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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home

찰나의 청춘(4월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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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가버린다.
누구나 알며 누구나 입에 올리는 이 흔하디흔한 말을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게 되는 때는 돌연히 찾아온다.
한 번도 맞아본 적이 없는 벚꽃비와 함께 떠오르는
이와이 슌지의 영화 ‘4월이야기’는
나의 대학교 신입생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와는 다르게 내 기억속의 벚꽃은 늘 아름답지 못한 모습으로 졌고
나의 청춘 역시 그러했다.
한국에 개봉했던 그때, 러닝시간도 짧고 별다른 이야기도 없이 끝나버린 이 영화를
같이 본 선배는 무척 실망했지만
나는 그 익숙하지 못한 아쉬움이 도리어 인상적이었다.
비록 내게는 첫사랑을 따라서 기적적으로 대학을 간 경험은 없었지만,
추운 북해도의 아사히가와에서 따뜻한 도쿄로 내려온 주인공과 반대로
나는 따뜻한 남쪽에서 추운 북쪽으로 상경했지만,
사람의 경험이란 제각각 다르면서도 어떤 면에서는 모두 비슷한 것이다.
가족을 떠나 처음으로 혼자 살게 된 객지에서
도착한 후 며칠 동안은 아는 사람도 없고
아무것도 할일이 없어서 하루 종일 그 도시를 그저 걸어 다녔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서점을 가고 공원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려고 노력하지만
아직은 모든 것이 서툴기만 하고 마음처럼 잘 되지 않는 주인공처럼.
아마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혼자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었을
그 어색하고 낯선 경험을 이와이 슌지는 소소하고 섬세하게 그려낸다.
따뜻한 날씨에 어울리지 않는 두꺼운 스웨터를 입고 ‘덥지 않냐’는 농담에
당황하며 옷을 벗어버릴 수밖에 없던 에피소드가
나에게는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처럼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야말로 제일 낯설고 기억에 오래 남는 법이다.
한국에서 신학기는 3월에 시작되니까
우리에게는 ‘3월이야기’라는 제목이 어울릴
‘4월이야기’ 속의 4월은 짤막한 러닝타임처럼 금세 지나가버린다.
한여름의 비에이 언덕에서
구니기타 돗포의 소설 ‘무사시노’를 읽으며 그리워하던
첫사랑과 만나 부서진 빨간 우산을 들고 빗속에서 예쁘게 웃던 그녀가
그 뒤에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그녀의 5월이, 여름이, 1년 뒤가, 10년 후가 어떨지 궁금하지는 않다.
청춘이란 결국 잃어버리는 것이다.
앞으로 계속될지 끝날지 상관없이, 주변의 다른 무엇도 생각하지 않은 채
지금 이 순간 바라는 것에 진심을 다할 수 있는 것은 청춘뿐이기에
그 시절이야말로 가장 짧으면서도 가장 긴 인생의 순간이다.
그렇기에 다가올 미래는 청춘이야기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도 아니고,
뒤늦게 후회하거나 회고해야하는 추억의 시간도 아니다.
나의 시절에 그런 청춘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러지 못했기에 진심을 다한 청춘을 보낸 사람과는 다르게 청춘시절이 아련하다.
바꿔 말해 벚꽃은 한 번도 아름답게 진 적이 없지만
기억 속에서만이라도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