

 영화는 겉모습이 아주 극과 극으로 다른 자매들의 자신이 꿈꾸는 첫 경험에 대한 대화로 시작한다. 인형같이 예쁘고 날씬한 15살의 언니는 낭만적인 첫 경험을 꿈꾼다. 자신의 첫 경험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 좋다고 믿는 그녀의 모습은 일반적인 여성들의 모습 그대로다. 하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동생의 생각은 언니의 생각과 다르다. 그녀는 첫 경험이야말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함께 해야한다고 주장한다. 외모도 다르고 생각도 서로 다른 이들의 별것도 아닐 듯한 이 대사들은 곧, 전개될 영화에 대한 아주 큰 암시가 된다.

 아름다운 첫 경험을 꿈꾸던 언니에게 거짓말처럼, 멋진남자가 찾아오게 된다. 자신의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나는 잘생긴 남자와 로맨스는 곧 언니가 꿈꾸왔던 아름다운 판타지 그 자체였다. 그 남자도 곧 아름다운 언니를 좋아하게 되고, 언니는 그와 교제를 하게 되면서 자신의 첫 경험에 대해 실행에 옮길 생각에 빠져있다. 언니는 열심히 로맨스를 하고 있을 동안 , 뚱뚱하고 못생긴 여동생은 언니와 반대로 수영장의 기둥을 붙잡고 자신을 사랑해달라며 혼자 노래를 부른다. 영화는 이처럼 너무나도 다른 두 자매의 상반된 모습을 보여주면서, 어찌 보면 가학적으로 보일정도로 불편한 분위기를 유지한 채 스토리를 전개해 나간다. 단순히 자매의 첫 경험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상황이라든지 겉모습을 너무나도 사실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었다.

 아름답고 몸매도 좋은 언니는 우리 사회에서 요구되고 있는 여성의 외형적 측면을 가지고 있었지만, 뚱뚱하고 못생긴 동생은 세상에서 차별을 받고 있는 여성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같은 여성인데도 불구하고 예쁜 언니는 은근히 동생을 괴롭힌다. 마치 "너는 못생겼는데 나는 예쁘잖아. 사회에서 더 좋아하는 여성이 누구일까?"라고 말하듯이.. 그녀는 급기야 자신의 첫 경험을 동생이 보는 앞에서 하기까지 한다. 이들의 첫 경험을 관찰하고 엿보는 동생은 그것을 보며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랑하는 사람과 첫 경험을 하고 싶어했던 언니 엘레나. 마치 겉으로 보면 그녀는 잘생긴 애인과 성공적인 첫 경험을 해낸듯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성적 욕구를 채우기 위한 이상한 행동을 요구하고 그녀는 그것을 따르게 된다. 동생 아나이스에게 은근히 새디스트적인 언행을 보이며 강자로 군림하고 싶었던 그녀는 또 다른 인물인 남성 앞에서는 약자일 수밖에 없었다. 사회 속에서 여성이란 남성에 비해서 약자일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언니는 나름 사랑하는 사람과 첫경험을 하길 바라던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킴으로써 처음의 대사처럼 완벽하게 첫 경험을 해낸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곧 남자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이상이 깨져버리게 되며 영화는 점차 겉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로 빠져버리게 된다. 자신을 사랑하는 줄만 알았던 그 남자가 알고 보니 그냥 바람둥이였으며, 그저 자신의 외모때문에 한번 꼬셔본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엘레나의 성공적이었던 첫 경험도 실패로 끝나버리게 된다. 그녀에게는 그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의 첫 경험은 성공이 아닌 실패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잔인하게도 이러한 사실 이후, 이보다 더 큰 악몽을 선보인다.  아름다웠어야 할 그들의 휴가였지만, 악몽과 같았던 일로 인해서 세 모녀는 휴가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가려고 한다. 이처럼 영화는 마치 엘레나의 단순한 연애 실패에 대해서 말하며 끝날것만 같았지만, 후반부의 충격적인 결말을 보이면서 이니야스의 첫 경험까지 보여주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결말은 다시 생각해도 여러 모로 참 불편하다. 영화는 자매들의 경쟁구도를 보여주지만, 영화의 엔딩만큼은 그리 밝지 않다. 까트린느 브레이야 감독은 최근작인 <푸른수염>에서도 자매들의 경쟁구도를 그려내고, 그 영화 또한 최후의 승자는 언니가 아닌 동생이었다. 하지만 그 영화는 이 영화에 비해서 많이 부드러워지고 덜 불편해졌다. 여성감독인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세상에서 강하게 살아가고 싶지만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여성은 약자에 불과하다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만을 말하려고 하기에는 영화의 엔딩은 그야말로 충격적이며 당황스럽기 그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