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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1960년대 영국의 공기를 담은 OST <언 에듀케이션>


<언 에듀케이션>은 제목 그대로 "교육"에 대한 영화이자 "성장"에 대한 영화이다. 1960년대 영국을 배경으로 옥스포드를 목표로 입시에 매달리는 여고생의 모습과, 진정한 배움보다는 입시 자체에 올인하는 부모들의 맹목적 헌신은 21세기 한국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좋은 학교에 가는 것 혹은 좋은 남편을 만나는 것이 자식의 행복을 보장할 거라고 믿는 부모와 똑똑하고 영리하지만 공부를 왜 해야하는지에 대해 점점 의문을 갖기 시작하는 제니. 그런 제니를 콘서트장으로, 미술품 경매 클럽으로, 재즈 클럽으로, 심지어 낭만의 도시 파리로 데리고 다니면서 점점 더 그녀를 갈등하게 만드는 미스테리한 남자 데이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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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10대 소녀에게 "학교 교육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대명제를 제시해 놓고서, 지루하고 따분한 수업을 빠지고 흥미롭고 신나는 문화 예술을 즐기는 것이 왜 나쁜 건지, 양심에 비추어 문제가 될 행동에 무감각해진다는 것이 얼마나 쉬운 일인지, 부모의 주관과 원칙이 감언이설에 흔들려서 잘못된 결정을 내릴 때에 얼마나 뼈아픈 결과를 초래하는지, 행복한 삶이란 어떤 것인지, 원하는 것을 즐기면서 사는 것은 지속적인 행복을 줄 수 있는 건지 등등의 여러가지 질문을 던진다. 하지만 이 모든 것에 명확하게 대답해 주지는 않는다.

제니가 "왜 공부해야 하는지"를 물으면서 당돌하게 대면하던 장면에서도 교장선생님으로 분한 엠마 톰슨은 교사나 공무원 같은 소박한 미래 외에는 제시하지 못한다. 어른들이 "대학교 가면 다 할 수 있다."라는 말로 유예하는 모든 관심거리와 흥미로운 문화 예술은 수험생들에게 있어서 항상 인내와 절제의 대상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명확한 답변은 없더라도 제니는 인생의 중요한 시기에 얻은 "an education"을 통해서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되고, 세상을 보는 그녀의 태도는 훨씬 현명해진다.

실제 여성 저널리스트인 린 바버의 짧은 회고록을 바탕으로 닉 혼비가 각본을 쓴 이 작품은 완성도 있는 플롯과 캐릭터들의 개성있는 묘사로 그 시대의 생생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순수하면서도 수수한 외모로 이 영화 뿐 아니라 최근에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케리 멀리건, <Shattered Glass>에서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었던 피터 사스가드, 어리숙하면서도 순수한 아버지의 모습을 가슴 찡하게 그려낸 알프레드 몰리나, 잠깐 동안의 출연이지만 단호하고 보수적인 교장선생님 역으로 강한 인상을 준 엠마 톰슨 등 은근히 화려한 캐스팅도 영화를 빛내주고 있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빛을 발하는 것은 영리하게 선곡된 삽입곡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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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초 영국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샹송, 재즈, 올드 팝으로 수놓아진 OST는 베스 로울리, 마들렌느 페이루, 더피, 멜로디 가르도트, 멜 토르메, 줄리엣 그레코, 레이 찰스, 빈스 과랄디 등의 화려한 선곡으로 딱 그 시대의 공기를 온몸으로 전해준다. 닉 혼비가 참여한 영화들은 대개 음악이 꽤 마음에 드는 편인데, 이 영화에서는 닉 혼비가 선곡에 많이 관여한 흔적은 없지만, <언 에듀케이션> OST는 반복해서 들어도 질리지 않는 애청 음반이 되어버렸다. 어깨를 들썩거리게 하는 경쾌한 재즈와 극중의 제니처럼 침대 옆에 누워 LP를 껴안고서 혼자 듣고 싶은 샹송들, 거기에다가 폴 잉글리쉬비의 잔잔한 오리지널 스코어까지 나른한 오후에 듣기에 딱 좋은 추천 음반이다.

Comin' Home Baby - Mel Tor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