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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리틀 애쉬] 지독한 사랑의 두려움, 초현실로의 도피

리틀 애쉬 : 달리가 사랑한 그림
감독 폴 모리슨 (2008 / 영국)
출연 로버트 패틴슨, 하비에르 벨트란, 매튜 맥널티, 마리나 가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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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 애쉬] 지독한 사랑의 두려움, 초현실로의 도피

달리의 그림 세계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으로 고른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난 지금 나는 달리의 그림 세계를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영화 속에서 볼 수 있기를 기대했던 달리의 그림을 보지 못한 것이 이유가 될까?

20세기 초반 세상은 현실을 견디기 힘들어 하는 청춘들이 내뱉는 고통에 찬 신음과 일탈, 혁명을 향한 이상과 낭만, 출로를 찾지 못하는 자기 부정으로 가득했다. 자신이 발 딛은 현실이 아닌 다른 세상, 다른 나라, 다른 제도, 다른 이데올로기로 탈출하지 않고서는 날 선 감성을 안은 채 버틸 수 없었을 것이다.

<리틀 애쉬>에 등장하는 불꽃과 같은 청춘 페데리코 로르카와 살바도르 달리도 봉건의 장막이 무겁게 내리 누르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공기가 답답했다. 짧은 생애를 지나는 동안 만들어진 자기 내면이 부르짖는 지향을 펼칠 공간이 없었다. 하지만 너무도 간절한 지향.

영화는 폭발할 듯 자신을 뚫고 나오려는 내면을 지닌 화가 살바도르 달리와 작가 페데리코 로르카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일상적으로 내보일 수 없지만 글과 그림으로 드러내는  드러나는 서로를 감지한다.

스페인, 페데리코 로르카
페데리코에게는 그가 자란 곳 그라나다에서 만난 사람들을 향한 사랑이 깃들어 있다. 영화 는 페데리코의 시와 페데리코의 편지, 일기, 글로 스페인과 한 몸처럼 엮인 페데리코를 보여준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 달리의 실체 보다 페데리코가 강하게 남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페데리코의 구체적인 고민과 고통, 여정, 선택은 그 자체로 당시의 스페인을 보여준다. 공화주의에 대한 열망과 압제를 겪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 현실을 벗어나고 바꾸기 위한 모색과 항쟁은 페데리코 자신이면서 동시에 스페인의 현실이다.
그가 관계 맺는 달리, 루이스 브뉘엘, 그리고 당시의 신여성이던 막달레나. 그 모든 사람들과 페데리코는 융화한다. 적어도 달리처럼 의도적인 벽을 쌓지 않고 열고 자신을 드러낸다. 그들의 생활 속에도 들어간다. 그곳이 스페인의 시골 마을이든지, 스페인을 내리누르는 썩은 권위자들의 만찬자리이든지 가리지 않는다.
영화 속 페데리코의 동선을 따라가 보면 스페인과 스페인 사람들이 보인다.
페데리코에게 찾아온 비현실적인 존재 달리는 너무도 사랑하지만 벗어나고 싶은 스페인에서 그를 꺼내 줄 새로운 존재처럼 보인다. 때문에 그가 달리에게 보내는 뜨거운 사랑에 공감하게 되는 것 또한 영화가 페데리코의 마음을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벗어나려는 마음이 만든 광기, 살바도르 달리
영화가 페데리코를 잘 보여주는 것과 달리, 살바도르 달리는 종잡지 못한다는 인상을 받는다. 영화 초반에 보여준 몇 점의 그림 말고는 달리의 광기와 혼돈을 설명해주는 장치가 약하다. 다만 페데리코를 향한 끌림과 그로 부터 벗어나려는 폭력적인 이탈만이 눈에 띌 뿐이다.
달리의 광기 섞인 현실 이탈에는 이유도 도피하려는 목적지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가 거부하는 것들만을 나열할 뿐이다.

실재하는 감성과 존재는 만나면서 작용하게 마련이다. 그게 큰 섬광으로 부딪히든지, 닿을 듯 닿지 않는 그리움으로 비껴가든지 서로에게 무언가를 남긴다. 영화 속에서 정말로 보고 싶었던 부분이다. 두 예술가가 서로에게 남긴 영혼의 흔적을 말이다. 허나 볼 수 있기를 바랬던 작품에 남겨진 서로의 흔적은 볼 수 없었다.
다만 둘 사이를 오가는 미묘한 때로는 폭발하는 듯한 끌림이 영화 속 이미지로 전달될 뿐이다. 어떤 부분에서는 액자처럼 등장하는 <안달루시아의 개>와 닮아 있기도 한 영상은 두 사람의 감정선에 너무 집중해 있다는 생각도 들게 한다.

하지만, 20세기 초반의 세상, 스페인 그리고 그 시대를 끊어질 듯 예리한 감성으로 살았던 청춘들을 보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면 영화는 많은 이야기를 보여줄 것이다. 격동의 소용돌이를 더욱 격한 정열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도 아름다우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