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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더 걸 (Das Schreckliche Mädchen,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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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자 로스무스(Anja Rosmus)의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더 걸'은 필징 시에서 자라온 소냐의 이야기를 통해 금기시 되었던 숨겨진 진실을 찾으려는 여성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학생 시절 '2차 대전 시절의 내 고향'이라는 에세이를 쓰기 위해 도서관에서 자료를 조사하던 소냐는 우연히 1936년 즈음에 발간된 지역신문의 기사를 발견한다. 기사에 언급된 인물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소냐는 당시 사건과 관련된 관계자들을 만나면서 인터뷰를 하려고 하지만 당시 기사를 쓴 편집장이자 교수인 유케낙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당시 있었던 사건을 함구하며, 도서관에서는 소냐가 찾는 자료의 대출을 거부한다. 관계자들의 비협조적인 태도와 부족한 자료로 인해 소냐는 자신의 에세이를 쓰는데 실패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과제를 계속하고 싶어한다. 소냐는 결혼 생활 이후에도 계속해서 연구를 계속하게 되고 그녀의 끈질긴 노력 끝에 숨겨진 진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소냐가 마을에서 존경받는 유케낙 교수의 숨겨진 친나치 경력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그녀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집단적인 따돌림과 린치를 당하게 된다.

거대조직의 협박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드러내기 위해 홀로 싸우는 여성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점에서 '에린 브로코비치'나 '베로니카 게린' 등의 영화들을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영화들이 영화적 플롯에 맞춰 정통적인 드라마적 구성을 취한다면 '더 걸'은 인터뷰 기법과 연극무대를 통한 희극적 구성이라는 독특한 영화적 구성을 취하고 있다. 리포터가 도시를 소개하는 듯이 영화의 주인공인 소냐가 마을의 명물들을 설명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마치 소냐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찍는 것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마이크를 스크린에 드러내 소냐를 포함한 주변인물들을 인터뷰 함으로써 소냐에 대한 인물들의 심정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예를 들면 소냐의 외삼촌의 인터뷰를 통해 필징 시를 상대로 소송을 건 소냐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드러내며 그녀의 남편의 인터뷰를 통해 가정 살림에 소홀한 체 필징 시를 상대로 홀로 싸우는 소냐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을 표현한다.

또한 영화는 연극무대 같은 배경과 무대세트 장면을 드러내면서 인물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뒷배경을 공간의 사진으로 표현하고 인물들의 행동을 그 가상의 공간에서 보여줌으로써 연극 무대같은 공간을 마치 건물 속 공간처럼 인식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연극적 구성을 통해 영화는 사건을 바라보는 소냐의 심정을 희극적으로 표현한다. 예를 들면 자료의 열람을 요구하는 소송 장면에서 판사의 뒤에 있는 동상을 분장한 사람이 잠을 자는 모습으로 표현함으로써 웃음을 이끌어내며 공평하지 못한 법정의 행태를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또한 재판장에서 소냐를 바라보는 방청객들의 모습을 보여준 후 소냐가 나무더미 위에 묶혀 화형을 당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그들의 심정을 인상적으로 드러낸다.

한편 영화 속에서 묘사되는 필징 시의 모습은 비단 당시 서독 사회의 모습만이 아닌 현대의 우리 사회에서도 적용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성에 대한 호기심을 억제한다는 명분으로 임신한 임산부 교사를 해고하고 접은 화폐가 여성의 성기를 연상시키다는 이유로 화폐의 폐지를 주장하는 가톨릭의 비합리적인 모습과 기부금의 액수에 따라 점수의 평가가 달라지고 시험문제를 알 수 있는 썩어빠진 교육 실태, 그리고 진실을 드러내려는 소냐를 옹호하는 남자를 향해 '공산주의자는 동독으로 꺼져라'라고 소리치는 공산주의에 대한 혐오감 등은 생소하지 않고 친숙(?)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