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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The King> 이제 당신이 나를 용서할 차례예요...

이제 당신이 나를 용서할 차례...

제임스 마쉬's The King in CineCub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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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킹>은 엘비스(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의 해군 전역 장면으로 시작한다. 동료에게는 '고향으로 내려간다'고 당연한 듯 말하지만, 그의 귀향이 편안하지 않을 것임은 따로 챙긴 라이플에서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와 함께 살던 곳이 아닌 한번도 만난 적 없는 아버지를 찾아 텍사스의 작은 마을로 길을 잡은 엘비스. 사창가를 찾아 욕정을 해결하고, 웬만큼 굴러갈 중고 자동차를 끌고 아버지가 목사로 있는 교회를 찾아간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에 충실한 엘비스와 철저히 기독교적 가치관에 취해 있는 아버지 데이빗(윌리엄 허트)와의 만남. 시작부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둘의 만남은 이후 한 가정과 개인을 파멸로 이끄는 단초가 된다.

아버지는 엘비스를 보자마자 그의 존재를 부정한다. 신망 높은 교회의 목사이자 단란한 가정의 가장으로 과거의 방탕한 생활은 도덕적 삶의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비스는 잊고 싶은 과거를 현재까지 이어주는 존재였다. 아버지의 냉대에 실망한 엘비스의 시선은 이복동생인 말라리(펠 제임스)에게 향한다. 독실한 크리스찬 집안에서 탈 없이 자란 16살 소녀는 그의 존재를 모른 채 위험한 첫사랑에 뛰어든다. 특별한 의미 없이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주어진 삶을 살아왔던 말라리는 엘비스를 통해 자신의 '여성'을 알게 되고, 가족과 학교, 교회 밖에서의 삶을 사직한다.  

하지만 오빠 폴(폴 다노)은 아버지의 연장선에 있다. 졸업을 앞둔 학교에 진화론과 함께 창조론 강의를 개설해 줄 것을 요구하고 목회자인 아버지의 뒤를 잇고자 신학대학에 진학할 만큼 충실한 기독교인이다.(폴 다노는 '데어윌비블러드' 때부터 목회자 역할에 참 잘 어울린다. 전작에 비하면 지극히 정상적인 인물로 나오지만) 그만큼 가족 역시 지켜야 할 중요한 대상이었다. 하지만 엘비스와 멜라리의 '부정한 관계'를 끊기 위한 폴의 노력은 결국 그를 죽음으로 내몬다. 본능에 충실한 엘비스는 돌발적으로 폴을 죽이지만 아이러니하게 그것이 엘비스에게는 기회가 된다.

영화는 정확히 이 지점부터 인물들이 감추고 있었던 본심을 홍미 있게 그려낸다. 아버지의 냉대에 대한 증오, 그에 대한 복수심으로 저지른 근친상간과 우발적 살인은 결국 엘비스가 얼마나 한 가정의 일원이 되고 싶어했는 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들이었다. 저녁 식사 후 텔레비전 앞에서 가족과 함께 하는 한가한 시간을 보내고, 새어머니를 위해 정원을 가꾸는 엘비스는 결국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오빠가 되고 싶었을 뿐이었는지 모른다.

데이빗 역시 폴의 실종 이후 강한 '종족 유지'의 습성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과거를 회개하며 신도들에서 엘비스를 소개하는 데이빗은 목적을 위해 수단을 정당화하는 평범한 인간에 지나지 않았다. 엘비스와 데이빗을 통해 감독은 종교 역시 인간이 자신의 도덕적 삶을 포장하기 위해 이용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는 도발적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이지도 모른다. 구원과 용서는 결코 절대자에 의해서가 아닌 개인적 생존에 근거한다는 것이다.  

종교와 구원, 그리고 인간의 관계에 대한 감독의 문제의식은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연상시키지만 <더 킹>은 <밀양>보다 더 비극적 답을 선택한다. 말라리는 평범한 오빠가 되길 선택한 엘비스에게 실망하고, 그의 아이를 가진 사실을 어머니 트윌라에게 말한다. 하지만 엘비스는 자신의 도덕적 안락한 삶을 방해하는 그녀들까지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리고 아버지를 찾아 교회로 간다. 그의 손에는 아무것도 쥐어 있지 않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는 근친상간과 살인을 저지른 죄인이었고, 데이빗에게는 아들이자 가족을 파멸로 이끈 원수였다.

"이제 당신이 나를 용서할 차례입니다." 영화는 아내와 딸의 피가 묻은 손을 데이빗에게 내밀며 엘비스가 뱉은 짧은 말로 끝난다. 하느님은 아버지의 과거를 용서했고, 엘비스는 아버지를 용서했다.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용서만을 바라왔던 데이빗은 과연 구원과 용서를 선택할 수 있을지, 과연 목회자로서의 본분과 개인적 증오와 욕심 사이에서 무엇을 선택하게 될 지... 데이빗이 어떤 것을 선택하든 비극적 결과가 될 것은 달라지지 않는다.

언뜻 보면 사랑과 전쟁의 스토리 몇 가지를 뒤섞어 놓은 듯 하고, 중간중간 <밀양>, <리플리>, <매치포인트> 등의 영화를 떠오르게 한다. 복수, 구원, 종교, 인간, 근친상간, 살인 등 자극적이고 논쟁적인 내용이지만 <몬스터볼>의 작가 '밀로 애디카'는 과도하게 힘을 주거나 반대로 맥빠지지 않게 관객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고려하는 배려를 한다. 가엘 가르시아 베르날와 윌리엄 허트의 이름값 하는 연기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