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만 기다려 보세요.... 잠깐만..... 어디보자. 여기 어딘가에 있는데. 아, 여기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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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손에 수줍게 검지손가락을 대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어디선가 본 적있는 얼굴이라고요? 꽤나 오래된 흑백사진인것으로 보아 나이 좀 드신분 같죠? 아, 저기 저 분이 맞추셨네요. '파트리크 쥐스킨트'입니다. 그 사람이 누구냐고요? 이름은 들어 본 것 같은데명확히 안 떠오르시나 보네요. <좀머씨 이야기>와 <향수>의 작가죠. 유명하죠. 국내에서도 꽤나 이름 날렸죠. <좀머씨 이야기>가 유행할 때니까, 그게 벌써 15년 전이네요. 아, 3년전에 <향수>가 영화로 개봉되면서 다시 베스트셀러에 이름을 올렸었죠. 아, 이제 다들 생각나시나 보네요. 부끄러워 하실 필요 없어요. 저도 작가 이름 보고 '누구지?' 했다가 책 날개에 달린 작가 소개 보고 '아, 그 사람이구나!' 했으니까요.
오늘 이야기 하고자 하는 책이 바로 이 사람이 쓴 책입니다. 제목은 <콘트라베이스>이죠. 쥐스킨트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한 번씩은 다들 읽어보셨을 겁니다. 두께도 두껍지 않고 크기도 작고 가볍게 들고 다니면서 보기에 좋은 크기죠. 그러고 보니 <좀머씨 이야기>, <깊이에의 강요> 그리고 이 책까지 모두 얇고 작은 책이 공통점이네요.
허허, 이렇게 독서 후기를 쓰는건 처음이네요. 제가 잘 말하고 있나요?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는 건 이 책의 형식을 따라해 보고 있는거에요. 문득 따라해 보고 싶었거든요. 생각보다 재밌긴 하군요. 이 독서 후기가 끌날 때까지 저 혼자 떠들겁니다. 그리 길진 않으니 걱정하진 마세요. 귀찮으신 분들은 스크롤 주욱 내리셔도 돼요. 그런걸로 상처 받거나 하진 않습니다. 쓸데 없는 말이 길어지네요. 본격적으로 책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죠. 이 책은 모노드라마에요. 한 사람이 나와서 끝까지 혼자 떠듭니다. 마치 지금의 저처럼요. 연극을 하기 위해 만들어진 희극이죠. 즉, 연극 대본이라 할 수 있는 거에요. 그래서 연극 보는걸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마 즐겁게 읽으실 수 있으실 겁니다. 머릿속에서 연극이 펼쳐지니까요. 실례지만 잠깐 좀 마시겠습니다.....
(맥주를 조금 마신다.)
... 작가가 독일인인데다, 책에서도 주인공이 말하는 틈틈히 맥주를 마시느라 저도 안 마시곤 못 베기겠더군요. 어디까지 이야기를 했던가요. 아, 모노드라마. 거기까지 이야기 했군요. 한 극단의 제의로 써진 이 작품으로 쥐스킨트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희곡이자 문학 작품으로서 우리 시대 최고의 작품>이라고 알려졌다는군요. 전 우매한 독자라서 그 정도로 대단한 작품이라는 건 잘 모르겠어요. 원래 저런 수식어들은 과장이 잔뜩 들어가 있잖아요. 그래도 확실히 멋진 작품인건 동의합니다. 암요.
이 책의 주인공은 콘트라베이스 연주자 입니다. 무려 국립오케스트라에서 소속되어 있는 단원이지요. 콘트라베이스의 중요성을 힘주어 이야기 하면서 또 모멸차게 비난하고 정신이 하나도 없지요. 방음이 된 좁은 방안에서 생활하면서 35살의 나이로 20대의 젊은 성악가 세라를 짝사랑하는 소시민입니다.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는 소시민과 썩 어울리지요. 제1바이올린 연주자나 지휘자들이 소시민이라고 하는 건 조금 웃기잖아요. 드라마를 보더라도 언제나 주인공은 피아노 연주자 혹은 지휘자 혹은 바이올린 연주자 이잖아요. 오케스트라 제일 뒷줄 오른쪽에 앉아서 연주하는 콘트라베이스는 중요하지만 조명을 받진 못하죠. 한 공연에서 받는 독주자나 지휘자가 받는 시선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가 평생 연주하면서 받는 시선보다 많을 것이라는 이야기엔 마냥 웃을 순 없더라고요. 콘트라베이스는 주목 받을 수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튀면 안되는 악기이지요. 반쪽 북인 팀파니 보다도 주목을 받을 수 없다고 한탄하는 그의 주장에서 우리는 우리 대다수의 소시민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튀진 않지만 묵묵히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역할을 해 나가는 콘트라베이스의 주자들이죠. 그리고 세상의 시선을 받는 건 지휘자와 제1바이올린주자라는 겁니다. 오케스트라에서도 1등만 쳐다보는 더러운 세상....
(한 모금 마신다.)
... 제 이야기도 아닌데 덩달아 흥분하게 되는군요. 저음의 울림은 방음벽도 관통해 나가는 힘이 있어요. 하지만 그게 전부인게 문제인거죠. 주인공은 자신의 음악적 신분의 한계에만 분개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있어서도 문제가 있어요. 그 문제가 자신이 콘트라베이스 연주자라는 것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이 또 답답하네요. 짝사랑하는 메조 소프라노 그녀에게 콘트라베이스는 반주도 해줄 수 없는 악기에 불과하거든요. 심지어 눈도 마주치지 못한 그는 오늘 밤 공연에서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하기 전 조용한 그 순간에 "세라!"라고 외칠 마음에 준비를 하고 문을 나섰네요. 과연 그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의 안정적인 직업을 포기하고 정말로 외쳤을지도 모르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목에서 소리를 다시 삼키고 연주를 시작했을지도 모르죠. 개인적으론 소리를 외쳤길 바래요. 어차피 후회할 일이라면 해보고 후회하는 것이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국내에선 명계남씨가 이 작품을 무대에 올린 적이 있어요. 그것도 포스터가 어디 있을텐데, 잠깐만 기다려 봐요. 이게 오래 되어서 찾기가 힘드네요. 아, 여깄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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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계남씨 표정이 예술이죠. 콘트라베이스에 혼을 불어넣어 연주하는 모습이 정말 예술가의 모습이에요. 2시간 내내 혼자서 떠들어야 하는 모노드라마 성격상 참으로 소화해 내기 힘들텐데.. 어떻게 무대에 올려놨었는지 못 본 게 아쉽네요. 그 땐 제가 이 작품을 몰랐으니 어쩔 수 없죠. 국내에 또 다시 누군가가 이 작품을 올린다면 구경가야 겠어요. 어이쿠, 짧게 이야기 한다는 것이 조금 길어졌네요. 그럼 전 이만 이쯤에서 퇴장하도록 하지요. 퇴장할 땐 음악이 흐르는 것이 그럴듯 하죠. 이 책의 주인공과 비슷하게 전 동영상을 걸어놓고 가겠습니다. 곡명은 같아요. 슈베르트의 피아노,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를 위한 가장조 5중주곡으로 1919년, 그의 나이 스물둘에, 슈타이어에 사는 어느 채광업자의 청탁을 받고 쓴 작품이라는 군요.
... 이제 정말 가보겠습니다. 시간이 되고 기회가 되시는 분은 가볍게 연극을 본다 생각하시고 읽어보세요. 즐거운 시간이 될거에요. 배경음악으로 이 음악을 틀어놓는 것도 좋겠네요. 그럼 전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