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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26년 만에 지켜진 약속! 천재 무용가 피나 바우쉬, 세계적 영화감독 빔 벤더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다!

26년 만에 지켜진 약속

천재 무용가 피나 바우쉬,

세계적 영화감독 빔 벤더스에 의해

새롭게 탄생하다!

 

지난 6월 30일은 20세기 최고의 현대무용가 피나 바우쉬Pina Bausch가 작고한 지 3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탁월한 혁신성’과 ‘놀라운 창조력’으로 오랜 세월 동안 현대무용계의 독보적인 아이콘이었고, 전 세계인들에게 남다른 경험을 선사해주었던 그녀는 69세의 어느 날, 암 선고를 받고 세상을 떠났다. 일찍이 과감하고 독창적인 장르로 관객들에게 다소간의 당혹감을 안겨준 바 있는 그녀지만, 이토록 갑작스런 이별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깊은 슬픔에 빠지게 했다. 그녀의 오랜 친구,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는 피나의 혁신적인 춤사위를 스크린에 담고자 수십 년간 공들여 왔으나, 한 순간에 파트너를 잃고 영화의 존재 이유마저 상실했다. 하지만 그는 프로젝트의 중단이 아닌 전환을 택한다. 피나와 함께 찍는 영화 대신, 피나를 위한 영화를 완성한 것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시네마 거장이 ‘바람처럼’ 사라져간 위대한 무용가에게 바치는 작별인사였으리라.

작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최고의 이슈였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도 국내 관객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 영화 <피나PINA>는 오는 8월 정식으로 만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포토그래퍼이자, 빔 벤더스의 아내이기도 한 도나타 벤더스Donata Wenders의 사진전이 같은 시기 열린다는 점이다. 남편의 예술적 동반자로서 도나타는 영화 <피나>의 스틸 작업과 피나 바우쉬의 초상 작업에 참여한 바 있다. 이번 사진전의 전시목록에 관련작품을 상당수 포함하고 있다니, 피나 바우쉬의 영혼이 투영된 마지막 몸짓을 사진 속에서 그리고 영화 속에서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몸짓으로 세상을 구원한 여자, 피나 바우쉬

 

피나 바우쉬는 20세기 현대무용계의 신화적 존재이다. “지난 50년을 통틀어 가장 뛰어난 혁신가”라는 수식어는 그녀의 위상을 잘 설명해 준다. 이 가녀린 무용가는 어떻게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일까? 그 비결은 ‘인간에 대한 관심’에 있다. 피나 바우쉬는 조화로운 안무와 뛰어난 기술을 추구하기보다 항상 인간 내면의 감정에 귀 기울여왔다. 말하자면 사랑과 두려움, 그리움과 외로움, 좌절과 공포, 기억과 망각 등 인간이 필연적으로 제기할 수 밖에 없는 실존적 질문들을 주제로 삼고, 그것을 표현해내는 방식에 대해 끊임 없이 탐구했던 것이다.

이러한 창작작업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요소는 ‘무용수들과의 소통’이다. 피나는 작품에 대한 완성된 그림 없이 리허설에 참가한다. 무용수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각자 말과 몸짓으로 대답한 것을 기록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자신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나간다. 무용수들이 지정된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수동적 타자를 넘어 협업자로 존재하는 한편, 안무가는 일종의 디자이너로서 연습 중에 발견된 것을 변형하고 이어 붙이거나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

주목할 만한 것은 언어와 일상적 움직임 역시 피나 바우쉬 작품의 한 요소라는 사실이다. 그녀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언어를 사용하여 상황을 사실적이며 구체적으로 표현했고, 화려한 무용 테크닉과 더불어 일상생활의 자연스러운 몸짓을 사용했다. 피나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일부 낯선 감정을 느끼는 이유도 여기서 비롯된다. 잘 짜여진 안무에 익숙한 관객으로서는 이러한 ‘비정형성’이 어느 정도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피나 바우쉬는 그런 까닭으로 전 세계인의 마음을 얻었다.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만한 현실적인 주제를 놓고, 단원들의 경험과 관객들의 경험을 공유하게 함으로써 거대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인간의 원초적인 감정들이 격렬한 독무, 우아한 듀엣, 역동적인 군무 속에서 자유롭게 펼쳐지고, 관객들은 이 같은 신체의 아름다움을 통해 신선한 감동을 얻는다. 그녀의 작품은 무용 애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직관적인 예술이다.

이 독일 안무가는 순수예술과 대중의 장벽을 허무는 한편, 예술양식간의 경계도 허물었다. 연극 구성을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무용을 음악영화오페라미술 등 다양한 예술요소와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오늘날 무용이 통합예술로 여겨지는 것은 모험적 시도를 서슴지 않은 그녀의 공이 크다. 요컨대 피나 바우쉬를 ‘탄츠테아터(Tanztheater, 무용극)의 창시자’로 정의하는 것은 그 능력과 창조성을 과소평가하는 것이며, ‘장르 개척자’ 내지는 ‘경계를 초월한 혁신가’로 이해하는 것이 옳겠다. 그래서 그녀의 춤사위를 체험하는 것은 특별한 기회이자 축복이다.

 

영화계 음유시인 빔 벤더스,

필름으로 살아 숨쉬는 그녀를 그리다

 

영화감독 빔 벤더스는 1985년 베네치아 극장에서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를 처음 접하고 강렬한 인상에 압도되었다. 어린 시절 화가를 꿈꿨고, 세계 3대 영화제를 석권했으며, 사진작가로도 활동중인 이 전방위 아티스트는 그 때의 경험을 ‘생애 처음 접한’, ‘눈으로 직접 보고도 믿기 어려운’ 아름다움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는 직감으로 이 매혹적 춤사위를 스크린에 담아야겠다고 판단하지만, 공연 특유의 공간감을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 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답을 내리지 못한다. 공동 작업에 대한 논의란 오랜 시간 동안, 늘상 하는 반복적인 농담 정도로 치부됐던 것이다. 하지만 2007년 무렵,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칸에서 세계적인 락밴드 U2의 3D 영화를 관람한 빔 벤더스가, 3D 기술이야말로 무용수들의 역동적인 움직임을 입체적으로 담아내는 한편, 그 생동감을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하는 방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즉각 로케이션 장소와 컨셉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지만, 실제 촬영에 들어간 것은 그로부터 2년 후다. 왜냐하면 그들이 <아바타>의 제임스 카메론 감독도 경험한 적 있는, 어떠한 기술적 한계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당시의 3D는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담아낼 수 없었다. <아바타> 조차, 실제 인물들의 어색한 움직임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가상인물들로 유연하게 감춰야만 했다. 예컨대 3D영화의 경우, 일반 영화에 적용되는 초당 24프레임 대신 초당 50프레임으로 촬영해야만 빠른 동작을 매끄럽게 표현해낼 수 있다. 물론 제임스 카메론도 이 사실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초당 50프레임 짜리 3D영화를 상영할 수 있도록, 모든 극장의 영사 시스템을 개혁(!)하지 않는 한 의미 없는 작업이었다. 따라서 감독은 기다려야만 했다. 발전된 장비의 ‘출현’을 고대하면서. 하지만 그 사이, 세기의 뮤즈가 그들 곁을 떠났다. 20년 이상 진행되어온 프로젝트도 중단되는 듯 했다.

촬영 재계를 독려한 것은 무용단원들이었다. 단원들은 인생의 롤 모델이자 멘토였던 그들의 여제(女帝)가 여전히 작품 속에서 살아있다고 믿었고, 그녀를 향한 진혼곡을 완성하고 싶어했다. 이것은 빔 벤더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의 동작, 제스처, 감정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던 그녀의 마법을 스크린에 옮겨놓고자, 그는 피나 바우쉬식 작업방식을 도입했다. 안무가가 무용수들에게 끊임 없이 질문을 던졌듯, 감독은 단원들에게 피나에 관한 질문을 던졌고, 그들은 움직임, 제스쳐, 춤으로 화답했다. 


제작과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3D는 실제로 사람이 눈으로 보고 뇌로 인지하는 과정을 흉내 낸 것이기 때문에 두 대의 카메라가 필요했고, 그 둘 사이에 6~7cm의 거리가 확보되어야 했다. 하지만 카메라 크기 상 두 기계를 밀착시켜 놓을 순 없다. 그래서 거울을 활용했다. 원경을 촬영하느냐, 근경을 촬영하느냐에 따라 두 렌즈 사이의 글, 거리, 포커스를 조율해야 했고, 이것은 고도의 집중력과 정밀함을 요구하는 지난한 작업이었다.

 

 

 

다행스럽게도 기술은 빠르게 발전했다. 2010년에는 거대한 장비 대신 스테디캠으로 3D촬영이 가능해져, 카메라워크에도 적극적인 변화를 줄 수 있었다. 말하자면 카메라는 그들과 함께 ‘춤추듯’ 촬영했다. 무용수들의 동선을 미리 파악한 후 단원들 사이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며, 관객이 객석에서 놓칠 법한 숨은 그림을 포착한 것이다. 무용수들의 호흡 하나하나, 미세한 표정 변화, 제스처, 떨림까지 영화 속에 생생하게 살려냄으로써, 비로소 진정한 실사 3D영화가 완성되었다.

세련된 연출과 혁신적 기술을 통해 우리는 이제 새로운 차원의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객석에서 공연을 보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무대 위에 올라가 무용수들과 감정을 교류하는 짜릿한 체험이다.
그리고 빔 벤더스는 피나 바우쉬의 세계를, 공연과 영화를 결합한 신선한 장르로 재창조함으로써, 시네마 거장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그는 또 한 번 진일보하며 영화 언어를 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켰다.

26년 전의 약속은 마침내 성사되었다. 관객은 스크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생사를 초월한 두 아티스트의 우정을, 손에 닿을 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몸짓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