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싱글맨] 스타일의 세계




쿠바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공포심리가 작용하고 있었던 1962년의 미국. 영문과 교수인 조지 팔코너는 16년간 함께했던 연인 짐의 죽음으로 인해서 침체된 하루를 보낸다. 짐은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인해서 죽음을 맞이했고, 조지는 혼자서 아침을 맞이한 채 이전과 같은 하루를 시작해야만 했다. 조지는 악몽도 꾸고, 자신을 비관하며 하루를 보내기도 하는데 그에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것은 바로 오랜 시간동안 함께한 친구 샬롯 뿐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던 조지는 어느 날 중대한 결심을 하게 된다. 자살을 함으로써 이 세상과 안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조지는 자살을 하기 위한 준비들을 끝내고 언제나와 같은 자신의 하루를 시작한다. 샬롯과 저녁 식사 약속도 잡았고, 언제나와 같이 이웃집을 지나치면서 학교로 출근을 하고 강의를 한다.

 하지만 그 날 따라 평소에 조지에게 관심을 보였던 제자 케니가 조지에게 대화를 시도한다. 그리고 샬롯과의 저녁식사를 끝내고 돌아온 조지는 짐과 처음으로 만났던 술집으로 찾아가는데, 그 곳에서 케니를 만나고 하루를 보낸다. 샬롯과의 만남과 케니와의 만남은 조지의 생각에 변화를 준다.




사실 이 영화의 스토리는 정말이지 놀랍게도 별 거 없다. 위에 풀어쓴 스토리를 요약하자면 바로 '오랜 연인을 잃고 슬퍼하던 한 남자가 일상을 보내다가 자살을 결심한다'고, 영화의 러닝 타임 동안 펼쳐지는 스토리 또한 별 다른 사건 없이 주인공인 조지 위주로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가 보여주는 그의 일상이란, 우리들의 재미없는 '일상' 그 자체고 큰 사건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 평소와 같이 수업을 하고 친구를 만나고 이웃집을 지나치기 등등의 일상인 것이다. 몇 달 전, 원작 소설의 리뷰에서도 썼었지만 만약 누군가가 우리들의 일상을 훔쳐본다면 "정말 재미없다."고 말하지 않을까. 이처럼 영화에는 별 다른 전개도 없이 일상적인 소재들로 가득한 채 담담하게 흘러간다.

 이러한 담담한 전개에 포인트를 준 것은 바로 '스타일'이다. 이 영화는 놀랍도록 잘 짜여진 '그들만의 세상'같다는 느낌을 준다. 예를 들어서 조지가 살고 있는 집부터 그렇다. 그의 서랍 속에는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모든 것이 잘 정리되어 있다. 마치 정리벽 혹은 결벽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가 살고 있는 집 또한 인테리어 책자에서 볼 수 있을 법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 영화 중반부에 나오는 '연필깎기'조차도 무척이나 질서있게 정리되어 있었다. 이렇게 정교하고 아름다운 소품들의 나열을 통해서 영화는 '화려함'을 보여준다.



 게다가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오죽하랴. 영화 속 인물들은 한결같이 훈훈하고 길쭉하기 그지 없다. 저런 사람들이 모여있는 세상이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또한 영화의 색감 또한 아름답고, 영화 속에 흘러나오는 아벨 코르제니오스키의 현악기 스코어 또한 무척이나 아름답기 그지 없다. (비록 나의 친구는 너무 잦은 현악기 음악들이 등장해, 대놓고 나 우아하다고 말하는 것만 같다고 해 신경 쓰였다고 했지만 말이다.) 이 모든 것이 화려함이라는 목적 아래 이루어져 있고,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은 영화의 연출을 맡은 톰 포드가 원하는 것이었을테고, 그러한 면에서는 무척이나 성공적이었던 것 같다. 영화 스토리상 그닥 중요하지 않은 이웃집 남자의 등장 조차도 정장 CF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었으니.

 그런 점에서 아쉬웠던 점은 바로 그 화려함이 너무나도 큰 나머지, 감정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나가 넘어지면 모든 것이 넘어지는 도미노처럼, 정교하게 짜여진 세계 속에서 한 가지가 붕괴된 이후의 아슬아슬한 조지의 심리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기도 한데 실제 영화는 화려함의 비중이 너무 커서 다른 부분이 가려져 있다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영화들의 부분들은 마음에 들지만, 그것을 한 데 모아 놓으니 예상치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달까.


 영화의 배우들은 좋다. 특히, 이 영화로 2009년 베니스 국제 영화제와 BAFTA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콜린 퍼스의 슬픔 연기는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우리에게 '미스터 다아시'로 유명한 콜린 퍼스는 세월의 흐름과 함께 늙었지만, 연기는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최근의 무의미했던 필모그래피들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안타까움을 떨쳐낼 수 있었을 정도로 영화 속에서 시종 일관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조지의 모습은 무척이나 좋았다. 또한 샬롯으로 출연한 줄리안 무어의 연기 또한 언제나와 같이 좋다. 조지와 마찬가지로 샬롯 또한 외로움을 안으며 살아가는 인물인데, 그녀는 조지와 달리 쾌활한 겉모습을 지녔다. 화려하고도 요란스러운 웃음 소리에 나오는 고독함은 줄리안 무어의 연기를 통해서 잘 느껴진다.

영화 속 강의 시간에 조지는 소수자들과 두려움에 대한 열변을 토해낸다. 그는 소수가 다수를 두려워하는 것이 아닌 다수가 소수를 두려워하기 때문에 박해가 이루어지는 것이라 주장한다. 물론 강의실의 학생들은 그의 말에 관심이 없다. 사실 이것은 성적 소수자에 위치하고 있는 조지가 자신의 정체성이 다수의 시선에 인해서 경멸받을까 하는 내재된 생각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이는 영화 속에서 다소 뜬금없는 장면이지만, 조지는 그저 그러한 열변을 토함으로써 자신 안에 있었던 외로움과 그 외 여러 감정을 토로하고자 했던 것이다. 영화는 게이 교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에는 그 누군가를 잃은 혹은 세상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향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느날과 마찬가지로 같은 하루를 쫓아가지만, 분명히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는 모두 다 다르다. 언제나와 같은 삶은 공허하기 그지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삶을 이어나가는 것은 이러한 과정 또한 우리들의 삶에 속해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다수에 속해있든지 소수에 속해있든지, 결국 우리들이 맞이하는 결말은 언제나 똑같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안식처 말이다. 결국 인생이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