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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푸른수염] 동화의 재해석



'동화'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무엇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동화는 바로 '따뜻함, 꼬마 아이 '등 긍정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동화 속의 예쁘고 착한 여자 주인공은 고난을 겪지만 결국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이 나타나고 이전의 그녀의 삶이 어땠더라도 결국 행복한 결말을 맞게 된다. 이렇게 동화라는 이미지는 무척이나 유쾌하며 그것을 읽는 독자인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게 된다. 하지만 놀랍게도 오래 전의 동화는 이와 정반대인 이미지인 '잔인함, 어두움, 폭력적'인 단어들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몇 해 전에 인기를 끌었던 『잔혹 동화』가 바로 이러한 이미지의 동화들을 보여주고 있는데, 이들은 우리가 어릴 적부터 읽어왔던 밝고 유쾌한 이미지와는 동떨어져 있다. 이렇게 오래 전의 동화가 점점 교육적이고 밝게 바뀌어가던 와중에도 여전히 잔인하고 어두운 내용을 다루고 있는 동화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프랑스의 동화 작가인 샤를 페로가 지은 『푸른 수염』이다.

 동화 『푸른 수염』의 내용은 이렇다. 부유한 귀족인 푸른 수염은 여러 번 결혼을 했는데, 그의 아내들은 실종이 되었고 그 결과 그는 마을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자리 잡게 된다. 푸른 수염은 그의 이웃 중 한 집을 방문하여, 집 주인의 딸들 중 한 명과 결혼을 하고 싶어하고 결국 그 집의 막내딸이 그와 결혼을 하게 되고 그들은 푸른 수염의 성에 살게 된다. 하지만 결혼 후 푸른 수염은 자신이 성을 잠시 떠나 있어야 한다고 말하면서 성의 모든 열쇠를 그녀에게 주게 되는데 열쇠를 건네주면서 어떤 한 방만큼은 열면 안된다고 신신당부를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방에 무엇이 있는지 보고 싶은 욕망을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그 방을 열게 되는데 알고 보니 실종된 그의 아내들이 그 곳에 있었다. 결국 성으로 돌아온 푸른 수염은 그녀가 방을 열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녀를 죽이려고 하지만 그녀의 형제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화 <푸른 수염>도 이 스토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주인공인 자매는 아버지의 죽음으로 인해 무척이나 가난해지고 막내딸은 푸른 수염과 결혼을 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영화는 동화와 똑같이 전개된다. 하지만 영화화되면서 달라진 점은 바로 '푸른 수염의 성격'이다. 원작이나 영화에서 보여지는 푸른 수염의 캐릭터는 바로 '연쇄 살인범'이다. 어찌 보면 자신의 아내들에게 열쇠를 건네주면서 '저 방은 열면 안된다'고 친절히 말해주는 그의 모습은 마치 그들이 그 방문을 열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영화 속 푸른 수염은 이러한 포맷을 유지한 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자신의 어린 아내에게 모든 것을 다 해주려고 하고 어딘가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와 함께 영화 속에서 좀 더 부각이 되는 캐릭터는 바로 자매들의 캐릭터다. 영화의 감독 카트린느 브레이야 감독은 여성감독으로 이전 작품에서도 '여성들'에 초점을 맞추면서 영화를 전개 시켰는데, 그러한 그녀의 태도는 이 영화에서도 똑같이 드러나고 이는 동화 속 자매 캐릭터 뿐만이 아니라 동화책을 읽고 있는 또 다른 자매를 등장시킴으로서 극대화된다.

 영화는 그 두 자매들의 모습을 교차시키면서 전개해나간다. 일종의 '스토리 텔러'역할을 하는 어린 마리-카트린느는 언니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녀는 똑똑하며 자신의 행동에 주저하지 않는다. 반면에 언니인 안느는 이와 다르다. 그녀는 몹시 병약하며 겁이 많은 캐릭터라 동생 마리가 읽어주는 동화책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마리는 언니를 놀리면서 동화책을 계속해서 읽어나간다. 그렇게 그들이 동화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가 아는 푸른 수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푸른 수염 속의 자매 또한 서로 성격이 다른데, 동생은 아버지의 장례식에 어리다는 이유로 가깝게 가지 못한다. 그와 반대로 언니는 피아노도 잘 치며 얼굴도 예쁘다. 이러다보니 현실 속의 자매나, 동화 속의 자매나 그들 중에서  관심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대상은 단연 언니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동화 속의 동생은 푸른 수염과 결혼을 한다. 마치 자신의 존재가 중요치 않은 집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는 듯이.

이렇게 정신분석학에서 영화를 분석해본다면, 이 두 자매의 모습은 여성의 경쟁 관계를 암시하고 있다. 사실 우리는<푸른 수염>외에도 자매의 경쟁 관계가 그려진 동화를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바로 『신데렐라』다. 신데렐라와 새언니들은 친자매는 아니지만 부모의 결혼으로 결성된 자매이고, 서로 왕자에게 간택을 받으려고 경쟁을 한다. 『푸른 수염』의 자매들 또한 경쟁을 한다. 이들은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 거나 주목을 받기 위해서 서로 경쟁을 한다. 이러한 경쟁 심리 때문에 영화 속에서 동화를 읽는 아이들의 연령이 어리게 설정된 것이 아닐까. 어린 아이들은 무의식 중에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기 쉬운 존재다. 유명한 정신분석학자인 프로이드는 정신 분석을 통해 '무의식'을 주장했다. 우리가 의식하고 있지 않는 저 너머에 우리의 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무의식을 중요시한 것이다. <푸른 수염> 속 등장하는 어린 자매들은 아직 완전한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인물들이기에, 동생은 무의식적으로 언니보다 우위에 서려고 하며 그녀를 놀린다. 그래서 그녀는 도망가는 언니에게 즐겁게 동화를 읽어주면서 언니의 발걸음을 뒤로 재촉하게 만들고 이윽고 언니는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결국 언니가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무의식 중에 경쟁상대였던 언니보다 뛰어나고 싶어했던 동생의 심리 상태라고 해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동화 속에서는 결국 두 자매의 재결합으로 결말을 맞이하지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는 이와 다른 것이다.

 동화는 예나 지금이나 우리에게 생각할 여지를 남긴다. 마냥 어린 아이들이 읽는 내용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그 속에서 여러 가지를 끄집어내어 분석을 할 수도 있고 그것을 통해 느끼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그렇게 이 영화 또한 얼핏 보면 동화책의 내용을 답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동화에서 좀 더 나아간 내용인 것이다. 꼭 동화가 아니더라도 무엇에 초점을 맞추냐에 따라서 충분히 다른 컨텐츠가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