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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갑작스런 웃음이 터지면 기억해주세요(애정만세, 2011)


불꽃같은 사랑을 꿈꾸는 순간이 있다. 모든 것을 다 바쳐도 아깝지 않은 열정적인 사랑. 사람들에게 그것은 첫사랑으로 기억되거나 모든 사랑이 그러했다고 기억된다. 누군가 사랑은 처음을 닮아가려 하기 때문에 모든 사랑이 첫사랑이라고도 하지만. 그러나 삶은 잔인하게도 늙은 몸과 늙지 않는 마음을 주시고 연애를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는 서투름은 준다. 그럼에도 사랑을 멈추지 않는 것은 살아있기 때문이다.

 

영화계에 흥미로운 감독이 등장했을 때 주목하는 것은 그들의 ‘다음’이다. 현재 너무 뛰어난데, 다음에도 그러할 수 있는가. <똥파리>의 양익준 감독,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부지영 감독의 다음은 <애정만세>다. 물론, 기획되었고 지원받았고 첫 상영도 잡혀 있다. 이것이 감독에게는 상당히 발목을 휘어잡는 조건이겠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감독이 가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고, 앞으로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 건지 관객은 알 수 있다.

부지영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은 사랑을 하는 나이든 여자에 대한 이야기다. 주인공 순임은 지난 가을 야유회 때의 일을 잊지 못하고 있다. 한 남자가 다친 그녀를 보듬어줬고 겨울이 다 지나가는 발렌타인 데이인 오늘에도 산정호수의 그 일을 꿈꾼다. <산정호수의 맛>은 주인공 순임을 맡은 배우 서주희의 얼굴이 기억에 남는 영화다. 그녀는 산정호수로 혼자 여행을 떠나고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것을 표정으로 이야기한다. 고통과 설렘, 희망과 실망이 수없이 교차되며 그녀는 야유회 그 장소에 서 있다. 모든 게 얼어 있는 그 곳에. 순임은 ‘아무리 추워도 저 밑바닥까지는 얼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그녀가 기대하는 것은 얼어붙지 않은 마음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란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순임은 다 자란 딸이 있어도 여전히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지만, 신은 경쟁력 떨어지게 늙음을 주시고 인간을 시험하듯 늙지 않는 마음을 주었다. 이러한 농간에 아직 사랑할 수 있는 순임은 좌절한다. 순임이 좋아하는 그 남자는 젊다. 단지 젊기 때문에 승자이고 순임의 사랑을 비웃고 조롱할 수 있다. 젊고 육체적인 매력 밖에 없는 그 남자이기 때문에 순임은 그런 남자를 좋아한 자신을 인정하고 아그작 아그작 그에게 주려던 미스터빅을 씹으며 돌아선다.

 

순임은 같은 여자가 보면 공감가고 보듬어주고 싶은 캐릭터다. 우리 모두 나이 들수록 사회에서 요구하는 어른의 책임을 다해야 하고 개인의 욕망보다는 의무가 앞선 생활을 해야 하지 않은가. 홀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이면서 철없다고 손가락질 당할 수 있는 순임의 모습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게 뭔지 깨달을 수 있지 않을까. 말하자면, … 솔직한 마음이라던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도 얼어붙지 않는 마음이라던가.

 

양익준 감독의 <미성년>은 따뜻한 미소가 어울리는 영화다. 마치 전작에서 다른 쪽으로 전력질주한 것 같지만, 양익준 감독의 에너지는 그대로다. 전 애인과 헤어지고 있거나 헤어진 남자와 여자가 만난다. 두 사람의 세계가 만나면서 충돌이 빚어진다. 왜냐하면, 여자는 미성년이기 때문. 그러나 남자 또한 미성년이다. 사회적으로는 어른의 나이지만, 그의 마음은 미성년이다. 미성년. 실수해도 괜찮은 나이. 앞이 창창하니까, 이 정도쯤은 좋은 경험 쌓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나이. 변명꺼리가 충분히 있지만, 남자와 여자는 함께 나아간다. 그냥 마음이 그리로 가니까.

 

사랑을 잘한다는 건 어떤 걸까. 분명한 것은 연애를 잘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것이다. 조건을 충족시키는 사람을 만나, 열심히 즐겁게 놀다가, 감정적인 교류를 나누면서, 저 사람이 나를 찰 것 같으면 내가 먼저 차서 자존심을 지키는 게 다는 아닐 것이다. 이런 유형이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질질 목매고 끌려 다니는 사랑이 맞는 사람도 있다. 그것에 후회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각자 자기 방식대로 마음 가는 대로 하는 것이 제일 좋다. 물론 이것은 굉장히 원론적인 이야기로 '헹! 말로는 누가 못해‘ 이럴 수 있다. 사랑 앞에서는 미성년이 되고 나의 서투름이 그대로 드러나 버리니까.

 

실제 나이 미성년 민정. 마음 나이 미성년 진철. 민정과 진철 모두 옛사랑의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하룻밤 같이 보내게 되면서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고 미성년인 민정의 협박 아닌 협박으로 함께 시간을 보낸다. 민정은 진철을 만나는 게 옛 남자에게 보내는 신호였다. 니가 준 상처 따윈 잊고 괜찮은 사람 만나고 있다는. 그 이전에 진철의 어떤 점에 끌렸기도 하다. 그리고 진철은 아직 옛 여자와 헤어지는 중이다. 어른인 것처럼 보이는 진철의 옛 여자는 그를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다. 그러나 민정은 야누스처럼 평소에는 소심하다 술을 마시면 돌변하는 진철의 모습을 알고 있다. 그리고 이제 진철이 민정을 알아갈 시간이다.

 

사랑을 아무리 해도 서툰 사람들은 그 서투름을 지우지 못한다.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지 않는 한, 가면을 만들어내고 위장을 해봐도 서투름은 공개되고 만다. 나에게는 <미성년>이 서투름으로 읽혔다. 간혹 서투름은 오해와 착각을 낳지만,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에게는 더 없는 사랑스러움이다.

 

이 글은 아트하우스 모모에서 6월 8일(수)열린 <애정만세>와 GV를 보고 듣고 느끼고 쓴다. 감독들과 배우의 웃음소리가 인상적이었던 GV는 조용하던 관객을 웃게 만들었고 오랜만에 심오하지 않은 편안한 감독과의 대화 자리였다. 나는 산정호수의 맛에서는 순임의 얼굴이 기억에 남고, 미성년에서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그 질문을 후회한다. 양익준, 부지영 감독의 사랑관을 물어볼 걸 그랬다. 서툰 사람입니까? 사랑을 잘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님, 지금 사랑에 빠져 있습니까? 그것은 어떤 형태와 질감, 맛을 지니고 있습니까?

 

글 | 모모 큐레이터 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