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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 (Obsluhoval Jsem Anglickeho Krale,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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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리 멘젤 감독의 '나는 영국왕을 섬겼다'는 꼬마라는 뜻인 디떼라는 이름을 가진 남자의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리고 있다. 교도소에서 15년의 형기를 마친 나이 든 디떼는 자신이 일할 곳인 독일군이 살던 폐허를 찾아가고 그 곳에 정착하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된다. 영화는 현실과 과거를 드나들면서 이야기를 전개 시키는데 현재의 디떼의 모습을 나이든 남자의 진지한 내면적인 목소리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곱씹어 본다면 과거의 디떼는 마치 무성영화의 컬러판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로 디떼의 우스꽝스러운 행동을 통해 그의 파란만장한 삶을 코믹하게 그리고 있다.

젊은 디떼가 돈의 힘을 서서히 알아가는 과정이 흥미로운데 돈을 벌고 남은 잔돈을 일부러 바닥에 뿌려 사람들의 반응이 지켜보는 과정이 마치 찰리 채플린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코믹하다. 사람의 계급과는 상관없이 돈이 넘쳐나는 상류층 고객들도 돈을 줍기 위해 무릎을 꿇고 돈을 찾는데 돈 앞에서 무릎을 꿇는 인간들의 속물주의를 잘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이렇게 잔돈을 바닥에 뿌리던 디떼는 기차에서의 헤프닝으로 알게 된 부자를 알게 되면서 자신의 인생의 목표를 돈을 많이 벌어 바닥에 하나씩 쌓는 것으로 정하게 된다. 평생 서비스업에 종사한 디떼는 시간이 지나면서 성공을 달리게 되는데 '포레스트 검프'나 '허드서커 대리인'같은 행운적 요소를 동반한다는 점이 굉장히 코믹하다. 우연히 장교가 아무 생각 없이 그에게 준 팁 덕분에 돈을 벌고 더 좋은 호텔에서 일하게 되고, 자신의 경쟁자인 웨이터의 발을 걸어 그의 자리를 차지할 뿐만 아니라 키가 작은 점을 이용해 남의 훈장을 가로채는 모습은 웃음을 동반한다. 하지만 그의 희극적인 성공은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과는 달리 다른 사람의 자존심이나 명예를 철저히 무너뜨리고 공을 가로챈다는 점이 특징이다. 웨이터의 발을 걸어 그의 자부심을 망가뜨리고 영국왕을 섬겼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호텔 지배인의 명예를 가로채는 모습은 한편으론 성공을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던 남자의 이면적인 모습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아무런 생각없이 순탄히 진행되던 디떼의 삶도 독일의 침략으로 변화하게 된다. 독일이 체코를 침공하면서 체코는 독일인에 대한 반감을 드러낸다. 반 독일적인 분위기가 팽배하던 시기에 디떼는 양말을 벗기려는 체코인들로부터 곤경에 처한 리자라는 독일 여성을 도와주게 되고 그 계기가 되어 디떼는 리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이 리자라는 여성이 철저한 나치 맹신자라는 점이다. 리사는 디떼가 독일인의 혈통이 아니어서 그와 결혼할 수 없다고 말하는데 디떼는 청소부였던 자신의 조부가 요한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었다고 고백하자 리자는 그의 선조가 독일계 이름을 가졌다면서 그와 결혼하기로 결심한다. 디떼는 리자와 결혼하기 위해 친독일적인 삶을 살게 된다. 독일인의 혈통을 임신시킬 우수한 정액을 가졌는지 검사하기 위해 디떼는 자위행위를 하게 되는데 디떼가 간호사의 도움을 얻어 자위행위를 하는 동안 체코의 젊은이들이 독일군에게 끌려와 총살형을 당하는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친독일주의자가 된 그의 모습을 초라하게 묘사한다.


ps. 호텔의 지배인(?)으로 등장하는 배우가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여러 가지 언어를 쓰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비교적 정확한 발음으로 한국어(!) 문장을 구사한다는 점이다. 시대상으로는 2차 대전 이전이니 그 때 한국 사람이 체코를 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점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에게 한국어로 말하는 모습은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ps2. '소피 솔의 마지막 날들'에서 나치에 대항하던 소피 솔을 인상적으로 연기한 줄리아 옌체가 이 영화에선 정반대로 철저한 나치의 추종자로 나온다는 점이 특징이다. 두 캐릭터 모두 진지한 점은 똑같은데 정치적 방향의 차이가 이렇게 다른 모습을 보일줄은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