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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ary@arthouse모모

아트하우스 모모 방문기 + 한국영상자료원 김기영 감독 회고전 시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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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월요일에 씨네큐브에서 이화여대에 새롭게 만든 예술영화 전용상영관 ‘아트하우스 모모’를 다녀왔습니다. ‘르 클레지오, 영화를 꿈꾸다’라는 이름으로 열린, 프랑스 출신의 소설가이자 현재 이대 초빙교수로 재직중인 르 클레지오(J. M. G. Le Clezio)의 영화 에세이 <발라시네>의 출판 기념회로 아트하우스 모모의 첫 이벤트였습니다. 씨네아트 팀블로그에 참여하고 있어서 특별히 행사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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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하우스 모모는 이대에 새로 생긴 상업시설인 ECC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ECC를 미리 본 누군가한테서 건물이 정말 엄청나다는 얘기를 듣긴 하였는데, 막상 직접 눈으로 확인하니 정말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상업시설들이 들어오는 건물이라고 해서 수직 형태의 딱딱한 빌딩을 생각했던 저로서는 그 독특한 구조의 건축물에 뭐라 할 말이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어느 유명한 건축가가 지었다는데 만약 이런 게 서울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면 아마 새로운 서울의 랜드마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직접 찍은 사진이 없어서 인터넷에 있는 사진을 대신 올립니다;). 다만 아무래도 학문의 성지라는 대학교 내에 이런 건물이 생겼다는 사실 때문인지 선뜻 이 건물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렵더군요. 이대생이 아니기 때문에 제 눈에는 그저 멋있게만 보였습니다만, 만약 제가 다닌 대학교에 이런 건물이 생겼다고 한다면 또 생각이 다르지 않았을까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학교 내에 이런 예술영화 전용상영관이 생긴다는 사실 만큼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그저 부러울 뿐이었습니다. 수업 끝나고 멀리 갈 것도 없이 학교에서 보고 싶은 영화를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일테니깐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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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장은 씨네큐브 2관보다는 조금 큰, 그래도 1관에 비하면 아담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대신 스크린이 생각보다 커서 영화는 볼만했습니다. 다만 맨 앞자리와 스크린 사이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 앞에서 영화를 보기는 좀 불편하지 않을까 싶더군요. 이날의 행사는 르 클레지오의 낭독회와 함께 영화평론가 유지나와 <집으로>의 이정향 감독이 참여한 관객과의 대화가 먼저 있었고, 이어서 아네스 자우이 감독의 <타인의 취향> 상영회가 있었습니다. 전날의 아무런 이유 없는 무리한 밤샘으로 인해 급격하게 몰려오는 졸음으로 르 클레지오의 낭독회 및 관객과의 대화는 거의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는 꼴이 되었습니다만, 그래도 중간 중간 정신을 차리며 집중하는 동안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한국 영화 나아가 한국에 대한 애정이 느껴져서 나중에라도 시간이 나면 책을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영화는 이번이 처음 보는 것이었는데, 얘기 듣던 대로 많은 사람들의 다양한 취향에 대한 예리한 분석과 관찰이 돋보이는 따뜻한 영화였습니다. 이 좋은 영화를 예전에 개봉했을 때 보지 못하고 뒤늦게야 보게 되어 후회스럽기도 하면서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는 기분이었습니다.

원래는 26일에 이상은의 미니 콘서트를 겸한 <나는, 인어공주>의 상영을 시작으로 극장을 개관하려고 했는데 여러 사정으로 인해 개관이 또 늦춰질 것 같다고 합니다. 장소가 어디가 되던 예술영화 전용관이 생겨나는 것은 두 손 들어 환영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막상 개관하면 남자 혼자서 여대에 들어가기 뻘쭘해서 자주 가게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말이죠(ㅋㅋ). 필름포럼도 이 근처로 옮긴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확실하진 않습니다만;) 두 극장이 함께 신촌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예술영화의 바람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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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금요일에는 상암동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에서 고 김기영 감독의 <하녀> 디지털 복원판 시사회가 있다고 하여 갔다 왔습니다(같이 씨네아트 팀블로그를 만들어 가고 있는 신어지님께서 정보를 알려주셨습니다^-^). 예전에 학교에서 영화 관련 교양수업 시간에 조악한 화질의 비디오로 본 적이 있는데, 오래된 영화임에도 믿을 수 없는 흡입력과 마지막의 정말 ‘충격’과도 반전 때문에 참 흥미롭게 봤던 기억이 있어 살짝 들뜬 마음으로 찾아갔습니다. 게다가 이번 칸 영화제에서도 상영이 되었던 바로 그 복원판이라는 이야기에 기대감이 더욱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기술적인 문제로 인해 <하녀>를 보지는 못하고 대신 79년도 작품으로 장미희와 하명중이 주연을 맡은 <느미>를 보고 왔습니다. 그래도 작년에 아날로그로 복원한 작품의 첫 상영이라는 점에서는 나름 의미가 있던 시사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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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미>는 한 마디로 “근대화의 과정 속에서 타자는 어떻게 규정이 되고 소외되는가”를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일류대학 출신의 준태(하명중)는 새로 이사온 하숙집 근처에 살고 있는 느미(장미희)의 아리따운 모습을 보고 한 눈에 반하게 됩니다. 그런데 느미는 벙어리에 근처 벽돌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입니다. 아직까지 여자를 만나본 적 없는 ‘총각’ 준태는 느미를 향한 넘쳐나는 욕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그녀에게 구애 행동을 하는데, 그것이 예쁜 옷이나 밥솥, 텔레비전 등을 사주는 행위로 나타난다는 점이 매우 인상적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당황하던 느미가 결국엔 준태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어쩌면 준태가 사준 여러 물건들 때문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준태는 느미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갖은 노력을 다하지만, ‘여성’에다 ‘노동자’이며 ‘장애인’이기까지 한 느미를 세상 사람들이 좋은 시선으로 바라볼 리가 없습니다. 느미는 마침내 자신이 준태를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안타까운 이별을 선택하고, 준태는 느미를 잊지 못해 그녀를 되찾으러 가다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합니다.

김기영 감독은 준태라는 인물을 굉장히 동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 같았습니다만, 저는 오히려 느미에게 그런 고통을 안겨준 것은 결국 준태가 아니었나 싶었습니다. 자신 스스로도 엘리트였기 때문에 소외된 계층을 ‘이해’하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동정’하려고만 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느미를 향한 준태의 사랑도 진심어린 마음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동정심이 섞인 욕망 ― 아름다운 여인을 ‘갖고 싶다’는 ― 의 표현처럼 보였습니다. ‘자본가-노동자, 남성-여성, 정상인-장애인’이라는 계급 차이가 영화 전반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 점도 매우 인상 깊었는데, 아무래도 요즘의 한국 영화에서는 그런 계급적인 시각을 찾아보는 것이 쉽지 않아서인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지금은 쉽게 찾아볼 수 없는 골목길의 풍경들이 아주 어릴 적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해 비극적인 영화의 분위기와는 상관없이 참 반가웠습니다. 무엇보다도 장미희 씨의 앳된 모습을 스크린에서 만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그 아리따운 얼굴과 가냘픈 몸매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순수한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도발적인 분위기를 함께 지닌 표정에서는 저도 모르게 준태가 느미에게 욕망을 느끼게 된 것을 공감할 정도였으니까 말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영상자료원 관계자분들께서 <하녀>의 상영이 취소되어 죄송하다면서 김기영 감독에 대한 책을 한 권씩 나눠주셨습니다. 공짜로 영화를 본다는 생각으로 왔는데 이렇게 잘 챙겨주시니까 제가 더 죄송스럽더군요. 영상자료원에서 영화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분위기도 한산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영상자료원 측은 너무 한산해서 걱정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죠. 김기영 감독의 회고전6월20일부터 10일 간 열립니다. 그때는 <하녀>의 디지털 복원판도 상영한다고 하네요. 그리고 1995년에 제작하였으나 개봉하지 못했던 미공개 유작 <죽어도 좋은 경험>의 상영도 있다고 하니 여러 모로 뜻깊은 자리가 될 것 같습니다. (회고전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한국영상자료원 홈페이지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