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 home

굿바이 뉴욕(뉴욕, 아이러브유)

사용자 삽입 이미지

영화 <파리 아이러브유>를 보았을 때,
파리는 정말로 너무나 많은 얼굴을 가지고 있어서
전부는커녕 어느 하나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독신의 평범한 미국 중년 여인이 나오던
가장 우습고 인상적인 마지막 에피소드에서처럼
나 역시 아름다운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뚱뚱하고 초라한 모습으로
공원에 앉아 쓸쓸하게 호수를 바라보며 
바게트를 먹고 있었다.
 
열흘 정도 머물렀던 파리에서
가난하고 할 일이 없이 아침마다 무덤가를 배회하던
내가 이해하고 만날 수 있었던 파리는 그런 모습뿐이었지만,
왕과 귀족에게 부르주아와 지식인에게
그리고 심지어 프롤레탈리아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에게까지도
매력적인 도시는 아마도 파리가 유일하고
그래서 언제가 가보고 싶은 도시 1위라는 사실을
이제는 이해한다.

<뉴욕 아이러브유>는 파리 영화보다
훨씬 유기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이고
짧고 신선하고 나쁘지 않을 만큼 평범하게 좋았다.
재미가 없던 것은 아니지만 뉴욕에 가본적은 없는 나로서는
그 이상의 애정을 가질 수 없었다고 해야 할까.
도쿄의 봉준호 영화가 그랬듯
기대했던 이와이 슌지의 영화도 그냥 그랬고.
 
전 세계의 대도시가 모두 그러하듯
뉴요커의 삶이 이제 더는 진짜 뉴요커만의 것이 아니다.
이 영화는 우리가 뉴욕을 팔고 소비하고 꿈꾸고 기대하고
그런 식으로 다시 뉴욕과 뉴요커를 구축하는 방식을 모두 담고 있다.
그렇게 무언가를 전공자나 비평가의 시선으로 보는 것은
사실 때로는 가장 재미없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말은 거꾸로 보는 도중 두근거림이나 재미보다
이런 생각을 먼저 떠올렸을 만큼
이 영화가 나에게는 크게 재미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래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에피소드는
파리에서 뉴욕으로 온
아마도 자살하려고 마음먹고 오래된 호텔에 투숙한
늙은 여가수가 나오던 가슴시린 에피소드였다.
우리가 오랫동안 파리를 동경했던 방식 그대로
(여전히 파리는 그런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지만)
이제는 뉴욕이 우리 시대의 매혹적인 환상의 매개가 되었다.
마치 흘러가 결국 잃어버릴 청춘처럼
결국은 스러져갈 찬란한 인생의 화려한 시절처럼.
이 이야기는 나에게
아마도 내가 아는 유일한 뉴욕인
과거 포우 시절의 뉴욕과
반다인과 앨러리 퀸의 회색의 뉴욕을 떠올리게 했달까.

그러나 파리나 런던처럼 그 이상의,
아마도 훨씬 더 오래되고 다양한 환상을 만들어 팔 수 없는 것은
미국이 역사가 짧은 신세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뉴요커가 바로 동시대의 전 세계인이기도 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