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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하트비트] 귀엽지만, 씁쓸한 그런 사랑



 지난해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캐나다가 내세웠던 영화는 89년생(무려 21살)의 젊은 캐나다 신예 감독 자비에 돌란의 첫 연출작 [J'ai tué ma mère] 이었다. 비록 후보에 오르는 것은 실패했지만, 이 모든 것은 그의 첫 번째 장편 데뷔작이 칸 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을 수상함으로써 좋은 평가를 받고 인정을 받았다는 데서 비롯되었다. 그리고 1년 후 세 명의 청춘이 등장해 삼각관계를 펼치는 자비에 돌란의 신작 [하트비트]는 또 다시 칸 영화제에 초청되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그의 전작과 여러모로 달랐다. 영화 내내 정체된듯하면서도 비장한 분위기를 주었던 [나는 내 엄마를 죽였다, J'ai tué ma mère]와 달리 이번 영화는 상당히 밝은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서 봤던 인터뷰에 따르면,  이에 대한 답으로 "전작에 대한 기대와 부담을 더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전혀 다른 스타일의 작품을 하는 것"이라고 답했다고 했다고 한다) 그만큼 자비에 돌란의 두 번째 장편 영화는 마치 시를 읽는 것처럼 비주얼적으로 스타일리쉬했다.
 
 사이 좋은 두 친구 프란시스와 마리는 어느 날 파티에서 니콜라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문제는 둘 다 니콜라에게 반했다는 데 있었다. 둘은 니콜라를 가르켜 그리스의 아도니스를 꼭 빼닮았다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둘은 열심히 쌓아왔던 우정도 잊은 채 니콜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노력한다. 서로에게는 니콜라에게 관심이 없는 척 하면서도, 둘은 각자 어떻게 하면 니콜라에게 잘 보일 수 있을까 궁리를 한다. 오드리 햅번을 좋아한다는 니콜라의 말에 프란시스는 오드리 햅번의 포스터를 구입해 니콜라에게 선물하는 한편, 마리는 오드리햅번의 흉내를 내기도 한다. 그 뿐만 아니라 둘은 니콜라와의 약속을 앞두고 한껏 치장을 하는 등 둘만의 경쟁을 펼쳐댄다. 하지만 정작 니콜라는 그 둘 중 한 명을 택할 생각은 없어보인다. 마치 마리와 프란시스를 한 셋트로 여기는 것처럼, 그는 한 명을 선택하지 않고 그 모습을 지켜보는 마리와 프란시스는 애가 탄다.
 

  영화의 스토리는 이게 끝이다. 한 명을 둘러싼 친구 둘의 경쟁이 바로 이 영화의 전부인 것이다. 세 명의 남녀가 등장해 펼치는 삼각관계란 언제나 그랬듯이 특별함이 없고, 결말은 대부분 좋지 않았다. 사랑을 받는 대상은 둘 중 그 누군가를 선택해야만 하고, 그로 인해서 상처를 받을 인물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끔 삼각관계는 두 사람 누구와도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결말을 선보이기도 하고, 세 사람 모두 죽음을 맞이한다는 비극적인 결말을 선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삼각관계는 그 자체로서 무척이나 식상하고, 이는 [하트비트]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비록 다른 영화들과 달리 한 남자를 두고 남자와 여자가 경쟁한다는 것은 흔해빠진 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와 다른 점이지만, 이 영화가 (프랑스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캐나다의 퀘백에서 제작되었다는 것을 감안해보면 이 사실조차 특별한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니콜라가 누구를 선택하느냐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니콜라라는 한 남자를 좋아하며 연모하는 두 남녀의 마음을 보여주는 데에 있다.
 
 누군가 말하길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고 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에 대한 감정으로 가득찬 채 그 사람의 옳고 그름, 혹은 좋고 나쁨을 구분하지 못하는 말이었다. 이 주장을 설명해줄수 있는 수많은 예시 중 하나는 약속에 늦는 연인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나의 친구는 무척이나 화가 나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세상에, 아까 나 남자친구랑 만난댔잖아. 그런데 걔가 나한테 빨리 오라고 해놓고 아직도 오지 않았다니깐? 난 약속시간보다 20분이나 일찍 갔는데 말이지. 더 웃긴건 이 약속을 걔가 잡았다는 거야." 그 때는 바로 약속시간보다 15분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의 말에 나는 건성으로 "곧 오겠지. 기다려봐"라는 말을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남자친구가 도착했다는 말과 함께 전화가 끊겼다. 그리고는 몇시간 후 나는 친구에게 남자친구가 늦어서 미안하다며 맛있는 것을 많이 사줘서 좋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친구가 불만을 터뜨린지 불과 5시간 후의 이야기였다.
 
 나는 나중에 친구를 만나 그녀의 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그 당시 친구는 늦는 남자친구에게 계속 연락을 했지만 남자 친구와 연락이 잘 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늦는 애인에게 불만을 터뜨리면서도 내심 그가 자신에게 질린 것은 아닐지 걱정이 되었다고 했다. (질렸다는 것은 곧 이별이 닥쳐온다는 것을 의미하니깐. 그래서 친구는 이별이 두려웠다고 한다) 나를 만날 때마다 들리는 친구의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은 언제나 "그래도 좋으니까 만나긴 해"라는 말로 끝나곤 했다. 언젠가 친구는 남자친구와 이별을 할테고, 그 순간 울면서 나에게 남자친구에 대한 욕을 잔뜩 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옆에서 보는 친구는 마치 사랑에 빠진 바보처럼 남자친구에 대한 불만보다, 칭찬을 더 많이 하곤 했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가 영화 속에 등장한다. 영화 속 수많은 점프컷이 사용되기 전에 잠깐 잠깐 등장하는 인터뷰들이 바로 그것들인데, 영화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인터뷰를 중간에 삽입함으로써 사랑에 대한 정의와 영화 속에서 주가 되는 삼각관계의 결말에 대한 그림자를 드리운다. 그 누군가는 사랑에 실패하고 아파해야하는 그런 삼각관계의 결말 말이다. 결국 니콜라는 누구를 선택했을까? 사실 그에 대한 답은 무척 허무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사실 영화의 결말 또한 삼각관계로 인한 상투적인 결말인 셈이지만 말이다. 영화의 엔딩 부분에서 나오는 또 다른 한 남자는 이 둘의 경쟁이 결코 끝나지 않음을 암시한다. 결국에는 헛소동으로 끝나더라도 그 동안은 즐거운 것이 바로 사랑이 아니던가. 그래서 우리는 사랑과 이별을 계속해서 반복한다. 그것이 상호적인 감정이든, 짝사랑의 감정이든 말이다. 어쨌든 사랑을 하는 동안에는 상대방의 모든 것이 좋게 느껴지기 때문에.
 
 하지만 영화의 스토리는 전체적으로 얕고 상투적이라는 단점을 가진다. 내내 말했듯이 영화는 삼각관계 하나만을 초점으로 맞춘 채 이야기를 전개시켜나가고, 그를 통해 보여주는 것들 또한 무척이나 상투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마음에 드는 부분은 바로 영화 속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이라 할 수 있는 '스타일' 자체에 있다. 영화는 빈티지, 모던한 스타일을 계속해서 선보인다. 여자 주인공인 마리가 입고 있는 옷들은 빈티지한 옷들로 그녀는 가끔 다른 여인들에게 왜 저러냐는 식의 눈초리를 받기도 한다. 하지만 그녀를 통해서 보여지는 스타일은 무척이나 빈티지하면서도 인상적이다. 그에 비해 프란시스의 의상은 너무나도 현대적이다. 그는 빨간 스키니 바지를 입거나, 파란색 바지를 입는 등 모던한 패션을 선보인다. 또한 영화 속에서 자주 사용되는 원색적인 색상들 - 빨강, 파랑, 주황색 등- 또한 영화의 스타일을 형성하는데 한 몫을 한다. 비록 영화 속에서 자주 등장하는 슬로우 모션이나 영화의 주제가라 할 수 있는 Dalida의 Bangbang은 너무 스타일적인 부분에만 신경을 쓴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