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theater

[언 에듀케이션] ‘왜’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달라니까요!

언 애듀케이션
감독 론 쉐르픽 (2009 / 영국)
출연 캐리 멀리건, 피터 사스가드, 알프레드 몰리나, 카라 세이무어
상세보기

조금 얼뜬 게 흠이지만 귀여운 남자친구도 있고 라틴어는 약해도 에세이에선 늘 A+를 받으며 옥스퍼드 입학을 준비하는 “예쁘고 똑똑한” 여고생 제니는 두 가지 ‘성장’에 직면해 있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그리고 ‘소녀’에서 ‘여성’으로.
얼핏 같은 말처럼 들리지만, 이 둘은 다른 차원의 이중 과제다.

라캉의 악명 높은 언명 “여성(The Woman)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해, 영국의 라캉 연구 권위자 대리언 리더는 <여자에겐 보내지 않은 편지가 있다>에서 이렇게 썼다.
“소녀는 여성이 되지만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준비된 답이 없다. 여성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자동적으로 얻을 수 있는 답은 없다.”
<언 에듀케이션>은 그 답을 얻고자 하는 한 소녀의 분투기이자 일탈기, 곧 성장 드라마다.

여느 날과 다를 바 없는 하굣길, 멋쟁이 신사 데이비드가 비와 함께 브리스틀을 몰고 그녀의 마음속으로 들어온다.(이 남자의 작업 방식, 초고수다.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을까!)
지적이고 유머러스하고 예의바르며 재력가에 수준 높은 취향과 안목을 갖춘 남자.
앞뒤 꽉 막히고 말끝마다 돈타령에 문화적 소양과는 한참 거리가 먼 아빠와 그녀의 가족 앞에서 머저리처럼 굴며 생일에 라틴어 사전을 선물하는 센스 꽝 눈치 꽝 남자애에 넌더리가 난 제니, 샹송을 사랑하고 파리를 꿈꾸는 감수성 예민한 소녀가 그에게 빠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를 따라 음악회에 간 날, 명민한 제니는 단숨에 자신이 다른 세계로 들어왔음을 깨닫는다.
‘라파엘 전파’를 논하고 크리스티 경매에 참가해 번 존스의 그림을 구입하고 재즈클럽에서 최고급 위스키를 홀짝이는 황홀한 세계.
데이비드와 그의 친구들은 제니를 한 사람의 성인으로, 그리고 여성으로 대한다.
따라서 데이비드란 인물은 제니에게 ‘어른’이라는, ‘여성’이라는 미스터리를 동시에 풀 열쇠를 쥐어준 남자처럼 보인다.
이미 자랐으니, 그녀에게 “넌 예쁘고 똑똑하니까 네가 원하는 무엇이든 될 수 있다.”며 너 자신을 아끼고 꼭 옥스퍼드에 진학하라는 선생님의 고리타분한 충고가 들어올 리 없다.
제니는 명문대를 나와도 고작해야 선생님처럼 따분한 삶을 살게 되는 것 아니겠느냐고(그 선생님은 케임브리지 출신이다.), 좋은 남자 만나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는 게 뭐가 잘못된 것이냐고 쏘아붙인다.

그러나 완벽한 듯 보였던 그녀의 인생역전은 거짓말 위에 세워진 위태로운 백일몽이었다.
다른 사람에 의해 ‘부과’된 성장, 그녀의 판타지로 구축된 성장은 결국 허상이었음이 드러난다.
어른 남자와 어울리고, 어른 여자의 치장을 하고, 담배를 꼬나물고 취향과 교양을 과시해도 그녀는 여전히 ‘소녀’일 뿐이다.
그녀의 몸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긴 성관계는 어떤가.
데이비드는 침대 위에서 그녀를 ‘미니’라고 부른다. 남자의 욕망 안에서 그녀는 ‘어린 소녀’이기에 매력적인 존재다.
파리의 데이트는 완벽하게 낭만적인 순간으로 그려지지만, 그곳에서 데이비드와 첫 관계를 가진 후 창백한 새벽 서늘한 공기를 맞으며 제니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한다.
“생각보다 별것 없네요.”
첫경험 또한 제니에게 아무런 해답도 주지 못한다.
다시 학교로 돌아오길 원하는 제니가 교장선생님을 찾아가 “선생님은 제가 여자로서 인생을 망쳤다고 생각하세요?”라고 묻자, 교장선생님은 대답한다. “넌 아직 어린애일 뿐이야."

뒤늦은 깨달음에 제니는 왜 나이 많은 남자에게 대책 없이 끌리는 자기를 말리지 않았느냐고 부모를 다그친다. 지극히 아이다운 물음이다.
그러나 부모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리고 딸애의 방문 밖에 선 아비의 나직한 고백 앞에, 우리는 다시금 깨닫는다.
어른에게도 ‘해답’ 따윈 없다는 것을.
어떻게 살아야 옳은지, 어떤 선택이 최선인지 그들도 아는 바가 없다.
고작해야 자신이 살아온 한 번의 삶(“난 평생 불안에 떨며 살았단다. 널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진 않았다.”)에 비추어 단 두 가지 판단을 내릴 수 있을 뿐이다.(아비처럼 되어라, 혹은 아비처럼은 살지 말거라.)
교육의 필요성을 알려달라는 제니의 물음에 온전히 (하나의) 답을 보여주는 것은 그녀가 그토록 무참히 무안을 주었던 선생님뿐이었다.

물론 배경이 되는 60년대 ‘스윙’ 런던의 낭만적이고 불온하고 도발적인 정서를 공유하는 중반부까지와 달리,
방황하는 청소년들과 단체 관람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을 만큼, 건전하고 ‘교육’적인 결말은 어쩐지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그러나 무조건 배우라 하지 말고 ‘왜’ 배워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알려 달라는 제니의 이유 있는 항변과, 자신의 힘으로 이뤄낸 것이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손쉽게 주어진 성장은 가짜라는 메시지만큼은 분명 의미가 있다.
여기에 제니 역을 맡아 눈부신 매력을 선보인 캐리 멀리건은 올해의 발견이라 할 만하다.

어찌 보면 제니는 행운아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이런 드라마틱한 과정 없이, 어느 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른이, 여자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의문을 품을 새조차 없이 시간에 의해 ‘부과’된 어른 여자의 삶을 살다, 스물아홉에 이르러서야 뒤늦은 열병을 앓는 것이다.
그녀처럼 한번 호되게 부서지고 나서 다시 새롭게 시작할 힘이, 스물아홉 소녀들에게도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산뜻하게 달려가는 제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 뒤에 남겨진 스물여덟(겁눼 많다.-,.-) 계집애가 마냥 마음이 편치만은 않았던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