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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theater

싱글맨 - 매끄럽게 잘 빠진 구찌같이 아름다운 영화


아름다운 영화였다. 내용이 아름답기 보다는 전체적인 영화 결과물을 봤을 때 아름다운 영화였다. 한 조각 한 조각 재단되어 한 땀 한 땀 직접 손으로 바느질한 잘 만들어진 양복을 감상하는 느낌과 비슷했다. 정말 근사하군 그래.



영화 「싱글맨」은 죽어가던 구찌를 다시 가장 핫한 트렌드로 만든 천재 디자이너 톰 포드의 감독 데뷔작이다. 영화를 보고나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런 센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만들어 낸 옷은 정말 hot 하겠구나. 클래식한 단정함에서 엿보이는 세련됨이 보는눈을 즐겁게 한다. 흑백 화면과 붉게 물든 화면이 한 영화에서 어울어진다. 천재 디자이너가 그려내는 화면은 이런 것이었다.
이젠 감독까지 하는 톰 포드

# 시놉시스 
1962년, 대학교수 조지(콜린 퍼스)는 오랜 연인이었던 짐(매튜 구드)의 죽음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상실한 채 죽음보다 더한 외로운 일상을 맞이한다. 자신의 본질을 속이고 살아가는 조지에게는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유일한 여자친구 찰리(줄리언 무어)가 있다. 찰리는 애인의 죽음에 힘들어하는 조지를 위로하기 위해 자신과의 하룻밤을 제안하고, 조지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게 된다. 한편, 삶을 정리하려는 조지 앞에 매력적인 제자 케니가 접근하고 우연과도 같은 하룻밤을 보내며 조지는 짐을 잊고 케니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데……


영화가 다루는 이야기는 거창하지 않다. 매우 간단하다. 많은 사건이 일어나지도 않는다. 동성 애인의 죽음으로 인한 충격을 견디지 못한 대학교수 조지가 자살하기로 마음먹고 보내는 하루를 담아내는 것이 전부다. 그래서 다소 지루할 수 있다. 화면은 더없이 깔끔하고 세련됐지만 이야기 전개가 지루한 면이있다.





조지(콜린 퍼스)의 일상을 회색톤으로 따라가던 영화는 찰리(줄리언 무어)와 케니(니콜라스 홀트)를 만날때 색을 바꾼다. 특히 케니와의 만남엔 화면 전체에 붉은 빛이 피어난다. 낮에 케니가 조지에게 연필깎이를 사주었을 때 조지는 노란색, 케니는 빨간색을 고른다. "빨간색은 열정 그리고 욕망을 의미하지." 조지의 말이 떠오르면서 화면은 붉게 물든다. 조지는 그렇게 케니를 통해 다시 삶의 의지를 살린다. 외로워도 다시 시작할 수 있다. 하지만 결말은 비극이다.

하루를 다루면서 영화엔 시계가 자주 나온다. 단독으로 꽤 긴시간을 잡아주는 시계들. 마지막 날로 설정된 하루의 시계는 똑딱똑딱 꾸준히 가지만 오늘따라 더뎌 보인다.

동성애자가 나오는 영화를 자주 접하다 보니 이제 동성애자들이 더이상 거부감 있게 받아 들여지지 않는다.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한다는 점에서 그들은 다른 존재일 뿐 틀린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체화되어 간다. 조지의 말대로 무지는 공포를 불러온다. 잘 알지 못하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그들을 억압하며 제거함으로 해소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통치하는 세상에서 소수는 희생자가 될 뿐이다. 무지한 다수가 되어 억압에 동참하는 것은 쉽다. 그래서 나치는 유태인들을 학살할 수 있었다. 같은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서 두려워 하는 대상에 대해 더 알아보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시기를 막론하고 언제나.



이 영화에서 또 빼놓을 수 없던 것이 바로 OST다. 영화 초반부에 영화를 보다 말고 메모를 한 줄 했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현악기 선율. " 우울한 인물 심리 묘사에 현악기만큼 적절한 악기는 없는 듯 하다. 가슴을 후벼파는 듯한 현의 울림은 군데군데 등장해 영화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따로 OST를 들어도 괜찮을 정도.



콜린 퍼스의 연기엔 그저 박수를. 잘생긴 훈남 니콜라스 홀트의 매력도 넘쳤던 영화. 줄리언 무어는 개인적으론 조금 아쉬웠다. 60년대의 헤어스타일을 잘 표현해 냈다는 점과 성적인 농담만이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콜린 퍼스의 연기에 박수. 짝짝짞



경험은 우리에게 발생한 일이 아니라 그 일에 대처하는 우리의 행동을 의미한다. 등의 다시 곱씹어 보게 되는 대사들이 영화가 끝난 후 머릿속을 맴돈다. 이런 문장들을 음미하고 되새김질을 하기 위해 원작을 읽어 보고 싶어졌다. 214쪽 분량의 그리 길지 않은 책인데다 하루 동안의 사색과 주변의 소소한 일상의 묘사가 뛰어나다고 하니 더욱 탐난다. 꼭 읽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