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바나 블루스'는 쿠바의 억압된 공산주의 체재에서 탈출하고 싶어하는 두 청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영화의 주인공인 루이와 티토는 뮤지션으로 성공을 위해 활동하는 음악가들이다. 빨간색 고물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음반 데모에 쓰일 곡들을 녹음하는 모습과 그들의 음악 연주 장면을 교차하는 과정이 흥미롭게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제 3세계의 음악가들을 찾던 과정을 그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처럼 영화 속에서도 쿠바의 뮤지션들을 찾아다니는 음반 관계자들이 등장한다. 평소에 알고 지내던 라디오 방송국 관계자로부터 스페인에서 온 마타라는 여성을 소개받은 루이와 티토는 성공을 위해 그녀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간다. 적극적으로 마타를 쫓아다니며 그녀의 환심을 산 그들은 정식으로 평가를 받은 후에 자신들이 오디션을 통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제 마이애미에서 음반 관계자들과 조율만 하면 스페인에서 정식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된 그들은 성공에 취하여 자신들에게 펼쳐진 장밋빛 미래를 꿈꾼다.
영화는 꿈을 향해 나아가던 루이가 자신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깨달아가면서 갈등하는 과정을 흥미롭게 그리고 있다. 루이의 아내인 카리다드는 음악가로서 성공하기 위해 연주에 몰두하는 루이 대신 생활비를 충당하기 위해 교사로서의 꿈을 포기하고 목걸이를 만들어 살림을 꾸린다. 하지만 현실적인 장벽은 카리다드의 심정을 괴롭힌다. 장사를 위해 자릿세를 지급해야 할 돈조차 없는 판에 그녀의 남편인 루이는 그저 음악을 위해 가정을 소홀히하는 것도 모잘라 여자들에게 추근거린다. 자식들을 위해 어쩔 수 없이 루이와 동거를 계속하던 카리다드는 어느 날 미국으로 밀입국하여 함께 살자는 어머니의 편지를 받는다. 카리다드는 자신을 힘들게하는 쿠바에서 벗어나기로 결심하지만 막상 결정을 한 후 루이를 남겨두고 간다는 일말의 죄책감을 가진다. 가정을 소홀히 하고 다른 여자와 어울리던 루이로서는 아내와 아이들을 미국으로 보내겠다는 계획을 반대할 자격조차 없다. 하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만은 다른 아버지 못지 않은 루이는 스페인으로 이주한다면 자신의 아이들과 평생 헤어질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고통스러워 한다. 루이는 자신에게 중요했던 것이 가족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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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성공을 앞두고 가족과 이별해야 한다는 현실 속에서 고통스러워 하던 루이는 마이애미에서 돌아온 마타를 통해 음반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게 된다. 마이애미의 음반 관계자들은 쿠바 음악 자체보다는 자신들 입맛에 맞는 제 3세계 음악만을 원했던 것이다. 루이와 티토는 스페인에서 음반을 내기 위해서는 쿠바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이 담긴 곡들을 불러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결국 그들은 스페인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 평생동안 쿠바를 떠나야 하는 큰 댓가를 치뤄야 하는 것이다. 뮤지션으로서의 삶을 제한하는 환경 속에서 벗어나길 원하던 티토는 성공을 위해 현실적인 비용을 감수하더라도 스페인으로 떠나고 싶어하지만 그동안 자신의 선택에 대해 갈등하던 루이는 계약의 실체를 이해한 뒤 성공보다는 뮤지션으로서의 자존심을 선택한다. 사실 루이 역시 스페인으로 떠나 뮤지션으로 성공하고 싶었던 인물이었다. 음반 관계자인 마타와 육체적인 관계를 가지며 그녀와 친분을 쌓았으며 누구보다 열성적으로 녹음에 참여했던 그였지만 정작 뮤지션의 자존심을 포기하면서까지 성공을 하는 굴욕을 감수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루이와 티토의 갈등은 두 뮤지션을 결별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다. 자신의 꿈이 좌절되었다고 생각한 티토는 분노를 이기지 못해 루이를 떠나고 만 것이다. 루이는 자신의 음악을 이해할 뮤지션이자 친한 친구인 티토와 결별했다는 사실에 슬퍼한다. 게다가 미국으로 밀입국하기로 결정한 카리다드와 이별이 얼마 남지 않게 되자 그녀에 대한 뒤늦은 사랑의 감정을 깨닫는다. 자신에게 소중한 존재인 티토와 카리다드가 각자가 원하는 탈출구로 떠날 날이 얼마남지 않았다는 것에 슬퍼하지만 다시 새로운 출발을 하기 위해 루이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콘서트 준비를 한다. 루이는 자신 주변의 친구들의 도움으로 불가능해 보였던 콘서트를 준비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콘서트를 위해 무대에 올라온 루이는 자신의 친구인 티토가 공연을 함께 하기 위해 그를 찾아왔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직 앙금이 남아있는 듯 서먹서먹하던 두 사람은 이내 서로에 대한 서운함을 털어내고 마지막 콘서트를 함께 한다.
마지막 콘서트에서 연주하는 곡들은 남미 특유의 리듬이 섞이면서 흥겨운 분위기를 조성한다. 이후 이별을 앞둔 카리다드와 티토를 위해 연주하는 루이의 곡은 쓸쓸하면서도 아쉬운 결별의 정을 드러낸다. 엔딩 크레딧이 흘러나오는 동안 계속되는 콘서트 장면 속에 삽입된 두 사람과의 이별은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스페인으로 떠나는 비행기 너머로 가슴을 치며 우정을 확인하는 루이와 티토의 모습 그리고 밤 사이에 보트를 타고 목숨을 건 밀입국을 하는 짧은 순간 동안 가족에 대한 사랑을 드러내는 장면은 가슴을 쓰라리게 한다. 콘서트가 끝난 후 홀로 쿠바에 남은 루이는 자전거를 타면서 쿠바의 거리를 달린다. 얼핏 지나가는 붉은 색 자동차를 보고 티토에 대한 설레임으로 고개를 돌리지만 현실은 홀로 남은 루이만 있을 뿐이다. 거리 사이로 사라지는 루이의 마지막 모습을 담은 엔딩 장면이 쓸쓸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