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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Descent> over the cole(sixth sense) and sadako(ring)

<Descent> over the cole(sixth sense) and sadako(ring)

U.K;2005;98min;35mm;color
Director: Neil Marshall
Cast: Shauna MacDonald, Natalie Jackson Mendoza

"올 여름 이 한편의 공포 영화로 충분하다!"
작년 7월 개봉한 닐 마샬의 디센트는 광고 카피가 원망스러울 정도로 맞아떨어진 공포 영화였다. '하락, 하강, 몰락'이라는 사전적 의미의 제목 처럼 영화 속 주인공들이 경험하는 동굴의 깊이 만큼이나 관객들을 공포의 극점까지 끌어당기는 힘이 장난이 아니다. 2005년 제작된 영화로 국내에서는 신선도가 떨어졌지만, 영화를 보고 난 후에는 왜 이 영화를 2년이나 썩히고 지금 개봉하는지 배급사를 찾아가 멱살잡이라도 하고 싶을 정도로 정말 오랜만에 공포 영화라는 장르적 재미에 흠뻑 취할 수 있는 작품이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주위 사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소리지르고 귀 막고 얼굴 가리면서 공포가 주는 불가항력적인 쾌락에 몸은 힘들지만 도대체 왜 이 영화가 이토록 무섭고 재미있었는지에 대해 곰곰히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몇 년간 갈수록 힘이 빠지는 한국 공포 영화가 살아날 수 있는 몇 가지 힌트가 이 영화 곳곳에 묻어있기 때문이다. 타산지석, 반면교사는 괜한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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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o simple story : 이야기가 아닌 공포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로 스토리가 간단하다는 것이다. '사고로 가족을 잃은 한 여인이 1년 후 친구들과 함께 동굴 모험을 떠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 치명적인 공포를 접하게 된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는 이야기는 영화에서 배우와 사건을 시간적으로 배열시키는 최소한의 역할을 할 뿐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 않는다. 즉 이 영화는 이야기보다는 상황이나 인물을 통한 공포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의미이다. 영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동굴의 입구에서부터 관객은 이야기로부터 오는 공포가 아닌 동굴이라는 극도의 폐쇄성을 가진 공간으로부터의 공포와 6명의 여인들의 미묘한 관계에서 비롯되는 공포에 숨을 죽이게 된다.(그리고 나중에는 어디서 나타날지 모르는 기괴한 존재로부터) 사실 디센트의 이야기 구성 자체로만 보았을 때는 다른 공포 영화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여섯 명의 한 집단이 특정 장소에 모이게 되고 그 곳에서 예기치 않은 존재와 마주치면서 그곳을 탈출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극도의 공포를 느끼게 된다는 최근 많이 볼 수 있는 공포 영화의 이야기 구성을 따르고 있지만 디센트가 평범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유는 "왜 그들이 그 공간에 갇히게 되었고, 그 파괴적인 존재와 등장인물들과의 관계가 무엇인지"에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볼 수 있는 공포 영화들의 공통적인 전개는 '답을 풀어가는 과정'이라고 간단히 표현할 수 있다. 그 답이란 惡의 존재가 과연 무엇이며 인물과 그 악의 사이에는 숨겨진 비밀에 관한 것이다. 관객은 영화를 보는 내내 그 답을 찾기 위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고, 그 답이 가져올 반전의 충격에 기대하며 영화를 보는 습관을 갖게 된다. 때문에 영화가 끝난 후 어려운 수학문제를 푼 것처럼 머리가 복잡하거나 억지로 짜맞춘 답안지에 보기좋게 뒤통수를 얻어맞는 경험을 왕왕 할 수 있다. 하지만 디센트는 이러한 복잡한 이야기의 구성을 벗어나 최소한의 이야기로 최대한의 공포를 이끌어내는 시도를 하고 있다. 동굴이라는 공간이 가진 특성과 알 수 없는 존재의 위협... 디센트는 얽히고 섥힌 이야기가 없이도 공포라는 감각에 충실하면 충분히 좋은 장르 영화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사례가 되기 충분하다. 

더불어 디센트는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괜찮은 공포 영화가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는 영화다. 개봉 첫주 이미 제작비의 7배의 수익을 올렸다는 사실을 중요하게 짚어 넘어갈 필요가 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특성에 얼마나 충실한가'이고 더 바란다면 '그 위에 얼마나 양질의 창조적 변형을 시도했는가'의 여부일 것이다. 영화를 본지 일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영화 속 장면을 생각하면 순간순간 공포가 몸을 스친다.(뭐니뭐니 해도 이 영화 최고의 공포는 캠코더를 통한 일인칭 시점의 공포다. 그 순간 극장 안은 배우들이 있는 동굴이 된다.) 왠지 쉽게 잊혀질 공포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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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게도 <디센트>가 2008 넥플 영화축제 기간 중에 씨네큐브에서 다시 상영된다고 한다. 날도 덥고 습도도 높고 기상청은 헛소리만 헤대는 판국에 보양할 겸 극장을 다시 찾아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