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사회 속 여성의 모습을 그린 영화인 '천상의 소녀'는 생존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소녀의 모습이 강렬한 영화였다. 영화는 초반에 여성에게 일할 권리를 달라며 챠도르를 걸친 여성들이 시위를 하는 모습들을 담아내고 있는데, 탈레반이 시위하는 여성들을 잡아가고 이 장면을 촬영하는 카메라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장면을 보여줌으로써 연출된 장면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적인 느낌을 불어넣는다. 여성의 노동을 금지함으로써 생계조차 꾸리기 힘든 여성들의 모습을 영화는 한 모녀 가족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소련과의 전쟁 등으로 남편과 친척을 잃은 어머니는 자신들에게 생계를 마련해줄 남자가 없는 것을 한탄하는데 할머니가 우연히 꺼낸 말이 씨가 되어 소녀는 아버지의 옷을 입고 머리를 잘라 남장을 하게 된다.
남장여자를 다룬 보통의 영화들과는 달리 '천상의 소녀' 속의 소녀는 생존 속에서 가시밭길을 걷는다. 남장을 한 소녀는 챠도르를 벗어 느끼는 해방감보다는 누군가 자신의 정체를 알아 탈레반에 고발 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질려 있다. 거리를 지나가면서 남자가 자신을 쳐다보면 두려움에 떤 체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길을 걸을 때 자신을 쫓는 남자가 있는지 확인하는 모습은 목숨을 건 두려움을 절실히 느끼게 해준다. 영화 속 여주인공 역을 맡은 마리나 골바하리는 감독에게 우연히 캐스팅되어 영화에 출연했는데, 연기경력이 전무함에도 불구하고 두려움의 정서를 인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기가 아닌 실제 행동 속의 두려움을 표현했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소녀가 주변을 두리번 거리고 시선을 이리저리 움직이는 모습은 영화의 사실성을 더욱 불어넣으면서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다.
남장을 한 소녀는 아버지의 전우인 남자가 운영하는 가게에서 일을 하게 되어 생계를 꾸리게 되었지만 소녀는 한 남자에게 끌려가게 된다. 자신이 여성이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순순히 끌려간 곳은 다름아닌 탈레반의 본부였다. 탈레반은 소녀를 비롯한 아이들을 모두 데려와 터빈을 두르게 한 다음 그들을 전사로 키운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한 곳에 모아두고 군사훈련을 시키고 종교적인 수련을 강제로 시킨다. 남자라는 사실을 들키지 않기 위해 그녀는 남자처럼 행동하면서 목욕을 하지만 같은 남자 또래들로부터 의심을 받기 시작한다. 의심을 받지 않기 위해 소녀는 높은 나무를 올라가 자신이 남자임을 증명하려 하지만 결국 그녀의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만다. 높은 나무에서 내려온 소녀의 다리 밑에는 피가 흘러 내와 있는데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단서이기도 하지만 남성의 권위적인 종교적 근본주의로 인해 더럽혀진 소녀의 모습을 암시하는 메시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살아남기 위해 소녀는 필사적으로 남자아이들을 피해 달려 나가는데 수많은 남자아이에게 둘러싸여 있는 곳을 돌파하기 위해 달리는 소녀의 모습이 안타까운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소녀는 남자로 분장했다는 죄목으로 탈레반에게 끌려가 종교재판을 받게 되는데 기적적으로 목숨을 건지게 된다. 하지만 소녀는 목숨을 건진 댓가로 한 노인의 첩으로 끌려가게 된다. 재판을 담당하는 한 노인이 '이 아이를 용서했다'고 말하면서 죄를 판단하면서 목숨의 댓가로 한 소녀의 일생을 멋대로 결정하는 모습은 화가 치밀 정도였다. 영화 '밀양'의 유괴범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용서를 받았다고 말하는 것처럼 노인이 신의 이름을 들어 용서를 하는 모습은 오만의 극치가 아닐까. 소녀의 남은 인생을 철저히 망가뜨리면서 소유물처럼 처리해버리는 오만을 용서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소녀가 가축처럼 끌려가 첩이 되는 과정은 감옥 속에서 줄넘기를 하는 소녀의 모습과 대비를 이루고 있는데, 영화 '도그빌'의 현실판을 보는 것처럼 참혹하고 안타까운 느낌이 든다. 영화는 '잊지는 못해도 용서는 할 수 있다'는 넬슨 만델라의 문구를 삽입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잊지도 못하겠고 용서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