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위선의 태양 (Utomlyonnye solntsem, 1994)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위선의 태양'은 모스크바의 성에 달려있는 붉은 별을 고정된 프레임으로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이후 카메라는 줌아웃되면서 열을 맞춰 행진하는 군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암울한 모스크바의 시대 분위기를 암시한다. 이후 영화는 말끔한 옷차림을 한 남자를 등장시키는데 다소 초조해보이는 표정의 남자는 서서히 총알을 하나씩 꺼낸 후 총을 자신의 머리에 겨눈다. 총알이 나가지 않아 극적으로 살아남은 남자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한다. 초반의 충격적인 장면은 관객으로 하여금 긴장감을 일으키며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저 남자는 누구인가. 왜 저렇게까지 자신의 목숨을 버리려고 할까 하고 말이다.

자신의 목숨을 끊으려던 남자의 등장 이후 영화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나이 든 장교와 젊은 아내, 그리고 어여쁜 여자 아이를 등장시킨다. 스탈린의 집권을 기념하는 비행선이 한참 제작중인 시골 마을에서 오랫만에 가족과 함께 휴가를 보내던 세르게이 코토브는 시골 마을의 밀밭을 향해 돌진하는 탱크들을 막아달라는 주민들의 요청을 듣고 말을 타고 현장에 등장한다. 런닝 차림의 장군을 본 병사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더니 세르게이가 모자를 쓰는 순간 그가 스탈린과 절친한 코토브 장군이란 것을 알고 황망히 그곳을 빠져 나온다. 밀밭을 향해 돌진하려는 탱크들을 자신의 등장만으로 막아낸 세르게이의 모습을 통해 그의 화려한 명성과 강력한 권력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밀밭의 민원을 처리한 후 세르게이의 가족들은 자신들이 사는 저택으로 들어가 대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평화롭게 휴가를 맞이한다.

하지만 세르게이의 딸인 나디아 앞에 한 남자가 찾아오면서 영화는 평화로운 가족의 일상에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는다. 남자가 지난 10여 년동안 사라진 체 소식이 없던 드미트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가족의 일원들은 모두 기뻐하며 그를 맞이하지만 세르게이와 그의 아내인 마루샤는 드미트리의 등장에 당황한다. 드미트리가 물을 원하자 거실에 들어간 마루샤가 수돗물을 튼 체 밸브를 잠구지 않는 모습과 그녀의 손목 사이에 난 커다란 칼자국을 익스트림 클로즈업 쇼트로 보여주면서 마루샤의 초조한 감정을 드러내며 드미트리와의 묘한 관계를 짐작케 한다. 평화로운 한나절을 보내면서 가족들은 즐겁게 야유회를 맞이하지만 드미트리와 마루샤의 모습과 이들을 경계하는 세르게이의 모습은 여자아이인 나디아의 입장에서 이상하게 느껴진다. 나디아는 호기심에 삼촌이라 부르는 드미트리에게 여러가지 질문을 하지만 마루샤는 딸을 나무라며 드미트리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 한다. 아버지와 딸이 보트를 타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동안 드미트리는 마루샤를 한 외딴 수풀로 유도한다. 드미트리는 자신과 마루샤와의 사랑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모든 것이 그대로였지만 자신은 10여 년동안 이 곳에 없었다고 말하면서 그들을 떠나야 했던 아픔을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세르게이는 대범한 척하며 두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도록 자리를 비켜주었지만 마루샤와 드미트리가 화생방 훈련의 혼란 속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고 서둘러 자신의 집으로 달려간다. 방독면을 쓴 체 피아노를 치는 드미트리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안심하는 세르게이의 모습은 두 사람을 의심하는 묘한 경계심이 엿보인다.

마루샤와 드미트리 그리고 세르게이와의 묘한 관계는 드미트리가 아이인 나디아에게 들려주는 동화를 통해 드러난다. 드미트리가 들려주는 동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디아는 호기심에 빠진 체 이야기를 경청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 수록 마루샤는 점점 표정이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드미트리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다름아닌 세 명의 남녀에게 있었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한 장군의 협박으로 집을 떠날 수 밖에 없었고, 그가 한 때 사랑했던 연인은 그 장군과 결혼해 있었다고 말하는 이야기를 통해 드미트리는 자신과 세르게이 사이의 악연을 드러내면서 명망있는 장군인 세르게이의 숨겨진 위선적인 속내를 드러낸다. (한편 드미트리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둥근 태양의 모습을 한 불꽃이 등장하면서 세르게이의 집을 돌아다닌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꽃처럼 돌아다니는 붉은 태양은 나무를 향해 떨어지며 강렬하게 나무를 태워버린다. 마치 가족의 불운을 예고하듯이 말이다.) 마루샤는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정신적인 혼란을 겪으며 옥상에서 뛰어내리려 한다. 간신히 그녀를 말린 세르게이는 마루샤와 사랑을 나누면서 그녀와 화해를 하고 드미트리는 이야기를 고백한 후 피아노를 강렬하게 치면서 자신의 분노를 애써 억누른다.

more..


ps.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이 영화의 제목은 소련에서 30년대에 유행하던 곡인 Утомлённое солнце (Utomlyonnoye solntse, Weary Sun) 에서 유래되었는데, 폴란드 작곡가인 예르지 페테르스부르스키 (Jerzy Petersburski)가 만든 폴란드 탱고 음악인 Ta ostatnia niedziela 를 번안했다고 한다.


Jerzy Petersburski - Ta ostatnia niedziela


Eduard Artemyev - Utomlyonnye solntsem OST


ps2. 영화의 감독인 니키타 미할코프가 직접 세르게이 장군을 연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인데, 처음 봤을 때는 이 사람이 감독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또한 나디아를 연기한 여자아이는 감독의 친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