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도서

존 론슨,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

국내에선 아직 미개봉된 영화이지만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제목의 영화는 여러가지 면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조지 클루니, 제프 브리지스, 이완 맥그리거 그리고 케빈 스페이시라는 막강한 캐스팅과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이란 독특한 제목이 과연 무슨 내용의 영화일지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침 동명의 원작이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책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다. 영화의 시놉시스와 책의 내용을 대충 비교해 보니 영화는 책의 내용을 극 형식으로 바꾼 작품에 가까웠다. 원작은 다큐멘터리 제작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존 론슨이란 사람의 논픽션인데, 허구에 가까울 정도로 너무나 믿기지 않는 황당한 내용이 실화라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책은 80년대 당시 초능력을 이용해 벽을 통과하는 염력을 계발하는 제안을 했던 스터블바그 장군의 인터뷰에서 시작한다. 저자는 인터뷰를 통해 미군 내에서 염소를 이용한 초능력 실험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눈으로 노려보기만 해도 염소를 죽일 수 있다는 전설의 군인이 누구인지 추척해간다. 사실 눈으로 염소를 죽일 수 있다는 사람의 존재를 찾는 행위보다 흥미로운 점은 저자가 만나는 다양한 사람들이다. 자신이 초능력자라고 주장하는 인물들로부터 듣는 황당한 인터뷰 내용은 헛웃음이 나오지만 그 사람들을 통해 초능력 연구를 시도하려던 미군의 비밀 작전들의 실체를 알게 되면 더욱 허탈할 뿐이다. 저자는 염소를 눈으로 죽일 수 있다는 전설의 존재를 찾으러 가는 과정을 통해 베트남 전쟁 이후 미 육군이 허무맹랑한 초능력 연구를 하기 위해 비밀조직을 형성했으며 그 실험은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음을 폭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러 수소문 끝에 노려보기만 해도 염소의 심장을 터트린다는 인물이 가이 사밸리라는 사람임을 알아낸 저자는 그를 찾아가 햄스터를 초능력으로 공격하는 그의 염력을 관찰한다. 가이는 저자에게 자신의 염력이 햄스터에게 악영향을 미쳤음을 주장하지만 저자는 그것이 확연한 성과로 보여지지 않았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낸다. 놀라운 점은 미 육군은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다는 이 남자에게 이라크로 이동해 그 능력을 보여줄 것을 요청했으며 심지어 그를 찾아오는 사람을 경계할 것을 요구했다는 사실이다. 한편 미군은 염력을 이용한 공격 외에도 음악을 통해 흘러나오는 주파수를 이용해 상대방을 제압하려는 심리전을 이용하려고 노력하였는데, 이런 황당한 발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베트남 전쟁 이후 초능력 부대를 만든 뒤 요원들을 양성해 미국이 벌인 전쟁에 투입하였다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황당한 초능력을 이용한 심리 기법이 테러와의 전쟁 선포 후부터 미군 내에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시도를 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이라크 전쟁에 관한 외신 기사들 중 미군이 이라크 인 포로를 심문하기 위해 메탈리카같은 헤비메탈 음악을 틀어놓아 수면을 방해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그런데 포로들에게 사용한 음악의 목록을 살펴보면 '바니와 친구들'같은 텔레토비 식의 동요도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당시 외국 언론은 이 점을 지적하며 미군이 아이들 동요를 사용해 포로를 심문하는 방법을 우스꽝스럽게 여겨왔다. 하지만 존 론슨은 이같은 음악을 이용한 포로 심문이 단순한 수면 방해 기법이 아닌 초능력 부대가 주창한 서브리미널 방식의 심리 기법일 수 있음을 언급한다. 그는 아프간 여행 중 억울하게 관타나모 수용소에 구금된 한 영국인이 자신에게 플릿우드 맥 같은 음악을 틀어놓는 식의 고문을 당했다는 증언을 듣게 되는데 그 방법이 자신이 조사한 초능력 부대의 심리 기법과 유사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저자는 이라크에서 자행된 음악을 이용한 고문이 초능력 부대가 계획한 주파수 공격임을 확실하게 증명하지는 못하지만 제법 설득력 있게 미군이 초능력 부대가 생각하던 과대 망상을 실현시키기 위해 포로를 학대하고 괴롭혀 왔음을 드러내고 있다.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에 등장하는 초능력 부대 관련 인물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3류 공상 과학 영화 속에나 나올 것만 같은 과대망상을 주장하는 인물들이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미군은 그들의 도움을 받기 위해 자문을 요청하고 있음을 마지막 글을 통해 언급한다. 왜 미군은 이토록 허무맹랑한 초능력 사용을 통한 심리전을 아무런 의심없이 받아들이고 있을까. 확실히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만들어 놓은 가상의 공포와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를 함정에 빠뜨리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뛰어든 베트남 전쟁의 참담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그들은 모든 수단을 사용해서라도 적들을 제압해야 안심이 되는 모양이다. 아무튼 '염소를 노려보는 사람들'속에서 묘사된 미군의 기상천외한 심리전 연구는 흥미로우면서도 어떤 면에선 섬뜩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